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절, 떠오르는 영화 한 편
이미 10여년이 되는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들이 과거와 비교할 때 유난히 심한 방식으로 기성 언어를 거부하더군요.
맞춤법이든 어휘이든 조어법이든 표현법이든 규범적 언어, 표준어로부터 일탈해야 한다는 강박이 보였어요.
그런 언어는 촌스러운 것이라는 듯 어떻게든 국어를 파괴하는 게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일반화되었죠.
젊은 세대는 언제나 자기들만의 어휘를 만들게 마련이지만 이건 특정 세대의 색깔을 표시하는 도구로 머물지 않았죠.
어휘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볼 때 언어의 거의 전분야에서 전복, 조롱, 반항, 거부가 일어났으니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게 80년대 운동권-대학가의 혁명주의 언어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들도 국어파괴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언제나 '거부'는 '대안'의 제시로 이어졌죠. 지나칠만치 강박적으로요. (한국어 조어법을 무시한 괴상망측한 순우리말 어휘들의 범람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의 국어파괴는 그때와 분위기가 너무 달라요.
한 나라의 국어라는 것이 소속사회의 규범, 법, 기성질서를 대표하는 가장 고도화된 상징체계임을 감안할 때
이런 총체적 부정은 사회적 코드에 대한, 진지함과 권위 일반에 대한 전반적 불신의 증후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그것도 아니면 기성질서에 편입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의 증후이거나.
아마 늙은 꼰대의 시각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제 눈에는 너무나 대비되어 보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언어부터 바꾸려던 용감무식한 과거 세대와
세상을 못 바꿀테니 언어나 비틀면서 노는 젊은 세대.
아마 우리 세대가 고리를 끊지 못한 제도적, 문화적 폭력성의 산물이겠죠.
정신적으로 매맞고 자란 아이들...
터무니없이 부담스러운 무겁고 거창한 언어에 취한 세대와
코드의 붕괴를, 의미작용의 오작동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언어의 파편들 속에서 사는 세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저는... 우리는...
해삼너구리/'행복한 사전' 영화 주인공과 동료들이 패스트푸드점에 매복(?)하여 여고생들의 신조어들을 수집하여 살아있는 동시대의 사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autechre/말을 맺지 못하시는 심정 알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5~6년 전에는 더 심했죠. 그러다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왔고요. 요새 다시 약간 심해지는 경향이 있긴 한데,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면 항상 자정작용을 동반하더군요.
영화 찾아서 보고 싶네요.
한국 대학의 일본 유학생이, 왜 한국 대학생들은 사전을 가지고 다니지 않냐는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전자사전은 많이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전은 종이 중사전이었어요. 한국 출판사에서는 사전을 만들면 회사가 뼛꼴 빠진 후에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답니다. 왜냐하면 안팔리니까요. 과거 유명한 동아 출판사에서 사전을 만들고 폭삭 망해 두산이 인수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그랬죠. 사전이 언어학의 꽃이라고 그러는데,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전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조금은 걱정스럽죠. 포털에서 제공하는 사전은 그리 좋아하질 않는데 변화해온 과정을 소급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 지나간 글 댓글도 다시봐얄 듯. 고맙습니다. 저도 영화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팬터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