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바낭?) 무서움에 대한 글 보고 - 문득 생각난 어릴 적 딱 한 번 기도해봤던 기억

지금은 종교 없어요. 어릴 때 그냥 친구들 따라 단속적으로 교회에 가곤 했었지만. 그 후로 사춘기 시절 내 머리 속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의외로 알게 모르게 깊게 각인 된 걸 깨닫곤 '주일학교'라는 그 코흘리개를 대상으로 한 세뇌가 참 무서운 일이었구나 싶더군요. 물론 이건 쓰려는 에피소드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아무튼... 여덟, 아홉 살 즈음.. 이상하게 밤마다 악몽을 꾸는 거예요. 잠자기가 무서울 정도로.  내용은 그냥 흔한 쫓기는 꿈 같은 거였죠. 어둡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따라 오고 나는 도망간다고 가지만 발은 느리거나 제자리 걸음이고. 뭐 그런 흔한 내용인데 깨고 나서도 참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섭더군요. 그러면 옆에서 주무시는 엄마품을 파고 들곤 했죠. 당시에 엄마 아빠와 같이 잤거든요. 온가족이. 막내라서 전 엄마 옆에 잤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몇날 몇일 계속 무서운 꿈을 꾸자 전 대책을 강구했죠. 기도를 하는 거였어요. 이부자리가 깔리고 불을 끄면 온 가족이 차례대로 누워 티비를 보다가 하나 둘 잠드는데.... 전 졸리기 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도를 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집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내가 일요일에 친구들 따라 교회가는 것을 허락해 주신 것 뿐, 집안에 신자는 없었거든요.) 기도한다는 것이 좀 창피하달까. 쑥스럽달까 해서 누운 채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을 모으고(어린 아이답게, 손가락을 깍지 낀 것이 아니라 합장하며 모은 손으로) 딴에는 정말 진지하게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을 찾았는지 예수님을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 님, 제발 오늘 밤에는 무서운 꿈 없이 자게 해주세요. 내가 눈 감았다 뜨면 그냥 아침이 되게 해주세요....  


꿈 꾸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좋은 꿈도 필요 없으니 제발 아무 꿈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루 이틀 기도했는데 정말 악몽을 꾸지 않았어요. 전 신기해서 당연히 매일 밤 잠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도를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역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쓰윽... 이불이 들춰지더군요.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아빠 엄마가 이불을 들추고 나를 내려다 보시며 빙그레, 피식.. 웃으시더군요. 아..  창피.... -_-;;;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녀석이 매일 밤 자기 전에 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이불을 들추셨던거죠. 기도하는 손을 보곤 어라? 피식.. 빙그레... ... 


내가 악몽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줄은 모르셨으니 그냥 뭔가 기도하나보다 하고 호기심을 느끼셨는지 - 무슨 기도해? 하고 웃음 띤 얼굴로 물으시더군요. - 아.. 뭐... 헤헤.... 난 그냥 얼버무리곤 '챙피'해서 다시 이불을 휙 뒤집어 쓰고 다시 기도를 마무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날 이후론.. 창피해서 기도를 안해도 그냥 편안히 잘 수 있었죠. 옆에 아빠 엄마가 있으니까. 형도 누나도 있으니까... 



아래 무서울 때 무얼 하시냐는 글을 보고 까맣게 잊었던 이 기억이 떠올랐네요. 


사실 그 이후론 무서운 것이 거의 없었어요. 달빛 하나 없는 밤길도 혼자 잘 걷죠. 도시든 시골이든 혼자서 밤길도 잘 다녀요. 귀신, 전혀 안무섭고 정말 있다면 정말이지 좀 보고 싶을 정도고. 사람도 그닥 안무서웠어요. 선배든, 선생님이든, 상관이든... 


그런데 딱 하나 예나 지금이나 정말 무서운 건 뉴스나 영화, 시사프로들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한 이슈들이 나올 땐 무서워요. 지금은 무서움이 아니라 분노를 느끼고, 스스로와 내 주위는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그들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지금도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런 문제들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긴 해요. 


전 더 이상 기도는 필요 없어요. 그래서 종교는 없답니다. 



쓰고 보니 기승전무교..네요..  아무튼.. 어릴 적 딱 한 번 기도를 간절히 한 적이 있었답니다~ 




    • 상상하니 참 귀엽네요.저희 집도 제가 꼬꼬맹이 때는 온 가족이 거실에 쪼르륵 누워 함께 TV보다 잠들고 그랬는데,(애들이 자라니까) 이런 날도 얼마 안 남았다고 아쉬워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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