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인 총기 소유 지지자와의 대화 + 기타
1. 친구 중에 골수 민주당 지지자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는 씨가 마른) 노조원이고 엄마는 싱글맘. 게이 인권 열렬히 지지하고 낙태도 대찬성. 오바마에게 투표하며 투표를 거르는 적이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 사람은 당연히 총기 소유 제한에 찬성하겠거니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이 친구는 일곱살 때 처음 총쏘는 걸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집 주변에 코요테가 있는데 어른이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엄하게 가르쳤대요. 이건 총이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다. 이걸 함부로 만지면 너는 엄청나게 얻어맞을 거고 다시는 총을 쥘 수 없을 거다. 물론 권총이 아니라 사냥총이죠. 그때부터 이 친구는 주기적으로 사냥을 다녔고 사슴이며 새를 잡아댔다고 합니다. 사슴은 잡자마자 잘 갈라 이웃과 나눠먹을 수 있고, 말리거나 절이면 오래 먹을 수 있어 식료품으로서의 장점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의 출신 지역은 아팔래치아 산맥. 헝거 게임의 캣니스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예요. 디스트릭트 12는 실제로 아팔래치아 지역을 의미해요. 이 동네에서는 주중엔 학교 다니는 대학생들도 주말엔 나무를 베어넘겨 땔감을 만들어서 난방비를 아끼는 일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에 아팔래치아 주립대에 다니는 한 학생을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요). 그것도 아니면 폐광에서 석탄을 주워서 때거나. 미국은 urbanization ratio가 높은 데도, 도시에서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사슴이 차에 치이거나 코요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꽤 있어요.
이 친구나 이 친구의 가족들은 총기규제가 뭔지 잘 알고 있어요. 일반인에게 총을 허가는 하되, 소지 조건이나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는 것. 그건 바로 비용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더군요.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했는데, 차를 사면 보험을 사는 것처럼 총을 사도 보험을 사게 하자. 이건 굉장한 금융상품이 될 거다 이런 이야기인데... 이 사람들에게는 그거 자체가 싫은 것이예요. 소지 조건이나 관리를 엄격하게 한다는 건 그냥 서류를 꾸며서 올리는 게 아니라 돈이 드는 것이니까요.
2.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힘든 이유는 이런 문화적인 요인도 있지만, 제 생각엔 미국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라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 싶네요. 미국 전미총기협회는 로비에 엄청나게 돈을 쓰고 있는데,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한다는 것이 미국에선 합법이지만 멕시코나 한국에선 불법입니다. 정치력 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로마시대를 연상시키는) 지독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총기규제가 힘든 것이죠.
3. 제 미국인 친구들은 총기 규제가 안될 거다...왜냐고 물으니까, 금주법이 실패한 것 봐라, 사람들이 숨어서 마시지 않더냐? 갱들만 더 힘세지고 부자가 되더라... 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총기 규제 법이 통과 되면, 미국인들 대부분은 그렇게 항거하거나 뒤집어 엎거나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이 나라는 정치인들의 결정에 의외로 순순히 잘 따라가는 나라더군요. 오바마 케어도 투덜투덜하면서 어찌어찌 굴러가는 것 보세요. 일단 나라 땅덩이가 너무 커서 주목을 받거나 뒤집어 엎기가 용이치 않아요. 한국은 인구의 50%가 서울과 수도권에 결집되어 있고, 부는 더더군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광화문 - 시청 - 청와대이 여론의 힘을 보여주기에 족하죠. 미국같은 나라에서 도대체 어디에서 모여야 수도기능이 마비 되겠어요. 뉴욕? 엘에이? 시카고? 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occupy할 도시가 좀 많아야지요.
미국보다 도시화되지 않은 지역이 많은 캐나다는 총기소유를 잘만 제한하고 있잖아요. 치안력이 미치지 않아 자경단이 활보하던 시절은, 그냥 헐리웃 슈퍼히어로물로 대리만족해야지, 이제는 이미 신화속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도 멧돼지가 농촌지역 공격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미국은 이미 총기류가 널리 보급된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미총기협회가 총기소유를 일종의 '미국적인 문화'로 규정하고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이익단체로서 의회에 로비하는 수준을 넘어서요. 사실 총기소유의 권리는 미헌법에서 보장하는 문구가 전혀 없고 2008년 대법원 판결로 정당성을 확보한 겁니다. 그때도 5:4로 판결이 났죠.
그리고 미국 전체로 보면 노조가 상당한 수준으로 쇠퇴한 것은 맞지만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노조가 여전히 중요한 파트를 차지합니다. 미국 민주당의 필승전략의 기반이 대표적으로 중도층, 노조, 소수인종, 진보세력이죠. 중도층과 멀어진 공화당이 요즘 패닉에 빠진 이유. 하지만 공화당도 보통내기들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생존할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