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3개월, 3개월, 3개월
개인적인, 시시한 얘기입니다. 쓰는 게 죄송할 정도로요.
작년 5월에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헤어질 때, 그래도 연락은 하고 지내자던 그 사람에게, 처음엔 싫다고 냉정하게 잘라말했어요.
하지만 두번 세번 같은 얘기를 듣다보니 어차피 말 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럼 3개월이 지나도 내 생각이
많이 나면 전화해도 좋아' 라고 말했죠. 여러가지 상황들과 그 사람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3개월쯤 지나면
저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전화가 왔어요. 저는 친절하게 굴지 않았어요. 약속을 했으니 받았다만 아직도 당신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았고 지난 3개월동안 당신이 그립거나 헤어진걸 후회한 적 없이 잘 살았어, 라면서,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서둘러 끊었죠. 그건 진심이었어요. 전 그 연애가 참 힘들었거든요. 그 친구는 전화를 끊으며
그럼 3개월을 더 기다리겠다고. 지금부터 3개월 후에 전화를 다시 하겠다 하더군요.
5월 중순 헤어지고, 8월 말에 전화, 그리고 12월 초쯤 두번째 전화가 왔죠.
어쩐지 미안했고, 신기하기도 했고, 이 사람은 아직 나를 좋아하나봐, 생각하기도 해서, 좀 다르게 전화를 받게 되더군요.
그렇게 좀 보드랍게 통화한 후, 가끔 전화가 왔어요.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조금 보고 싶기도 했어요.
너를 많이 걱정한다고 하고,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얘기를 들려주고, 오히려 얼굴보고 같이 지낼 때보다 덜 예민하고
편안했는지 못 꺼내던 얘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오해도 좀 풀리고, 연애 초반의 벅차던 감정이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함께 추억하고, 넌 좋은 사람이야 덕담도 하고.. 헤어진 남자친구와 이렇게 정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3개월이 흘렀어요. 그 사이 일주일에 한번쯤 안부전화가 왔고, 짧거나 길게 통화를 하면서 어쩐지, 절대로 다시는
생겨날 것 같지않던 감정이 조금씩 고개를 들더군요. 우린 여전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다시 사귀게 될까 혹시.... 이런 거죠.
조심스레 물어보니, 지금 받고있는 연수(교육?) 이 끝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어요.
저는 동의했어요. 저도 지금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전화가 적당하니 좋았거든요. 그 친구는 그간의 전화에서 '내 애인이건
아니건 넌 항상 내겐 VIP야. 무슨 일 있거나 힘들면, 다른 사람 말고 내게 연락해주면 고맙겠어' 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리고, 요즘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가 말어 이러던 제가 지난 주말, 헤어진 후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했어요.
전화를 받았는데, 사람들 북적이는 소리, 음악 소리, 조금 머뭇거리다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더군요.
난데, 지금 전화 받을 수 없어? 했더니, 응 없어. 하더군요. 아 그래? 그럼 이따 늦게도 안돼? 응 안돼. .......어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그게 끝이었어요. 전화는 되돌아오지 않았고 저도 다시 하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냥 하지 않았어요. 3일째 전화를 기다리다가 월요일날, 그 친구 번호를 스팸으로 지정했어요.
매일 스팸보관함에 들어가서 그 전화번호로부터 온 전화가 있는지 확인해요. 오늘까지도 차단 횟수 0이군요.
거기에 1이나 2라고 찍혀야 내가 이기는건데,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기겠지, 했더니 친구가 말하더군요.
당연히 니가 스팸으로 그 번호를 올린 그 순간 진거야. 모든 걸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계속 진거야. 라구요.
우스운 건, 3개월, 이라는 인터벌이 마치 미리 짜놓은 구조처럼 이 허접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반복된다는 거였어요.
오늘 여기 바낭을 하고, 그냥 잊어버리려구요. 왜 VIP 운운했을까. 내게 뭘 원한걸까. 대체 무슨일이 있는걸까.
궁금해하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사람은 잊어가는 중이고, 님은 생각나는중 정도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하자면 뭔가 좋게 좋게 해석하시는거 같은 느낌이 있어요, 맘이 있으시다면 한번 더 관계를 맺어 보시는것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사귀어 보는것뿐인데요 뭘, 결혼하는것도 아니고.
잊어가는 중/생각나는 중 - 와닿는 말씀인데요. 씁쓸하지만요. 다시 만날 것 같진 않아요. 제가 '좋게 좋게 해석' 하다가 마음을 좀 다쳤나봐요 이번에 :)
다시 만나는건 가능성이 별로 없는 도박인듯하구요. 네 애초에 3개월뒤에 전화하라는것부터가 꼬였네요. 그런 식으로는 헤어질수 없어요.
말하자면 헤어지는데 거의 1년이 걸린거네요.
맞아요. 거의 1년이 걸린 셈. 헤어지기로 했다면, 헤어져야하는 건데요. 그 이후의 질척임이 결국 어떤 모양새로 끝을 맺는지 기어코 보고 만거죠 뭐. 우유부단한게 죄.ㅠㅠ
저는 초겨울에 헤어졌는데 "3개월" 후에 서로 연락해보기로 해놓고는 서로 연락을 안 했습니다. 제가 차였던거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저를 잊은거였겠고,
저는 연락할 면목이 없더군요. 사실 제 능력이나 현실적인 시기 문제로 헤어진 이유도 조금 있어서 제가 먼저 무언가를 이루는게 먼저 같더군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헤어지기 전 기억을 다시 한번 사는건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그 사람도 다른 사랑을 하고 있을 거고.
살면서 무수히 많은 찌질한 짓을 했지만, 그나마 헤어진 전 여친에게 전화한 적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스팸 처리한건 전화벨 소리만 나면 깜짝 깜짝 놀라면서 신경을 쓰는게 제가 너무 한심해서 그랬어요. 제가 여지를 준 거라고 생각진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저는 달콤한 말들을 해서 제 마음을 풀어놓고 제가 냉정한 태도를 거두고 나니 여지없이 소홀하게 대하는구나, 싶었거든요. 서운했구요. 여기 정리해서 쓰고 나니 소득이 있네요. 다른 관점도 듣게 되고, 무엇보다 스팸했던 거 그냥 삭제했어요. 그 친구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vip드립같은 거야 뭐 나쁜 마음으로 한 얘긴 아니겠고, 무엇보다 내가 뭔가 기대하고 실망할 처지는 아닌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근데 친구들과 얘기할 때는 걔 나쁘다, 웃긴다, 이런 식으로 위로를 해주었어요. 듀나게시판 분들이 좀더 냉정하게 말씀해주셨는데, 실은 두 쪽 모두 도움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