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 1장



하늘을 받드는 동네 봉천동. 받들 봉(奉)자에 하늘 천(天). 하늘을 받드는 동네 봉천동.

이름도 거룩한 봉천동에서도 봉천 4동.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이 개통되면서 상가시설들이 늘어나고 여관 밀집촌이 형성되던 시절.. 

여관촌 입구 '궁전 여관'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던 '쏘니 베타방식 비디오데끄 전격도입!'이라는 파격적인 홍보문구로 고객 유치에 나섰을 때 

맞은편 '이브장'은 수돗물이 아닌, 관악산 정기를 받은 약숫물이 나오는 샤워실로 맞서고 있었던 그 시절;;;


달동네 봉천동을 주름(?)잡던 국딩들이 다니는 신대방동쪽의 신광체육관이라는 태권 도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특전사 출신의 관장님이 검은독수리 태권도장이라는 애초의 도장 이름이 너무 유치하다는 의견들때메 이소룡의 정무문에 나오는 도장처럼 한자로 휘갈겨쓴 신광체육관 간판으로 이름을 바꿔 달게 된 태권도장이었는데요


다른 태권도장들이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던 것과 달리 

미취학 아동이나 국딩 저학년 등을 상대로한 병아리반과 중고딩을 대상으로 한 선수반 두개로만 나눠서 운영하던 태권도장이었슴다.  


도장 입구에 걸려 있던 거대한 태극기와 무시무시한 발톱을 가진 맹금류인 검은 독수리 그림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지만 입장을 할 수 있었던 엄격하고 빡센 군대식 태권도장이었는데요

아폴로나 쫀디기를 씹어먹던 병아리반의 코찔찔이 꼬맹이들은 어떻게 병아리가 자라서 독수리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그 도장만 다니면 회축으로 상대방의 양싸다구를 발따귀로 날릴 정도로 캡(그 당시 짱을 뜻하던 초딩 은어;;;)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에 관악구 일대의 국딩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도장이었슴다.



그 당시 '낫씽 임파서블!! 안되면 되게하라!!' 정신으로 무장하셨던 관장님께선 협동심과 단체생활의 중요성을 매번 강조하시며 신입관원들을 주 단위로 받으면서 해병대나 특전사처럼 기수별로 단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승급 심사도 단체로 받아서 누구 하나 탈락하거나 낙오가 되면 얄짤없이 승급이 막히는 그런 혹독한 방식으로 운영하던 곳이었슴다. 


저는 그 당시 노란띠에서 이제 막 초록띠를 땄던 상태인;병아리반도 아니고 선수반도 아닌 어정쩡한 중학교 입학을 앞둔 국딩 고학력이었고;;

병아리반 막내기수 꼬맹이들 중에 상태가 메롱인 아이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하 편의상 A군이라고 하겠슴다) 


그 당시엔 자폐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자폐끼가 있(어보이)던 A군은 그냥 이상하고 덜떨어진 정신지체아 처럼 취급을 받았었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막내 기수 중에 유독 상태가 메롱인 꼬맹이들이 많았던 이유가 근처 모자원 고개에 있던 삼육재활원 아이들을 받기 시작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문제적(?) 아이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슴다.



꼬맹이들 세계에서도 서열이 존재하기 마련이라 병아리반 막내 기수에서 캡을 먹던 아이가(편의상 B군이라고 하겠슴다) 

王자 모양으로 진행되는 태극1장 품새를 번번이 틀리는 A군의 군기를 잡기 시작했고;;;

관원들의 협동심과 단체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관장님께선 상황이 심각해 보이자 A군과 B군을 주 관심사병(?)으로 지목하고;;;어서리하게 병아리 반도 아니고 선수반도 아닌 초록띠 형아로 통하던 저에게 승급 심사 날까지 태극 1장을 틀리지 않게 지도하라는 특별지시를 하달했었슴다;;;;;;;;;;



A군은 항상 왼쪽부터 시작해야 되는 하단막기를 고집스레 오른쪽부터 시작했고

손등을 위로 해서 내뻗어야 되는 정권 지르기도 꼭 감자를 먹이듯;;; 손바닥을 위로 하고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었슴다;;;

동그란 삥고딱지와 떡볶이를 사주기도 하고;;; 짜증이 날때마다 가끔씩 험한 욕도 하면스롱 겁도 줘봤지만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A군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슴다;;;


한계에 다다른 저는 B군에게 관장님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선 내가 못본척 해줄테니 니가 알아서 A군을 지도하라며 포기를 했었는데요

B군은 도장수련이 끝난 시간에도 A군을 놀이터로 델꼬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태극1장을 가르쳤지만, 항상 반대로만 품세를 진행하는 A군에게 절망한 나머지 울분을 토하며 애꿎은 시소와 미끄럼틀만 걷어차기 일쑤였슴다;;;


하루는 B군이 저랑 달고나(뽑기)를 사먹으며 

"형~~~ 우린 안될거야 ㅠㅠ;;; 조 병딱같은 생퀴때메 노란띠 못딸거야"라며 제 품에 안겨 오열을 하기도 했슴다;;;

 
그날 이후로 노란띠를 못 딸 거라는 절망감에 하루 하루 태극기 옆 검은 독수리의 발톱만 멍하니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던 B군은

마치 A군을 이지메 하듯 따를 시키기 시작했고;;; 도장이 끝나는 시간만 되면 다른 아이들을 놀이터에 집합시켜 마치 작전 모의를 하듯 매일같이 무언가를 지시하기 시작했슴다.



