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실감을 삽니다.

진솔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날이 머지 았음을 느낍니다. 외롭기 때문이겠죠. 여기서 어느 정도 꺼내볼까 합니다. 듀게에 오는 이유는 삶의 실감을 사기 위해서 입니다. 가끔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친구를 정리하라는 권유가 쉽게 나오는 걸 보면 사람들이 참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구나 싶습니다. 최근의 저에겐 두 명 정도를 제외하면 길게 수다를 떨 친구는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그 중에 한 명을 치워내라고 누가 말한다면 웬만한 문제가 아닌 한 쉽사리 결정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겠어요'를 보며 조금 부럽기만 한 정도이지요. 이런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유도 제 자신이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라 감정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구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나아가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겠지만 하지 않는/못 하는 자신을 몇 년간이나 지켜본다, 가 반복되니 피로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현대 사회가 제게 준 선물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과 그 공간에서 주로 쓰이는 소통 방식이 문자 언어라는 데 있겠죠. 손으로 글을 써야 했다면 악필에 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었을 것이고, 대화라면 제 발음에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많았겠죠. 오직 문체와 문단 및 편집으로만 개인의 특성이 전해지는 세계를 전 사랑합니다. 무색 무취하죠. 컴퓨터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들을 쪼개어 넘겨주는 세계란 안전하게 자기 몸을 숨기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전 제게 속한 다른 건 싫어하지만 제가 쓴 글들은 좋아합니다. 가끔 오래전에 쓴 글을 읽어보기도 하며 비일관적인 자신을 느끼기도 합니다. 글솜씨가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유쾌함도 있고 과거의 난 참 낯선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기에 글을 쓰기 어려우면서도 글을 쓰려 노력합니다.


살아있다는 걸 언제 느낄 수 있을까, 거의 식물 수준의 감수성이 아닌가 싶은 삶을 살아고 있어요. 그러나 일상에서 삶을 체감하는 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제게 극도로 위험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 한 번에 공황에 빠져 수분을 정신 못 차리기도 했습니다. 쓰러졌다는 건 아니고 온 몸이 경직되고 주변 세계에서 제 자신을 추출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던 거에요. 두세번 그런 경험을 한다면 물리적 삶에서 자각을 통해 삶을 실감하려 도전한다는 건 매우 두려운 일이 되죠. 현재에서 벗어나려면 묵묵히 일상을 받아들이며 지속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습관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을 접고 행동을 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산다는 느낌의 정수는 대화에 있다고 느낍니다. 두 명 이상이 개인성을 가지고 발화하는 그 순간, 서로를 마주하는 그 순간에 있어요. 그것은 채팅에, 트위터에, 게시판에, 전화 통화에, 편지에 각각 다른 색깔로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실시간, 나와 같은 순간에 서로를 자각하며 함께 있어야만 한다는 거죠. 이 중 제게 가장 맞는건 편지와 게시판과 같은 지연되면서도 서로에게 곧바로 응답할 긴장을 주지 않는 매개체지요. 그래요, 이런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겠어요.


실감이 감각이란걸 떠올려보면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겁니다. 무언가를 느낀다고 해서 그게 무거운 몽뚱아리를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진 않거든요. 게다가 아프지도 달콤하지도 않는 묘한 감각으로는 자신을 격려하기 힘들죠. 그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미하게 행동해야할 이유가 제겐 있어요. 있다기보단 최대한 만드려 힘쓰네요. 


망상인지 실제인지 모를 어디선가 본 단어 중에 '삽'이란 단어가 있어요. 우울증의 거대한 주기를 뜻하는 말인데 크게는 2~3년의 주기라고 하더군요.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재발이라는 말과 함께 부가설명에 나온 단어였죠. 제 기억엔 있지만 실제 없는 단어일지도 몰라요. 사실 확인하는걸 꺼리고 있기도 하죠.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다시 밀려오는 거대한 이유없는 슬픔이란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요.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요. 다만 여기서 부끄럽다는 것은 병세도 외부적 문제도 없이 정상인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돌아와서, 많은 인터넷 게시판들은 대화를 담고 있고 대화가 계속해서 태어나는 것이 서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는 그것을 사기 위해 옵니다. 가게가 닫지 않았으면 하는군요. 자기 취향인 단골 가게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으니까요. 

