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모두 폐허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잡상으로 쓴 글입니다.

불쾌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트위터를 하면 여러 봇들이 있는데 특히 시를 쓰는 봇들을 여럿 팔로하고 있어요.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종종 있는데 그 중 이런 시를 보았어요.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왠지 제가 지난 자리마다 폐허가 되는 것 같아, 그것이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전 언제나 뭔가를 소중히 하지 못했죠.

마음에 드는 물건일수록 제가 그 물건을 소중히 하는 방법은 소중히 싸서 책상 아랫쪽 서랍에 넣어두는 것 외엔 있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만지면 만질수록 그 물건은 곧 원래의 형태를 잃고 말겠죠.

사람도 그랬어요. 소중히 했어야 할 인연을 소중히 하지 못하고, 언제나 거짓으로 떠나보냈죠.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제가 나쁜 것일지도 몰라요.

적어도 아무 잘못없는 사람에게서 모두가 떠나가진 않겠지요...?

지금껏 날 떠나간 사람, 내게 등돌린 사람, 내가 있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모임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이젠 손대는 것마다 모두 폐허네요.


catgotmy 님의 글에도 오늘 댓글을 달았었는데.... 후회되기 시작해요.

혹시 내가 댓글을 달아서 떠나가신 것은 아닌가, 하고.

전부는 아니어도, 마지막 방아쇠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괜히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되면 어찌할 줄을 모르겠어요. 

괜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도 혹시나, 만약에 하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습니다.


뭔가 자기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어떡해야 좋을까요...

    • 저도 황지우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의 후회가, 그의 폐허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는지...

      • 기형도..^^

        황지우시인도 좋아합니다!^^

        에아렌딜님 닥슬님 반가워요
        • 헛, 저는 황지우님의 '뼈아픈 후회'인줄...;;


           


          반갑습니다!


          봄이네요 ㅋ

    • 시인도 인생이 그저 그런거란 탄식이라 생각합니다 힘내시길

    • '나는 하찮다.' 는 하등 쓸데 없어 보이지만 버릴수 없는 의식을 이럴때 불러다 써야죠. 개똥을 약에 쓸 기회가 왔는데 버릴쏩니까. 



      그 사람들의 궤도에서 나는 잠시 불었던 바람이나 햇빛 같은 것, 외투를 흔들거나 찢을 순 있어도 본질엔 가 닿지도 않았습니다.



      진짜 남을 파괴할만큼 영향을 끼쳤다면 아리송이 아니라 절절히 알아져요. 



      스스로 만들어내는 (모순이 있는)걱정은 되도록 깨서 수를 줄입시다.   

      • 참말로 좋은 댓글이에요
    • 말도 안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혼자 힘만으로 초토화시키기란 여간 능력이 있는 것 아니면 힘든 일이죠.
    •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에아렌딜님 역시 남에게 그닥 대단한 영향력이 없습니다. 방화/강도/상해/사기 급이 아닌 이상 말이에요 :) 설령 에아렌딜님이 남을 열받게 만드셔도요. 뭐.. 길어봐야 3일까지겠죠.

      그러니 '혹시..혹시' 안 하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모든 인연은 끝이 있습니다.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가정에 가정을 더해봐도 소용 없어요. 저도 소중했던 인연들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자책하는 스타일이라 공감에 되지만요.

      차라리 다음을 기약합시다 우리! 다음엔 끝이 날 때까지 좀 더 충실하게 인연을 대하기로.
    • 고미숙씨가 쓴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라는 책이 있는데 한 번 읽어보세요.
    • 타인은 내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습이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관심 있는건 나뿐이에요. 누구나요. 나만 특별한 게 아니고요. 가끔 이것도 또다른 종류의 나만 특별해 류의 선민의식이 아닐까 싶어질때가 있습니다. .
    • 어, 본문에 언급한 시는 황지우 씨의 것이 맞는데요.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음으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 시도 좋고 댓글들도 좋아서 제가 위로받고 갑니다. 에아렌딜 님 감사해요.

    • 그렇게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 덕분에 깊게 공감했던 황지우 시인의 작품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네요. 글 올리신 에아렌딜님과 "뼈 아픈 후회"를 기억해 주신 닥터 슬럼프님, 시를 댓글에 달아주신 필라멘트님 모두 감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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