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이런저런 단상들

 

1. 

 제가 갔을 즈음 일본도 뭔 국제회의를 열고 있었습니다. 뉴스에 패널들이 나와 회담에 대한 몇 가지 포인트를 진단하더군요.

 중국, 러시아에 연일 까이느라 좀 우울해보이는 일본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한국의 G20 얘기는 뉴스 한 꼭지도 안 나오더군요.  

 "한국이 G20을 맞아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들 '매너'교육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일본신문에서 한 번 발견했네요.  ;;;;

 

  

 2. 

 영화 프로그램들을 취급하는 진보초의 헌책 가게를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일본의 영화 프로그램북은 그 공들인 표지며, 영화 스틸컷이며 자료며, 인터뷰며...  정말 한 권의 책이더군요. 

 깨끗한 상태로 비닐 포장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이 년도별, 작품별로 일별되어 있는데, 장관이었습니다.

 한 권에 우리 돈으로 만 오천원 꼴인데, 좋아하는 영화를 발견하면 아까운 생각이 안듭니다.  거기다 히치콕 영화제 프로그램들을 100엔 특가로 구하는 행운을.    

 

 '여행자'를 상영하고 있던 진보초 이와나미 홀에서도,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의 프로그램을 싼 값에 팔더군요. 

 

 

3.

 하네다 신공항은 아주 편리했습니다. 에도 시대를 테마로 삼았다는 공항의 몰은 외국인보다는 자국인 취향에 맞춘 인상이라 가격이나 분위기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전반적인 수속 절차나 중심부로의 이동 절차 등이 대폭 간소화되어 이전보다 피로감이 훨씬 덜 했습니다.  이제 과연 누가 나리타로 갈까 싶더군요. 인천과의 경쟁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면세점은 여전히 인천 쪽이 확실히 우월할 것 같던데..  

 

 

4.

 호텔 빌라 폰테누의 아침 시스템이 바뀐 것 같더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빌라 폰테누의 단점 중 하나가, 매일 똑같은, 지나치게 간소한 아침식사였죠.  

 다른 지점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제가 간 지점은 샌드위치 도시락 셋트로 아침식사 메뉴가 바뀌었더군요.

 샌드위치 종류는 매일 같았고, 함께 먹는 에그 스크램블이나 고기, 샐러드 종류가 매일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물론 저는 도시락을 카운터에서 받아 예전처럼 로비에서 먹었지만, 방으로 배달해주기도 하더군요.  그럴 경우 쥬스나 커피까지 배달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침식사에는 큰 집착이 없는 편이라, 이전이나 바뀐 메뉴나 뭐 다 그냥저냥 무난하게 받아먹었지만, 이전의 그 요상한 스프;;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개선되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약간은 어색한 '로비 아침식사'의 진풍경도 사라져서 호텔이 훨씬 더 차분해진 인상이고요.  빌라 폰테누 특유의 합리성, 경제성이 발휘된 변화랄까요. 점점 이 호텔 체인의 '인간냄새 제거' 프로젝트가 완성형 단계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호텔은 사람 한 명 없이 오로지 기계화와 자동화로 호텔 운영이 이루어지는, 완전한 싸이보그 호텔이 될 것 같다, 라고 처음 이 호텔을 이용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뭔가 정나미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런 이유로 전 이 호텔이 묘하게 편해요.

 

 

5.

 제가 일본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진보초의 재즈 바가 하나 있습니다.  밤에 가본 적은 없고, 낮에 까페를 겸할 때만 가본 곳입니다.

 재즈 매니아인 노부부가 하는 곳인데, 아주 작고 밝고 모던한 바입니다. 양복입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아무 말없이 바에 앉아서 재즈 들으며 쉬다 가는 곳이기도 하고,

 주인장과 이런저런 재즈 얘기를 나누는 그런 바인 것 같아요.  저는 바가 아닌 테이블에 앉아 주로 모르츠 맥주 한 병 마시며 지친 다리도 쉬고 수확물도 구경하고, 또 주인장과 손님들도 훔쳐보며 한 두 세 곡 듣다 나오는데요. 그러고 있다보면, 잡지나 책 편집자로 보이는 양반들이 종종 옆에 보입니다. 교정쇄를 잔뜩 들고 재즈 드럼비트에 신들린 듯이 펜을 놀리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관광객인 내가 좀 미안해지는, 그들만의 아지트를 침범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번에 밤에 한 번 그 재즈바를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낮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주인장 얼굴도 한층 밝아보이고, 손님들도 많이 떠들고 있고, 멋스런 여성들도 한 두명 보이고,  음악은 더 큰 소리로 새어나오고...  관광객인 제가 섣불리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아우라가 있더군요.    다음에 또, 라고 혼자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6.

