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익숙하신가요?
이번 세월호 참사에 관련해서 나온 글귀 중에서
한 침묵 시위에 쓰인 "가만히 있으라" 라는 글귀만큼
폐부를 찌르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역설적인 표현이죠.
사실은
"가만히 있으라고?" 혹은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라는 의미인데 말이죠.
"가만히 있으라" 라는 표현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늘 기호 1번만 찍는 소심한 부모님으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광주 민주 항쟁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부모님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살았을 때 뭐하러 밖에 나와가지고....ㅉㅉ"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너는 괜히 데모하는 데 끼지 말고 도서관에 앉아서 가만히 공부만 해라."
지난번 대선 때 부모님께 선거 얘기를 꺼낼 때도 "너는 정치에 관심 두지 말고 가만히 니 직장과 애 키우는 일에나 신경써라."
침묵 시위에 나온 "가만히 있으라"라는 글귀를 본 후
승객들에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지시를 내린 세월호의 선장+선원들, 그리고 애통해 하는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을" 것을 요구하는 새누리당 정권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제 기억과 무의식에도 깊게 뿌리박혀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새삼 진저리를 치게 되더군요.
군대도 그렇지만 예비군 훈련가도 가만히 있어달라는 말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더군요
그렇죠. 굳이 부모님의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학교, 군대, 직장 등지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면서 몸이 저절로 반응할 만큼 우리를 길들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제 아이에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은연 중 내뱉는 것은 아닌지 곰곰하게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런 적이 사실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 "왜?"라고 대꾸하는 것에 익숙해져야할 듯 해요. 세월호 참사 때 선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안내 방송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왜 저러지?" "무슨 일이지?" 하면서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다니깐요.
"나대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가만히 있으라"란 표현은 "까라만 까, 어디 말대꾸야?" 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거친 군대식 문화랑 더 관련된 것 같아요. "왜요?" 라고 되물으면 건강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골치아픈 반항으로 취급하는 풍조는 학교나 직장에서도 흔한 것 같구요.
안타깝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풍조는 한국사회 곳곳에 뿌리깊은 지라 물휴지님같이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분에겐 사회 생활이 힘들 수 밖에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