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몇몇 마이너 그래픽 노블 단상

 그래픽 노블인지 만화책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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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 - 다비드 베

프랑스 작가 다비드 베의 대표작인데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장남의 갑작스러운 간질 발병으로 집안은 엉망이 되고 현대의학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된 부모는 온갖 대체요법과 사이비 종교에 절망적으로 매달립니다. 병에 휩쓸린 가족들 틈에서 단단하지 못한 정체성으로 불안한 성장기를 보내던 동생 피에르(작가 본인)는 자신을 잠식한 간질의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내용만 봐서는 휴머니즘 계열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명확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얘기는 아니더군요. 저는 오히려 상상력을 한계가 없이 형상화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우울한 집안사와 결합해서 마이너스의 극이라 할만한 미학을 만들어내는 표현력에 감탄이 나왔습니다. 묘사방식이나 그림체때문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책이라 생각되는데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최근작을 찾아봤더니, 병을 멀쩡히 고친 작가의 형(어디까지나 상상...)이 악의 조직을 파헤치며 뛰어다니는 내용이길래 이게 마음이 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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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즈 예게른- 파올로 코시

잘 알려지지 않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다룬 만화인데요. 띠지에 오르한 파묵이 메즈 예게른을 언급해서 파장이... 이런 글귀가 써있지만 파묵이 언급한 건 사건이지 이 만화책은 아닙니다(뭔가 속인것도 속은것도 아닌...)

그레이톤의 온화한 그림체로 헉소리나는 잔인한 내용을 보여주지만 거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참상에 대한 고발의 역할은 충분하지만, 하나의 완결된 내용으로보자면 깊이나 재미는 부족해서 책장을 덮고 나면 읭! 끝? 하는 기분이 드는 걸 어쩔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출간 목적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시도인것은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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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버마 - 기 들릴

평양, 예루살렘으로 잘 알려진 캐나다 작가 기 들릴의 체류기입니다.

작가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는 부인을 따라 민간인 출입이 쉽지 않은 여러나라에 체류했고(평양의 경우는 애니메이션제작때문) 이를 다룬 책들을 냈는데 평이 좋아서 하나는 앙굴렘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죠.

국내에는 신기하게 세 작품 모두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고 뜬금없이 굿모닝이 붙었지만 나름 좋은 센스라고 생각합니다.

체제문제가 부각되는 이런 국가의 체류기는 오해나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기 들릴의 책들이 좋은 평을 듣는 것은 저런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적 견지를 드러내는 것을 무조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어떤 경향을 조심스럽게 피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니 이건 어이없는데! 같은 모습이 종종 나오지만 내 생각이 이렇다는 식으로 톤을 조절하고 있고, 본인캐릭터를 '남의 나라에서 갓 태어난 애 키우느라 겁나 고생하는 맹한 외국아저씨'로 잡고 있어서, 보는 사람에게 감정적인 부담없이 객관(이라고 생각하는.)이라는 인상을 주는 게 가능하지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 체류기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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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진가 - 엠마뉘엘 기베르, 디디에 르페브르

이 책은 아예 국경없는 의사회 요청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원제는 그냥 사진가던데 국내제목은... 뭐 제목만 봐서는 제가 사지 않을 책 같은데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의사회 회원들의 활동을 기록해달라는 제의를 받은 르페브르의 사진에 기베르의 그림이 결합되어 탄생된 르포타쥬입니다.

기 들릴의 여행기가 위트를 바탕으로 지뢰밭을 잘 피해가는 소품이라면 아프가니스탄 오지를 넘나드는 르페브르/기베르의 사진/그림은 사막위를 힘들여 걷는 건조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의료진은 보답을 받기보다 좌절할 일이 많지만 본인들도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신념에 의해 일을 계속하고, 가장 힘든 시절의 기록일 르페브르의 사진은 그들을 웃게 합니다. 의사회보다는 '앨런의 전쟁'으로 유명해진 기베르의 전작이라는 이유때문에 보게 됐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진솔한 힘을 가진 볼만한 작품입니다. 원래가 흑백사진 같은 기베르의 필치도 책의 성격이나 사진과 잘 어울립니다.

의사회의 활동을 다룬 다큐 씨디도 붙어있고 인터뷰페이지도 있고 컬러고 풍부한데... 비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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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제양 - 마누엘레 피오르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원작은 꿈의 노벨레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이 작가 특유의 몽롱한 분위기가 있는 그런 글입니다.

이태리 작가 마누엘레 피오르의 엘제양은 소설을 그림으로 번안한 쪽에 가깝고 원작에 대한 특별한 해석이나 시각이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 피오르는 이 소설과 이 시대가 너무 맘에 든 나머지 자신을 이 세계에 빠뜨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 빈 분리파의 영향을 받은 몽환적인 데생과 스산한 컬러감으로 슈니츨러의 엘제양이 매혹적으로 시각화되었는데, 이 사실 자체에 감격을 느낄 사람들만 이 만화에 열광할 수 있겠죠.

그런 점은 미뤄놓더라도 그림만으로 아름다운 책인 건 분명합니다.
  


 

    • 점점 글자보다는 그림을 보는 게 좋아지는데, 뭘 보는 게 좋은 지 영 모르겠더라구요. 리뷰보고 몇개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 둡니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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