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구축 방식
몇년 전 폴란드에 교환교수 비슷하게 다녀왔을 떄, 몇달이 지난 뒤 그쪽 대학에서 싸인해 달라고 서류를 보내왔다. 그런데 그 서류가 온통 폴란드어로만 되어 있고, 내용이 어떤 건지 설명도 없어서, 토마스(교수님)에게 서류를 스켄해서 메일로 보내면서 내용이 뭔지 대충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싸인해도 괜찮다고 답변이 왔는 데 왠지 어투가 퉁명스럽게 느껴졌다. 대충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알 수 없어서 어쪄 봤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고 나서 배운게 있다면 아무데나 싸인하지 말라는 거에요 라고 답메일을 보내니, 이번에는 새벽에 (정말 새벽에) 네 말이 맞다, 라고 하시더니 길게 자신이 싸인을 잘못해서 누위친 일들을 메일로 보내셨다. 아마도 퉁명스럽게 느꼈던 내 느낌이 맞았나 보다. 그래서 미안해서 이렇게 길게 편지를 쓰시는 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미소지었다. 마지막 문장에, 이런 계속 투덜거렸네, this is polish way of contructing togetherness, 이해해달라고 덧붙이셨다. 투덜거리는 거라면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헨릭보고 러시아의 관계구축 방식은 뭐냐고 물으니, suffer togehter 란다. 그러면서 한국 방식은? 이라고 물어본다.
내 생각에는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닐까 싶다.
아빠가 편찮으셨을 떄, 아빠 엄마 친구분들은 우리집 냉장고를 채우셨다. 정말 덕분에 고기가 끊이지 않고 있었고, 생선이며 과일이며 먹는 건 정말 잘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면 어렸을 때 전혀 경제상황에 대해 모르고 그냥 지나갈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잘 먹었기 떄문이 아니었을 까? 한다. 생각해 보면 엄마도 우리끼리만 먹게 요리를 하신적은 없는 듯 한다. 어렸을 떄 떡을 하면 떡은 하는 데로, 잡채니 약식이니 (우리 엄마 특기) 하시면 그걸 가지고 이집 저집 엄마가 맛 좀 보시래요 하면서 다니는 게 참 싫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 여전히 엄마 친구분들은 어디서 비싼 생선을 싸게 샀으니 가지고 오시겠다고 연락하신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떄 보니 우리집 김치 냉장고에는 엄마가 한 김치 뿐 아니라, 엄마 친구분들이 보낸 김치, 반찬 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이분들 냉장고에도 우리 엄마가 한 무엇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지은다.
엄마 같이 안되겠다더니 엄마랑 똑같다. 케익을 구워가거나 초켈렛을 사가는 건 스웨덴 식으로도 이상하지 않지만, 불고기를 재워가거나, 전을 부쳐 가는 건 확실히 스웨덴 방식은 아니다. 소피아 신랑이 우울해 한다고, 스시보다 김밥이 맛있다고 한 그의 말이 생각나 그떄 다이어트 중이라 김밥 못먹는 소피아가 있는 데도 김밥을 싸서 보내주면서 살짝 오지랖 넓기는 하곤 스스로 좀 웃었다. (무슨 성만찬 먹듯이 먹더군, 이라고 소피아가 말해주었다). 내 스웨덴 친구들은 이제 이런 나의 행동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이 꿔달라고 하지도 않은 빚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의 일부분이란 걸 알고 받아들이기에.
지난 주말 올가네 가서 돌아올 떄 그동안 그집에 내가 보낸 음식들 담았던 통들을 가져왔다. 올가 많이 많이 아팠을 떄, 헨릭 퉁퉁 거리고 있을 떄, 너희 줄려고 사프란 넣은 생선 스프 가져왔는 데 가져갈꺼야 말꺼야? 했을 떄, 2초 기다리다 가져갈거야 라고 답하고 가져간 스프 담았던 통은 안보인다. 열심히 찾을 려는 헨릭보고, 나 둬, 언제가 나오겠지, 뭐 맛있는 거 담아서 돌려줘 라고 말하니, 그는 끄덕거린다. 언젠가 그는 우리 엄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하게 자신을 주는 데 그만큼 돌려받지 못한다고 그래서 아들로서 속상하다고 말했었다. 선물이 데리고 동물 농장 놀이 하는 올가를 보면서 지금 이렇게 편한 관계가 참 좋다란 생각을 했다.
엄마 닮지 않겠다고 한 어린 마음이 어른 마음으로 변해서 다행이다.
엄마 닮아서 다행이다.
Kaffesaurus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참 좋아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아... 글이 너무 좋네요ㅠㅠ 관계의 구축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계구축방식이라는 말이 새로 알게 된 명사처럼 또렷해 졌어요. 이전까지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중풍을 앓으셔서 병원에 꽤 오래 입원 해 계셨거든요. 그 때,, 저희 집에 먹을 것이 정말 풍족했었어요. 두유나 주스는 기본이고 평소에 구경해보지 못한 값진 과일들과 (아마도 저같은 손주들을 위한) 과자들. 아빠가 병원에 다녀 오시는 날이면 양 손에 가득 먹을 것을 가져오셨는데, 그 때 느낀 묘한 감정이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는 아파서 말도 못하시고 병원에 누워계셔서 슬프긴 슬픈데,, 우왕 이게 다 먹을거야? 다 먹어도 돼 아빠? 그러면서 허락받고, 뭔가 슬픈음식같은데 일단 허락받았다는 안도감에 처묵처묵했던 기억이.. 아 진짜 그 때 이후로 몇 십년 만에 기억을 꺼내보는 것 같아요. 할머니가 드시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음식을 가지고 오셨겠죠 그 분들은.
손주들까지 생각한 그 마음들이 참 좋네요.
마음이 따듯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커피공룡님 글은 입으로 소리 내어서 읽게 되네요. :D
어디서 읽으세요? :)
직장에서 살짝 읽고 집에 와서 다시 읽어요. 음미해야 하는 글이라서... :D
음미하신다니... 얼굴이 붉어집니다.
으앙 엄마 ㅜㅜㅜ
외국인들 눈으로 보기에 한국인들은 목욕을 같이 해야 그때부터 친구가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더군요.
친구들끼리 목욕탕 가는 게 그리 흔한가. 훌훌 벗어던진 알몸을 보면서 서로 더 친근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닥 효과가......
맛있는 거 하면 나눠먹는 한국인들의 풍습은 좋은 거 같아요.
이런 습관이 몸에 배어서 외국에 나갔을 때 친구들과 과자를 나눠먹자 이상하게 바라봤다는
박칼린이나 수잔 선생의 예만 봐도요. 음식을 나누는 건 마음 한조각을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죠.
언제나처럼 공룡님의 글은 참 좋네요 :)
그런데 목욕 같이 하는 문화는 스웨덴이랑 핀란드에도 있어요. 사우나 문화.
저는 처음에 여기 왔을 떄 각자가 자기 피자를 산다는 거에 무척 놀랐던 게 기억나요
서로 할퀴고 상처 아물고 살이 덧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주기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