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서점 옆을 지나치다가 충동적으로 구입했는데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우선 책이 얇고 단편들의 모음집으로 되어 있어서 평소 책을 안 읽는 저도 별로 부담이 없었어요. 그래서 단편 하나 읽고 나서 딴 짓 하면서 잠깐 놀다가 다음 단편을 읽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폈는데, 결국은 쉬지 않고 마지막 편까지 계속 읽게 되었습니다.
초능력 이야기라서 겨울 왕국의 엘사를 보면서 느꼈던 것 같은 약간의 대리 만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 영화나 엑스맨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훨씬 현실적이고 암울한데, 초능력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교훈적인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초능력이란 자신이 남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고픈 욕망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데, 그러한 점은 이 책이 청소년문학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단순히 에피소드 몇 가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에 관한 간단한 설정을 책 전체에 걸쳐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그것으로 인해 세상이 변해 가는 과정의 단면들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돈과 권력이 한국적으로 구질구질하게 개입되기 때문에, 읽다 보면 '초능력이 존재한다면 정말로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단편집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등장인물들과 사건이 여러 편에 걸쳐 반복해서 나오거나 언급이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편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부 제약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거죠. 단편들이 실린 순서가 시간순으로 되어 있어서 전체가 한권처럼 느껴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실려 있는 단편들 중에서 저는 '나비의 집'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액션물이 제 취향인 것 같아요. '돼지치기 소녀'는 인간만이 혼자 특별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하필이면 타이탄'은 전에 다른 곳에서 읽었는데, 그 때는 '배터리' 같은 설정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조금 답답했습니다. 이번에 앞의 단편들에 이어서 읽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이 쉽게 지나가게 되더군요. 마지막 편인 '성인식'에서는 오래 전에 읽었던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 살짝 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연상일 뿐이고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다른 단편들도 다 재미있었고, 책이 좀 더 두꺼웠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