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엔 캡틴 아메리카 2편을 재관람하기 위해 1편을 복습했어요.
친한 동기 하나가 마블팬이라 저보다 먼저 이렇게 했고 저한테도 1, 2편 재관람을 종용하고 있었으니
내일 출근하면 다시 봤엉? 하고 물을 게 분명한데 제가 1편 블루레이 사야겠어요- 하면 흐뭇해하겠죠.
처음 봤을 때는 입대 좌절-수퍼솔져로 거듭남-연예병사 흑역사 등으로 쭉 이어지는 스티브 로저스의 심리묘사는 훌륭하다고 느꼈으나
레드스컬이 참 허접하고 유치한 악당이라고 생각했고 그 탓에 후반부 들어서는 몰입도가 확 떨어졌어요.
아니 가면을 뚫고 표정을 전달하는 배우를 캐스팅 해놓고 저거밖에 못한단 말이야? 싶었거든요.
스티브 로저스란 인물은 세상 사람같지 않은 이상주의와 수퍼솔져라는 공상과학의 영역이 결합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설득력 있고 현실적인 질감이 살아있는 데 비해서
히드라 및 레드 스컬은 그냥 욕심 많고 반쯤 미친, 수퍼 히러로물에 쉽게 따라붙는 전형적인 나쁜놈으로 밖에 안 느껴져서 이질감이 심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이미 캡틴에 대한 팬심으로 영화를 본 상태라 그런지 딱히 못만든 악당이란 생각조차 안들었습니다.
레드 스컬이 캡틴을 향해 너도 인간성을 잃었니 어쩌니 운운할 땐 아이고 이 놈아 좀 상대가 동요할만한 대사를 뱉어라 말이면 단 줄 아나 진짜-
이러면서 모음남발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 외엔 특별히 이상하다거나 엉뚱하게 웃기다거나 하는 일 없이 무난하게 봤어요.
처음에도 좋았던 토미 리 존스의 츤데레(?)나 패기와의 로맨스는 다시 봐도 여전히 마음에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으로 후반부에 패기가 캡틴에게 키스하고, 캡틴과 눈이 마주친 토미 리 존스가 난 안 해!라고 외치는 부분을 꼽을 정도로요.
캡틴은 애시당초 그 고지식함에도 불구하고 동정심에 호감이 생긴 인물이니 더 안됐고 말고 할 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비행선에서 패기와 마지막으로 교신하는 장면에선 울 뻔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2편에서 잠깐 나온 정신이 온전치 못한 패기의 모습이 겹쳐져서 순간 울컥했어요.
그리고 오늘 조조로 본 2편은 본지 일주일밖에 안돼서 딱히 새로운 감상은 없었고 그냥 캡틴이 참 귀엽더군요.
패기의 나는 내 인생을 살았는데 당신은 그러자 못한 게 안타깝단 대사나 팔콘의 뭘 하면 행복해? 라는 물음에 모르겠다고 답하는 모습,
절친이었던 버키와 적으로 마주친 상황 등등은 처음 볼때도 눈에 잘 들어왔는데
이번엔 팬심이 그득 차오른 마음으로 다시 보는 거라 캡틴의 귀여움을 골라봤달까요.
저번주엔 기껏해야 봉준호 감독이 반했다던 속눈썹 정도만 눈에 띄었는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2편 최고의 순간으론 쉴드 본부에서 탈출하면서 방패 하나로 비행기 추락시키고 짓던 새초롬한 표정을 고르겠습니다.
이십대 초중반까진 베르사이유의 장미랑 빌리 엘리어트로 팬질을 하면서 지내다가
최근 수년간은 의도치 않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새로운 인물을 파게 될 것 같은 예감이에요.
마지막으로, 평소에 수염이 어울리는 남자는 잘 생긴 사람이고 그 사람이 말끔히 면도를 하면 더 잘생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크리스 에반스만큼은 예외입니다. 이 사람은 수염 기른 게 더 멋져요.
캡틴 아메리카 마스크 쓰면 맨얼굴에선 안 보이던 귀여움이 터지는 걸 보면 일부를 가려야 매력적인 얼굴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