 신주쿠의 기노쿠니야에 갔다가 그 옆 도큐핸즈를 삼십 분 정도 구경했습니다.

 도큐핸즈에 가면 살 게 그렇게 많다는데, 저는 고작 고른 게 제 이름 석 자 중 하나를 찍을 수 있는 작은 도장과 금색 인주였습니다.  

 귀여운 도시락 셋트를 조카 선물로 사갈까 하다가, 이번 일본 여행은 지인이나 가족 아무도 모르게 온 거라는 걸 상기하고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이 많은 필요와 편리 중에 왜 난 이렇게 사고싶은 것, 필요한 게 없을까 조금 우울하더군요.  인테리어, 주방, DIY, 장난감, 취미, 사무용품, 시즌 상품, 그 어떤 섹션에서도 갈 곳 잃은 양처럼 멍하니 배회만 하다가 나왔습니다. 백화점과 달리 도큐핸즈에서는 묘한 죄책감마저 들더군요. 난 정말 '인간적 생활'이라는 것과는 담쌓은 인간인건가... 예전에 유럽 여행 중에  이케아에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죠.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을 고르는 가족들, 연인들이 왠지 모르게 부러워서, 샤워 커튼을 괜히 골라보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7.

 돌아오니, 역시 집이 좋습니다.  허나, 조만간 또  여행가고 싶군요.      

 

    • 도쿄와의 거리를 봐서는 하네다보다는 나리타를 선호했었는데, 하네다에 신공항이라니.. 다음 일본행에는 하네다쪽으로 알아봐야겠군요.

      도큐핸즈에 저도 가봤어요. 뜨개질 좋아하시는 엄마 때문에 들린 곳이었는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어요.
      요즘은 국내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엄마 따라 몇번 가 본 뜨개실-바늘 파는 곳은 그야말로 '열악'한 재래시장 건물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구멍가게가 전부였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품목들이 섹션별로 구비 되어있는 걸 보고 놀랐었죠.

      저도 여행가고 싶어요.
    • 간데 또 가보고 싶은데가 있죠.
    • 소문으로만 들었던 도큐핸즈에 저도 가봤는데 구경할것도 살것도 너무 많더라구요.
      가깝진않지만 챙겨야 하는 주변 사람들 선물은 모두 도큐핸즈에서 사왔는데, 반응이 다들 좋았어요.
    • 하네다 신공항에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게이큐 특별 쾌속을 타니 도쿄 중심부에 있는 제 숙소까지 딱 35분 걸리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가격은 약 700엔. 게다가 수속 카운터도 많아서 수속하는데 1분도 안 기다렸습니다. 짐 검사도 신발 같은 거 벗을 필요 없이 바로바로 통과. 시간이 남아돌게 해 돈 더 쓰게 만들려는 전략 같았어요. ^^
    • 녹색귤/ 선물할 것은 정말 많더라구요. ㄷㅏ음엔 여행간다고 이실직고하고 리스트를 작성해서 저도 도큐핸즈에서 쇼핑하는 기쁨을!
    • 녹색귤,Thule/도큐핸즈에서 어떤 선물을 사셨나요? 참고되게 알려주시면 안될까요ㅠㅠ 전 일본에 사는데 사람들 선물을 뭘 사야할 지 도통 모르겠어요.
    • 저는 신주쿠 로프트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굉장히 사고싶어야할 것 같은데, 아무런 욕구도 일지 않아서 '????' 이런 말풍선이 머리 위에.
    • 혹시 그 재즈바 이름 알 수있을까요?
    • 저도 진보초의 재즈바 이름 알고 싶어요.
    • 제가 글을 올리고 바로 외출을 해서 지금에서야 답글을 봤습니다. 그 재즈바 이름은... 쪽지로 알려드릴게요. ^^
    • 으하하하 / 저같은 경우, 유치원 다니는 조카 아이에게는 예쁘고 귀여운 도시락이나 할로윈 용품을, 아버님에게는 각종 아기자기한 DIY 용구들을, 어머님에게는 헤어 트리트먼트용 수건이나 구두 충격 흡수 젤을, 동생에게는 귀엽고 간편한 겨울용 귀마개를 선물로 사주고 싶었습니다. ^^ 그밖에도얇고 가벼운 우산이나 작고 가벼운 보온병 등도 선물용으로 괜찮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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