    • 무색무취의 공간을 의식해서인지 게시판의 대화에선 선뜻 감정과 진실을 좀 더 담아 상대방에게 표현하려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이 글이 참 좋습니다. 이런 말과 생각을 가진 당신과 좀 더 대화하고 지켜보고 싶어요." 라는 게 지금 문자로 글쓴이에게 드리는 제 응답입니다. 동의합니다. 이런 곳에서의 대화가 편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특정한 버릇과 말투와 체취를 그대로 느끼며 대화할 현실의 누군가가 아직 필요하고, 없어 외롭습다.
      • 결여된만큼 나머지에 집중하게 되서 일까요. TV가 라디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라디오를 듣는게 편한 것과 비슷한 이치겠죠. 전 수다를 떨고 그 대답을 들었더니 이상하게도 일상을 진행할만한 힘이 나는군요. 역시 수다를 떠는게 쓸모 없는 일이 아니에요.. 대답 감사드립니다.

    • 게시판에 생각의 흔적을 남기는 경로, 익명의 소통이 갖는 의미에 대한 산뜻한 보고서를 읽은 기분이네요.

      이 글을 작가들이 좋아합니다.

      삶의 실감이라.... 부정형 물질처럼 흐느적 거리다가 관계속에서 빚어져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

      그래서 같이 있음으로해서 조금더 나은 모습이 되는것처럼 느껴지는 관계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되는거 같아요.
      • 자기만의 언어와 아종을 위한 입출력장치를 가진 컴퓨터를 곰곰히 고려하는터라, 왠지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은 컴퓨터가 알아듣도록 모든걸 거기에 우겨넣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하게도 그런 표준화에서 인간 끼리의 가상적 외형이 같아지고 익명을 획득하게 되죠. 원래 있던 개성은 참 많이 잃어버리니, 묻어나오는 개성을 예민하게 느껴야 상대방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신이 바깥이라고 생각하는) 외부와 (자신이 자아라고 생각하는) 내부 양면에서 느낄 수 있을텐데, 저는 외부 쪽이 부족해서 그런듯 싶습니다. 좋아지는가 나빠지는가는 제게 큰 상관은 없고 느끼는가 느끼지 못하는가가 중요해요. 고통이라는 말은 있는데 감통이라는 말은 왜 없는지 싶기도 하고.

    • 잔인한 오후님 글 읽는 것이 아직 듀게 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 할 지 마치 은전 한 닢처럼 꺼내서 베시시 웃고 또 걸으며 문뜩문뜩 떠오르는 기쁨을 즐겼음을 고백합니다.
    • 잔인한 오후님의 글은 보증수표예요. 어떤 주제든 고급 품질을 담보하는.

      저 또한 님 글의 팬이라는 고 밝혀야겠네요.
      • 우울한 글에 이리 등을 토닥여주시는 분들이 많다뇨. 글이 절을 받기 위해 엎드려 있는 행색인지 다시 살펴봐야겠어요.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가끔 올려주시는 글들이요. 새벽에 천천히 읽으면 좋습니다. 이상하게도 진지하게 꾹꾹 눌러써서 올려주는 글들이 쓸쓸한 글타래만큼이나 마음에 등불을 밝혀 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진지함들은 좀 버거울 때가 있는데, 이곳에서의 그것은 그렇지 않으니.. 듀게의 힘인지 '글'의 마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렇습니다.
      •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생각을 기다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이란게 마침표를 찍고 등록을 하는 순간 저에게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되고, 그리고 다른 이가 읽을 때 온전히 그 머리와 마음에서 재구성 되어 찬찬히 흐르기 때문에, 마치 자기 귀를 자기가 팔 때는 안 아프게 팔 수 있는 것처럼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은 없나봅니다.

    • 글에 공감 드리면서.. 저도 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비록 상황은 쉽지 않으신 것 같아 보이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지옥을 갖고 있다는 말을 되뇌이며. 저도 무언가가 더 필요할 때 인터넷 공간을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블로그를 가장 열심히 했었을 때도 가장 외로웠던 때였고. 아직 저에게도 듀게는 괜찮은 단골집이고 새 단골을 찾아나설 여력도 없지만.. 한 말씀만 드리자면 새 단골 집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반드시 괴롭지만은 않을 수다 있다는 거예요. 전 요새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새 단골집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에 빠져있거든요. :) 좋은 하루 되시길. 

      • 지구 반대편에서 단골을 만드는 여정을 엿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넷에서 새로운 단골을 찾아 나서련다면 원래 다니던 집부터 더 부지런히 다니게 된 후가 되지 않으련지 싶습니다 :P 게다가 듀게 패쇄 당시 이 곳 저 곳을 둘러다니다 보니 정착할 곳이 마땅히 없더군요. 제 넷커뮤 취향이 그렇게 편협할 줄이야. 오프에서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시도해 보지 않을까 싶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8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0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