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Smoke(1995)’

폴 오스터 소설을 좋아할 거 같단 이야길 종종 들었습니다. 귀에도 익고, 뭔가 좋은 글을 쓸 거 같은 느낌이라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봤었죠.

 

소설은 취향을 타는 분야다보니 저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읽어내기가 어려운데, 저에겐 폴 오스터의 소설이 그랬습니다. 왜 재밌는지, 왜 좋아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폴 오스터에 대한 실망은 저에게 있어서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죠.

 

스모크란 영화를 보고나서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읽지 보지 않았지만 좋은 소설일거 같아라는 느낌이었거든요.

 

 

#1. 담배

제가 느끼는 좋은 영화의 기준중 하나는 배경에 대한 몰입도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겪어보지 않았더라도), 그 시절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랄까요. 이러한 매력은 사소한 부분에서 결정되곤 합니다. 디테일한 소품 재현, 적절한 로케이션, 사소한 대사들.

 

스모크의 첫 장면을 보면 담배 가게 매대 위에 소브라니 칵테일담배가 놓여져 있습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 받아 핀 경험이 있는데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다르더군요. (담배 맛은 그저 그랬습니다)

 

스탠바이미는 소설과 영화 모두 훌륭했습니다. 소년들이 피던 담배가 윈스턴인걸 보면서 스티븐킹은 윈스턴을 정말 좋아 하는구나(혹은 그 시절 미국에서 윈스턴의 인기가 좋았다던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동안 보기 어렵던데 요즘 다시 윈스턴을 팔더군요.

 

 

#2. 카메라

하비 케이텔이 극중에서 사용하는 카메라는 캐논의 AE-1 제품입니다. 입문용 필카의 대표 기종이죠. 필카에 관심이 있어서 이래저래 찾아보던 시절 스모크를 다시 봤었는데 당시의 감흥도 나름 대단했습니다. ‘... 이래서 유명 브랜드를 사야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구요. (동질감을 느끼고 싶단 욕구 때문이었겠죠)

 

AE-1의 경우 여러 영화에 등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일본 영화라던데 취향이 아니라 그런지 잘 기억나지 않네요.

 

필름 카메라 2대와 디지털 카메라 1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부 처분하려고 어제 중고 시장에 올렸는데 오늘 다 팔릴 거 같네요. 처분한 돈으론 LX3LX5 중고를 구매하려고 합니다.

 

 

#3. 이야기와 대사

스탠바이미엔 좋은 대사들이 많습니다. 4명의 소년이 시체를 찾아가는 동안 고디와 크리스가 나누는 대화는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제 중학교를 가면 우리 같은 놈들과는 놀지 말라는 크리스(리버 피닉스). 문제아처럼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녀석인 거죠. 집을 나서기 전 제발 좋은 친구들 좀 만나라는 아버지의 훈계를 들을 뒤라 그런지 크리스의 대사는 더 애잔하게 들렸습니다. 굿 윌 헌팅의 밴 애플렉도 떠올랐구요.

 

시작 부분의 다락씬에서 가볍게 지나가는 대사도 그랬죠. ‘오늘은 아버지가 술은 많이 안 드셔서 괜찮을 거야뒤에 이어지는 대사는 더 좋았습니다. ‘그래도 또 날 때리시겠지만

 

어린아이들이 내뱉는 성숙한 대사의 효과에 대한 신뢰는 동서양을 막론합니다. 한국 드라마엔 언제부턴가 어른스런 소리를 하는 꼬마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중년 이후의 어른들은 이런 캐릭터가 나오면 질리지도 않는지 늘 귀여워 죽으려들 하더군요. (최근 참 좋은 시절에 등장하는 홍성흔의 딸을 보며 자지러지는 우리 엄마가 좋은 예)

 

하지만 둘의 차이는 큽니다. 스탠바이미에서 크리스가 일종의 애잔함을 가져다준다면, 한국 드라마의 꼬마들은 오버를 통한 웃음을 가져다주니까요. 한국 꼬마들이 내뱉는 대사는 배우 뒤에 서있는 작가의 모습이 너무 선명해서 불편합니다. 천진난만한 게 더 어울릴 나이에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항상 제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4. 잡담(위에도 다 잡담이지만)

동네에 있는 알라딘 중고 서점을 갔더니 절판코너란 게 있더군요.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라는 책을 팔고 있길래 관심 있게 봤습니다. 스모크의 원작인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인가 해서 봤더니 다른 책이더군요.

 

기사를 찾아보니 95년 당시 웨인 왕 감독이 영화 홍보를 위해 내한했더군요. 대중적 인기는 없었을 거 같은데 말이죠.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향이 컸을 거 같습니다)그 당시 개봉관에서 영화를 봤다면 지금처럼 재밌게 느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지금 이런 잡글을 쓰게 되고, 또 스모크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 건 결국 타이밍의 영향이 큰 거 같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폴 오스터의 책을 보게 되었고, 선물 받은 담배에서 연관성을 느끼고, 카메라를 팔고, 또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으니 말이죠.

 

일상한 사소한 사건들에서 일종의 맥락이 느껴지게 되고, 새롭거나 익숙한 감정들이 생겨나게 되는 순간. 그럴 때 삶의 작은 행복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다행히 카메라들이 잘 팔려서 원하던 카메라를 살 수 있을 거 같아 행복한 주말이기도 합니다. 듀게 분들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으면 하네요.

    • 웹에서 보기 좋게 줄 바꿈을 하면 모바일에선 이상하게 보이더군요. 지금 쓴 글도 모바일에선 제 취향에 맞게 보여서 좋은데 웹에선 참 보기 싫네요. 절충안이 없을런지 쩝.

    • 저도 영화가 좋아서 책을 구해보려 했는데 절판된 지 오래돼서 어렵더군요. 김영하 작가 팟캐스트에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나온 적 있어요.  시간되심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이 아저씨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이야기하는 것, 은근 다작하는 분이라는 것이 맘에 들어요. 유태계, 글쓰는 사람, 남편과 아들 등 자기 모습이 글에 자꾸 드러나는 게 호감이에요. 되게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 같아요. 그러면서 나 있는 곳 이야기는 아니니까 숨막히지 않게 읽게 되는 것 같아요.
    •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일종의 맥락이 느껴지게 되고, 새롭거나 익숙한 감정들이 생겨나게 되는 순간. 이거 너무 좋아요.


      저도 폴 오스터 좋을 줄 알았는데 별 감흥이 없어서 의외였어요.

    • 오래됐지만 저도 좋아한 기억이 나네요.


      저도 극속의 조숙한 어린이들 보면 불편해요.이건 내공이 뭐~~
    • 저도 영화로 대만족하여 따로 소설을 찾아보지 않은 관객! 원작도 훌륭한 작품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 정말 좋아하는 영화예요. 위에 리플 영상도 좋고요.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책은 있는데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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