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에 대한 의식흐름에 따른 바낭.
처음으로 흰머리 한 가닥을 발견했을땐 신기했습니다.
두번째 흰머리를 발견했을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작게 내려앉았던 것 같고요.
눈 밑에서 첫 주름을 발견했을땐 확실히 덜컥, 심장이 떨렸어요.
아 정말로 늙는구나. 앞으로는 내 몸이 쇠락하는걸 지켜봐야하는구나. 자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후로 두번째, 세번째 주름이 생길때까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받아들이지 못해 끙끙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흰머리는 열심히 수를 불렸고요.
양친 모두 새치가 많았으니 충분히 예견된 결과죠.
세번째 주름쯤이 자리를 잡고 팔자 주름이 표정을 짓지 않아도 미미하게나마 존재를 피력한다는게 거울에 비쳤을 쯤,
나는 비로소 나의 노화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후로 나타난 작고 꾸준한 변화들을 어느날은 타자의 시선으로,
어느날은 감상에 젖어, 또 어느 날인가는 즐겁게 발견해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 종종 부모님들의 흰 머리를 뽑곤 했으니까요.
몸에 남은 기억이 뽑아드릴까요? 라고 말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에게나 그러는건 아니고 그때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상대가 아깝다며 거절을 했는데 그리고 나서 자긴 머리가 하얗게 셀 날을 고대하고 있다 말했었습니다.
속으로 아이고 재밌다 깔깔댔었어요. 분명히. 내색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 말을 들어서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은 인과 따위 마구 뒤섞어 시작과 끝을 알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 날의 기억이 한참이 지나서, 내 머리통에 흰머리가 심심찮게 보이니 떠오르네요.
가르마를 바꿨더니 흰 가닥들이 톡톡 붉어집니다. 이걸 둬 말아 고민하다
아직은 얼굴과 흰머리가 어울리지 않는단 결론을 짓습니다.
충분히 어울릴 만큼 주름도 늘고 피부도 느슨해지면 그땐 희게 셀 날을 기다리며 얼룩덜룩한 지저분함쯤이야 재밌다 깔깔댈 예정이거든요.
내 머리카락은 고집도 세고 튼튼해서 희게 말라 비틀어졌음에도 단단하게 박혀있습니다.
얼마나 튼튼한지 뽑아내기가 아까워요. 조만간 더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게 기다려지는 것도 같고, 포기한 것도 같고..
오랜만에 통화한 엄마님이 너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다시길래 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좋지 않냐 답했었죠.
나도 늙어가고 있으니 당신이 사람인 것도 보이고 실수할 수 있단 것도 알고 나란히 걸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말은 글만큼 능숙하게 흘러나오지 않죠.
능숙하지 않아도 뜻이 전해졌으니 상관없습니다만,
늙겠죠. 죽겠죠.
머리로만 알던 사실을 처음 진짜로 느꼈을때 나도 허둥지둥댔습니다.
당시가 벌써 기억에 희미해졌지만 되도록 잊지 말아야지 다짐해요.
사실은 확실히 끝이 있다는걸 체감하는게 조금은 안심 되기도 하고.
가만가만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는게 마냥 반가운건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고,
조금은 기대도 되고..
뭐 그렇습니다.
언젠가의 영화 리뷰에 썼던 문구처럼,
백발이 되어서도 라퓨타를 보고 가슴이 뛴다면..
나는 누가 뭐라든 참 잘 늙었다 자신할 수 있을겁니다.
그걸 쓸땐 머리로만 늙는다. 죽는다. 를 알았으면서 참 되바라졌었어요.
결론은 같지만 이면에 얽힌 뿌리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죠.
해도 일관성은 있으니 맘에 찹니다.
어차피 늙고, 죽고.
결과가 정해졌으니 삶은 유보고 보너스고 복역이고.
뭘로 채우든, 뭘로 낭비하든, 마지막 장은 이미 쓰여져있습니다.
그게 나는 왜 이리 재밌나 모릅니다.
신나고 깔깔 웃어대고 싶고.
덕분에 뭘 하든 의미 있고 얼마나 한심하든 즐겁네요.
나이가 든다, 가 족쇄를 푸는 후련함이 될 줄 어찌 알았겠어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통속이 이렇게까지 명료한 답일줄이야.
나를 걱정하는 이가 이 마음을 안다면 짓누르는 돌이 치워질지, 아니면 더 무거워질지,
어찌 가늠하겠습니까만은 아마도 양쪽 모두일겁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근심이 되는데 그래도 사랑이 좋으니 가히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건 약과라던데요.외모쯤이야
이젠 본격적으로 골병든다고. ㅋ
늙는게 끔찍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끔찍할 줄 몰랐다 ㅡ앤디 워홀
골병도 들겠죠. 이미 내 몸 어디가 약한지 알만큼 징조가 보이기도 하고요.
아주 오래 있다 봐도 그사람이고 얼굴이 조금 변형이 되긴 했다고 항상 생각했었는데
그게 늙는거라는걸 이제 알았습니다 저도 님의 옆사람 같이 백발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군데 군데 색이 칠해지는 것 보다 훨씬 멋있습니다 근데 금방 죽어요.
이제 늙게 만드는 요정이 기웃거릴 정도니 뭐 투정이라고 할수 있겠어요.
근데 엄마랑 같이 늙어간다 그러면 좀 이상해요 엄마는 두배도 더 늙었는데요.
옆사람 아니고 진즉 끝난 과거입니다. 그러게요 멋있을만하면 죽겠네요.
꼭 같은 나이라야가 아니라 같은 처지가 되어서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입니다.
가끔영화님 이번 댓글 기쁘네요.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는 건 뒤집자면 포기하지 않는다는거니까요. 아쉬움을 느끼는 것 자체도 멋져요. 혼란은 변화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잖습니까. 그것도 때가 되면 끝이 나는거니까 현 상태를 즐기고 충분히 뽑아 먹으시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 사실 너무 간단히 포기한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따지자면 아직 어린데 나이 얘기 한다고 쿠사리 먹을거 같고요..;
김한길 까는 글일 줄 알고 들어왔다가...;;; 다른 이의 인생 성찰을 엿보고 가네요.
저희 집안은 고딩때부터 흰머리 나는 게 전통-_-이라 벌써 사분지 일 쯤 뒤덮은 흰머리는 별 감흥이 없는데, 얼굴에 손이 갈 때마다 스치는 장미(長眉) 한 가닥이 나이를 실감하게 합니다. 저도 나이드는 게 그다지 싫지는 않아요. 끝이 있다는, 그리고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어떤 안도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