번역에 대해 흥미로운 글을 읽었어요
르 지라시는 마음산책이 아니라 북스피어에서 제작하는 신문이 아닌가요?
앗 헷갈렸어요. 두 군데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아서 ㅋ
매우 재미있게 읽었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글이네요.
무리해서 요약하면;; (치열한) 직역을 통해 원문 언어 체계가 갖고 있는 고유의 활용방식 같은 것들을 한국어에 심을 수 있고, 그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져도 결국에는 한국어 활용의 범위를 넓히는 작업을 한다는 건데요,
(더 나아가 매끈한 정보 전달로서의 번역은 한국어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아무나 해도 된다는 주장까지.)
'작가로서 모국어를 쇄신하려는 노력으로써의 번역'이라는 맥락에서 의도적인 생경함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신선한데,
그건 존재한다해도 특수한 사례로 일반적인 번역의 잘됨을 논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 같고요, 더더군다나 좋은 의역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어의 확장이 직역 말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은 근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학비평가 조영일 씨의 글이군요. 한 언어의 외연을 확장하다는 측면에서 저런 시도의 끝판왕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이스가 대단한 작가이긴 하지만, 전공자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피네간의 경야는 해프닝 혹은 코미디로 지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창작이 아니라 번역으로 그걸 가능케 한다는 얘기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죠.
이건 사담입니다만, 예전에 조영일 씨가 문학판 '어그로 킹'으로 활동하던 시절, 기고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온 원고를 보니 비문과 맞춤법 틀린 게 너무 많아서 교정하면서 상당히 짜증이 났던 적이 있죠. 직역 옹호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분들을 가끔 보는데, 왜 다들 한국어 구사 수준이 엉망인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조영일 씨 글을 보면 직역이 우월한 것이고, 의역이 마치 열등한 것인양 써놓으셨는데, 사실상 직역은 그 분야나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의역은 그 책이나 작가에 대해 꿰뚫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겁니다. 의역을 가장한 엉터리 번역이 흔해서 문제지, 의역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닌데 문제 인식부터 틀린 거 같네요. 또 어차피 직역본 보는 것보다 사전 들춰가면서 원문 보는 게 훨씬 효율적인 일이기도 하고요.
직역 vs 의역 문제에 노승영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니 덩달아 예전의 노승영 vs 이덕하 번역 배틀이 생각납니다.
나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다가 막상 나온 결과물의 처참함에 할 말을 잊었었는데….
그 부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결과물의 처참함'이라는 게 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재밌을 것 같은데 맥락을 잘 몰라서요.
예전에 노/이 두 번역가가 논쟁 끝에 동일한 텍스트를 동시에 번역해서 그 결과물로 우열을 가리는 번역 백일장(?) 같은 이벤트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마 두 분의 결과물이 양쪽 다 함량미달이었다는 이야기 같네요.
해당 키워드로 검색하면 바로 글이 올라오므로 금방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처참함’이란 어느 한 분이 제시한 결과물에 대한 저의 느낌이 그랬다는 거죠. 편집자로서 원고를 가져오는 번역자와 작가들에게 매사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에 대해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할 수만 있다면 축자적 번역이나 읽는 맛까지 살리는 번역에 대한 갈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
직역파라서 한표 ^^
번역이라는게 그 언어의 전문가에 더해 번역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전문가가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역은 무의미한 낱말의 나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건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측면에서 생각해 본 것이고 문학 쪽은 생각을 안 해 봤네요.
하지만 의역이라는게 양쪽 언어 모두에 능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뭔소린가 했는데, 글쓴이가 조영일씨라면 뭐...
구글번역기를 추천합니다.
성능이 많이 좋아진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