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잡담 - 대구

0. 지인의 지인 쯤 되는 사람이 구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은 대구 기초의원이라면 열에 아홉일 새누리당이구요.몇달 전 우연히 같이 자리를 하게 되어서 이야기를 좀 들었어요. 편한 자리라 그런지 말을 잘 안 가리고 하던데, 추려보면 친박계의 박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비박계에 대한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는 거였습니다. 본인은 아무래도 공천을 받지 못할 거 같은데 공천이 친박계로 간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할 거라더군요. 그 땐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요.

1. 그런데,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로 비박계인 권영진이 선출되더군요. 여론조사에서는 동구청장 이재만과 친박 핵심 서상기가 십여프로씩을 앞섰습니다만 현장투표에서 권영진이 이삼백표 차로 1위를 하면서 이겼어요. 당연히 서상기가 해먹겠거니 하고 다음날 확인을 했었는데, 좀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새누리당이니 그놈이 그놈입니다만, 시내 한 복판에 박의 생가터 간판을 세워놓은 대구 아니겠습니까. 이변은 이변인 듯 합니다. 게다가 투표율이 낮아 조직표가 많은 쪽이 유리했을 판인데요. 이 쯤 되니 몇달전 신세한탄을 하던 그 구의원에게 얘기 좀 찬찬히 들어둘 걸 싶었습니다. 박과 친박이 흔들리고 있다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2. 재밌는 건 여론조사 결과와 현장 투표 결과가 다른 경우들이 제법 있었다는 겁니다. 대구 시장에서도 여론조사 3위가 후보가 되었고, 대구의 강남 수성구는 물론 북구, 서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대구에 구가 일곱개인데 그 중 세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거에요. 다들 반발들이 상당하고 몇몇은 무소속 출마도 불사할 모양인데요.(그런 거 하려면 대구시장선거에서! 하지만 하지 않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걸 단순히 새누리당의 여론조사 능력이 무능해서 벌어진 일로 봐야하는 건지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3.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두 당의 후보가 결정된 후 대구M사와 일요신문에서 같은 날 각각 여론조사를 했는데 상당히 큰 차이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2일 발표된 대구문화방송의 결과에서는 권영진이 47.5%, 김부겸이 26.3%로 두 후보가 20%넘게 차이가 났지만, 일요신문의 결과에서는 권 43%, 김 43.8%로 오차범위 안에서 김부겸 후보가 앞섰거든요. 전자가 맞다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후자가 맞다면 권영진이 후보가 된 건 아무 일이 아닐 정도로 어마어마한 이변 아니겠습니까.

4. 일단 두 여론조사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문화방송은 100% 유선전화로 진행을 한 것이고 일요신문은 유무선전화를 병행한 것이에요. 재밌는 건 유선전화에서는 권이 무선전화에서는 김이 각각 서로를 30% 가까이 앞섰다는 겁니다. 유선전화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생각을 해보면 이해가 가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머리가 좀 복잡해집니다. 새누리당의 경선에서 여론 조사결과가 크게 뒤집힌 사례들을 보면 이번 선거에서의 대구는 짐작하는 것 만큼 여당에게 유리한 건 아닌 것 같아요.

5. 친박이 떨어지고 비박이 후보가 된 상황이나 일요신문의 여론조사결과는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소극적 바람이 반영된 거 아닌가 하는 성급한 짐작을 해봅니다. 또 일요신문 결과에 따르면 2,3,40대들은 김부겸을 더 지지하고 있구요. 굳이 예측하자면 여전히 권영진이 유리하겠죠. 여론조사는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것이고 투표는 엉덩이를 들고 투표장에 가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란 걸 가져보게 됩니다. 김부겸 후보가 진정 당선을 목표로 선거운동을 하길 응원하게 되구요. 야당의 후보가 나온 것과 `당선권`의 야당후보가 나온 것은 많이 다를 거에요.
    • 김부겸씨 인상이 참 선하시더라구요.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정돈되지 않은 질문인듯 하여 삭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댓글 다느라고 못봤어요. 이왕 쓴 댓글이니 남겨두겠습니다.
    • 마가렛트/ 모바일로 쓴 거라 글이 이상한가봐요. 3-2-1-높은 변화가능성 순으로 봐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종종 지역 언론들이 하는 여론조사를 보면 대구시민들이 새누리당을 선거 개표결과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요. 선거 때만 와서 표를 걷어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이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다만 그 불만이 지금까지는 선거결과를 바꿀만한 표심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봅니다. 이 원인이 그래도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구관이 명관으로 가는 건지 유의미한/신뢰할만한 대안이 없어서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박의 당선 이후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지역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는데 의료도시니 하는 시도들이 별 성과를 보이지 않고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시민들의 실망이 박과 친박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권영진이 되지 않는다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거리 민심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구요. 제 주변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권영진도 단순히 비박이라기 보다는 쇄신파 평을 받는 사람인데요. 아시겠지만 김부겸과 함께 00년 쯤 한나라당 미래연대를 조직하고 대북송금문제로 김부겸이 탈당할 때 한나라당에 남아 미래연대를 맡아 운영했어요. (두 후보가 정치적으로 그리 멀지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기성정치권을 혁신하겠다는 게 핵심 주장이었고 그게 어느 정도 먹힌 것 같기도 하구요.

      친이를 비롯한 비박계들은 이번 후보들만 볼 때도 무시못할 규모인 거 같아요. 당장 대구, 경남, 제주, 강원 등 광역단위에서도 대여섯자리 가져갔더라구요. 사실 올 초부터 비박이 강세란 이야기도 있었구요. 새누리당은 이걸 부담스럽게 여기는지 계속 친박 - 비박을 나누는 걸 수면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해왔구요.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만, 새누리당 내부에서 친박이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거 같다 싶어요. 김황식의 문제의 발언도 그 불안감 때문에 무리하게 서울을 가져가려고 나온 걸 수도 있는 듯 하구요.
      • 자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 일단 여론조사 결과를 뭔가의 판단지점으로 삼는 것은 조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조작해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여론조사더군요. 그와 별개로 김부겸의 선전은 대단하다고 봅니다.


      대구에서 비박이든 친박이든 시장후보로 뽑힌 것은 ㅂㄱㅎ에 대한 대구 여론의 동향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아요. 정치에 조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나 비박친박이지 다른 일반시민들 눈에는 그냥 새누리당 후보일뿐일겁니다. 현장투표 결과는 새누리라는 틀 안에서 그동안 누가 지역에서 인심을 얻고 지역구 관리를 잘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요.
    • chloe../ 네. 말씀하신 부분에 크게는 동의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저 43.8%를 보고 마음이 조금 들떠서에요. 정작 저는 새정련을 지지하지 않는 게 함정입니다만.. 시장후보는 표 줄 사람 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대구 민심을 어떤 식으로든 정확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변화가 없다면 혹은 그 수가 적다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있다면 그걸 놓쳐서 또 한 번의 선거를 흘려보내고 싶진 않거든요. 설사 일요신문의 결과가 김에게 유리하게 풀린 거라도 5~10%의 차이라면 판 자체가 달라지고 시장 선거 결과는 모르는 거가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 저도 대구 선거에서 지지하는 후보는따로 있지만 김부겸 후보님의 선전도 기원합니다.
    • 서울 시장 선거보다 대구 시장 선거가 더 흥미롭네요. 김부겸 후보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 늦었지만 잘 읽었다는 댓글 달아둡니다. 새누리당이 동질한 인원들의 모임으로 착각하면 안 되겠죠. 내부 화학반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써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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