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상담 이야기

문득 글을 쓰고 싶어서 의식의 흐름으로 써내려갑니다.

작년에 저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요. 어쩌면 지독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어요.

그 때 생전 처음으로 듀게에서 번개모임도 주최해보았거든요.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면서 우울증이라니 이상하죠.

하지만 평생 하지 않던 행동을 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는 거죠.

 

생각해보면 역시 지독했어요.

제 경우는 심리적인 원인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서 병원에서는 큰 이상 없다는데 제가 느끼기로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아팠어요. 견딜 수가 없었지만 견디는 수 밖에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

그리고 눈물이 나왔죠.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주체할 수 없었어요.

나라는 사람이 와해된다는 느낌이었어요.  납득할 수 없다는 느낌과 출구가 없다는 느낌에 하루의 대부분을 사로잡혀 있었어요.

 

하지만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거죠.

우선 가족들의 배려와 염려를 받았어요. 이러다 사람 하나 망가지겠구나 싶었던거죠.

그 결과 저는 최고의 배려인 '놓아줌'을 선물로 받았어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사이가 좋든 나쁘든, 서로 독립되어 있을 때 윈윈할 수 있다는 걸 가족 구성원 모두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친구가 있었어요. 가끔 서울에 놀러가면 밤새도록 제 얘기를 들어줬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자기로 가득 차 있어서 내 문제, 내 감정, 내 기분, 내 생각, 내 역사...나에 대한 얘기 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친구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억눌린 에너지로 가득찬 시시하고 비틀린 이야기들을 정말 흥미롭게 들어줬다는 거에요.

많은 걸 받았지만 이상하게 그 친구에게는 빚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좋아해주는 것. 타인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죠.

 

그리고 상담사가 있었어요.

정말 우연히 찾아간 상담소였어요. 그 날 아침 두 군데 상담소에 전화했는데 한 곳에서는 예약없이 당일상담이 안 된다고 했고 다른 한 곳은 사나흘만 상담 받는 건 효과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죠.

하지만 그 날은 정말 상담이라도 받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이 느껴져서 역에서 가까운 상담소를 허겁지겁 검색해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죠. 일단 와보라고 하더군요.

상담사가 나중에야 얘기했지만 당시 저는 상태가 심각했다고 해요. 주1회 상담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자기가 맡은 사람 중에 가장 힘들어하는 내담자 중 하나라고 했죠.

그리고 가장 자기를 힘들게 하는 내담자 중 하나라고도 솔직히 얘기하더군요.

말 없이 앉아있다 나오기도 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당장 죽을 듯이 악을 토해내기도 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도 많이 하고, 고맙다는 말도 많이 하고, 기대기도 많이 기댔어요.

일반적인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치료가 일반적인 형태일 것 같지는 않아요.

심할 때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생각날 때마다 문자를 보냈어요.

별별 이야기를 다 했죠. 그냥 나라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그 문자 속에 다 털어놓은 것 같아요.

말하자면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처럼 24시간 자유연상을 했던 거예요.

상담사는 답장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지만 가끔 내가 너무 괴로워하면 진의를 알듯 말듯한 담담한 내용의 단문을 보내줬어요.

 

상담은 한 회기 한 회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아무 소득 없는 상담이 끝나면 실망과 낭패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때도 많았어요.

실제로 상담을 그만두려고 한 적도 많았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끊어질 듯 이어오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도 좋아지는 느낌은 거의 없었어요. 아주 가끔 통찰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똑같이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어요.

뭐가 문제인지 알면서도 스스로 고칠 수 없고 치료사의 옳은 말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니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죠.

그렇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알 수 없는 사이에 몸의 증상이 조금씩 사라지고 우울한 생각도 많이 좋아졌어요.

문제인 부분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어요.

예전에는 몸과 마음이 딱 죽기 직전으로 아프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면 지금은 안절부절 괴로워하면서 눈물만 줄줄 흘리는 정도로 좋아졌다는 게 발전이라면 발전이겠지만

여전히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감각, 생각, 느낌들이 있어요. 그건 도대체 언제 해결이 될지, 해결이 되기나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즐거운 순간도 있고 편안한 순간도 있어요.

기약이나 보장같은 건 없지만 괴로워하는 순간에도 막연한 희망이나 의욕이 살아있을 때가 많아요.

 

나는 좋아지고 있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괴롭고 위태로운 순간이 많아요.

그렇지만 되돌아보면 좋아지지 않았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건강도 일상생활도 작년보다는 나아요.

 

여전히 나는 문제가 있어요. 상담관계는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는데 지금 다시 한 번 벽에 부딪혔어요.

가족문제는 너무나 뿌리 깊어서 도저히 완전히 치유될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어요.

아니 애초에 치유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상상이 안 되죠. 한 번도 치유된 상태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좋아지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 더 좋아질까요? 아니면 이렇게 위태롭게 가다가 어느 순간 나락으로 굴러떨어질까요?

기약이나 보장 같은 건 없어요.

나 자신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들이 갖은 노력을 다해서 겨우 여기까지 왔어요.

사람을 살린다는 건, 사람이 산다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완전한 치유가 어떤 느낌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아요.

지금도 조금 눈물이 나네요.

 

대단한 희망이나 환희는 없어요.

그냥 뒤돌아보면 불구덩이를 구르는 것 같았던 1년 전보다 지금이 많은 면에서 좋아졌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살고 싶어해요.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건 아닌데.

그냥 살아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조금 더 살아있고 싶어하고 소문난 레스토랑을 일부러 찾아가서 음식을 맛보듯, 삶의 기쁨을 찾아내서 음미하고 싶어해요.

 

주제도 교훈도 없는 글을 왜 썼을까요.

의식의 흐름으로 쓰다가 갑자기 의식이 뚝 끊기네요.

밑에 에아렌딜님 글을 보고, 내 문제를 한 번 들여다보고 그리고 뭔가 말하고 싶었나봐요. 그럼 이만.

 

 

 

 

 

 

 

 

 

    • 이야기 잘 들었어요.

    • 저도 문제 투성이인 사람이라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제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드려 봅니다.




      누구나 문제가 있어요, 문제 없는 사람은 아마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거나


      바보일 겁니다.




      님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니, 나만 잘못되었나봐 하는 생각은


      이제 그만 하셔요, 그래도 됩니다.



    •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것 같습니다.
    • 상담소 어딘지 궁금하네요.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저는 상담소를 찾고 있어서 혹시 가능하시다면 어딘지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쪽지로라도요.


      그리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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