하루 하루 시간은 흘러 드디어 승급 심사 날이 다가왔고;;;

병아리반 막내 기수들의 노란띠 승급 심사를 보러 온 보호자들 앞에서 저는 자포자기 상태로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슴다.

그날 처음 A군과 B군의 보호자들을 뵀었는데요...세련된 옷차림에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이셨던 A군 엄마와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B군의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계셨었슴다.



단체로 태극1장을 시연하기 직전 B군이 A군의 흐트러진 도복 매무새를 말없이 고쳐주며 아이들을 둘러보고 씨익~ 묘한 썩소를 날리는 모습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저는;;; 곧이어 시작될 태극1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괄약근에 땀을 쥔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슴다;;;  

태극1장이 B군의 구령에 맞춰 시작될려는 찰나, 저는 참사(?)가 벌어질 것이 두려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었는데요.........

가자미 눈으로 실눈을 뜨고 흘겨보던 제 눈앞에서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었슴다...


병아리반 막내기수인 꼬맹이들이 B군의 힘찬 구령과 함께 모두가 A군의 품새를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었슴다!!

원래 왼쪽부터 시작해야 되는 하단막기를 A군이 오른쪽으로 내지르면 똑같이 오른쪽으로 내지르고

정권 찌르기를 A군이 감자를 먹이듯 손바닥을 위로 한채로 내지르면 똑같이 위로 주먹을 내지르며 마치 한몸이 된 듯 혼연일체로 반대로만 품새를 하던 A군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었슴다!!!




한 마디로 감동의 물결이 파도가 치면스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쓰나미가 되어 덮쳐왔었슴다.

아마도 A군의 어머니가 슬쩍 눈가에 눈물이 맺혔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 날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슴다..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관장님께선 결국 문제아 병아리반 아이들 전체에게 노란띠를 수여해 주셨고

그날 단체로 달고나(뽑기)를 사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암튼... 짧지만 봄볕 따뜻했던 유년기의 추억 한자락이었슴다.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가 세계 자폐인의 날이었네요;;;

그때 그 병아리반 A군과 B군은 자라서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혹시 듀나게시판을 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ㅋㅋㅋ


 





오랜만에 들어와서 댓글 구걸합니다;;;

저는 관심받고 싶어요;;; 댓글 많이 달리면 오르가즘을 느낍니다. 

악플이나 뻘플도 우걱우걱 잘 씹어먹슴다;;;  댓글 좀;;;;;;;;;;;;;;;;;

 (굽신굽신 ●█▀█▄ ●█▀█▄~~;;;)

 
 (굽신굽신 ●█▀█▄ ●█▀█▄~~;;;)

 

 (굽신굽신 ●█▀█▄ ●█▀█▄~~;;;)


    • 신새벽에 감동받고 갑니다ㅠㅠ 영화화됐으면 좋겠네요ㅠ
    • 아 저 굽신 무지하게 오랫만에 보네요, 아주 오래전에 웃대에서 많이 보던건데.


      글 재밌어요. 잘 읽었습니다.

    • 아 오셨군요. 재미있었어요. 더 자주 오세요. 

    •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자주 글 남겨주세요.
    • 글이 너무 생생해서 감자가 먹고싶어졌습니다.

    • '야… 아무리 재밌게 잘 쓰시는 1분에 14타 님이라지만 이건 불편하다는 얘기 좀 들으시겠는데?' 하고 가드 내린 채 읽다가 회축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 간만에 좋은 글을 보니 안구가 정화 됩니다....
    • 으앙! 귀여워서 으후흐흐호홀랑~! B군아 스릉흔드! 글 읽고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ㅋㅋ 요새 터지는 꽃망울만큼이나 좋아요!

    • 이 글을 왜 이제 봤을고...


      금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 너무 좋은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 우홧! 이렇게 좋은 글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따신 봄날 같으네요.
    • 오 예상치 못한 감동입니다.이야...
    • 오오~ 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써주세요. 굽신굽신~

    • 푸핫 드러누워 읽다 빵터지는 바람에 제 배위에서 잠자던 고양이가 경끼를 일으키곤 네발로 펄쩍 뛰어 달아났어요.
    • 글이 너무 좋아요. 왜 이제서야 봤을까 하고 14타님 글들을 검색해봤더니, 19금 표시때문에 제가 건너뛰었나 봐요. ㅋ



      읽지 않은 글들이 많아서 횡재한 기분이네요. 제 댓글도 우걱우걱 잘 잡수시길.

    • 넘 잘 읽었슴당 자주 글 좀 써주시길 저도 굽신굽신
    • 지하철에서 보다 광자(?)처럼 실성한 듯 웃었습니다. 진심으로 감동받았습니다. ^^ 저야말로 1분에14타님 글을 자주 보고픈 맘에 굽신하게 됩니다.

      심지어 직접 뵙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번개모임이라도 하신다면 참석에 번쩍 손들고 싶을 정도에요.

      자주 와서 글 남겨 주세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0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3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8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27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5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0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4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19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2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1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49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0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