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요새 가장 힙한 경제학자가 토마 피케티죠. 아직 한국에는 번역본이 나오지도 않았는 데도 말입니다.


일단 미국에서 이 책이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 등 그를 옹호하는 이들부터 그를 공격하는 이들까지 정말 난리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정태인씨를 비롯해 여러 지식인들이 그의 책을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에선 잘 다루진 않아 잘 안알려졌겠지만 마르크스주의 내에서도 토마 피케티의 책은 꽤나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대개는 비판적인 입장입니다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책은 대놓고 마르크스 '자본론'의 21세기 버전을 자임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 자신은 자본론을 읽지 않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선가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에 부정적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마르크스에 도전하는 주류 경제학자가 오랜만에 나온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죠.


일단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해외 마르크스주의자의 비판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것과 데이비드 하비의 것이 있습니다. 둘 다 노동자연대에서 번역했습니다.


▶캘리니코스: http://www.wspaper.org/article/14458

▶하비: http://wspaper.org/article/14512


둘 모두 피케티 '자본' 정의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사실 이건 주류 경제학 전체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 딱히 피케티에게만 해당하는 비판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가지는 자료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규칙이 경제적 운동법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공식을 추출하지만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습니다. 다른 국내 연구자의 표현에 의하면 자료에 대한 관찰일 뿐 논리적으로 도출된 공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니코스와 하비는 피케티가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해외 언론과 학계에서는 그 데이터의 신빙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지적했다고 마냥 환영할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굴러가느냐를 알아내는 것이죠.


그래서 국내 연구자인 EM님은 '세습'이 아닌 '경쟁'의 동학을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EM: http://socialandmaterial.net/?p=8809


빠르면 올해 안에 피케티의 책 번역본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얘기로는 피케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모은 책도 기획돼 필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미리미리 관련 글들 읽으며 준비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기타 글] 하비의 서평에 대한 마이클 로버츠의 언급: 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4/05/19/david-harvey-piketty-and-the-central-contradiction-of-capitalism/

    • 링크 감사히 읽겠고, 링크 글 중에 언급이 있는 이야기지만 매경에서 한국의 피케티 보고서란 주제로 연재하는게 신기하더군요. 그 전의 사설에서는 왜 외국은 시끄러운데 한국엔 관련글이 안나오냐 일갈하는 사설도 재미있었고. 큰 경제위기 이후 부의 재정리가 1%로 계속 집중된다는 식의 연구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피케티가 단순명쾌한 부등호식을 바탕으로 불평등의 심화를 입증했다는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화두를 제공했다는 것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한참 왁자지껄하겠는데 검증만 하다 유야무야될지, 분배 운동의 핵심 논리가 되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지 궁금하거든요. 월스트리트 운동 등이 이렇다할 중심 철학없이 진행되어왔다 생각하기에 혹시?합니다.
    • 피케 티셔츠를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오 이건 봐야 해 하며 들어왔다가... 제 무식함에 머리를 치고 갑니다. ㅠㅠ (뻘플 죄송)

      • 실제로 FT (파이낸셜 타임즈) 지에 피케티 버블에 편승하기라는 칼럼이 게재되었죠. 미쿡사람들 식으로다가 피커티 이렇게 읽지 말고 피,케,티 이렇게 읽어야 고상하지, 그럼그럼...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저도 아하, 피케 셔츠의 그 피케처럼 읽으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무려 1면에서 책에 실린 데이터를 조목조목 반박한 신문 (피케티 교수 본인의 편지도 게재해주긴 했습니다만)도 FT였고요.




        + 본문의 다양한 링크 감사합니다.

      • 저도 처음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다들 안다는듯이 쓰이길래, PKT라는 이니셜을 가진 한국 경제학자가 있나 한참 고민했습니다. 반 친구 중 한 명이 내가 모르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걔가 누구야? 하고 물어보기 눈치 보이는 것과 흡사했죠. 얼마 후에 '피케티'로 검색해보곤 우스운 착각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모르다 안 사람은 모르다 안 티를 좀 내주십쇼, 선구자님들ㅠ.

      •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이 게시물을 열었더랬습니다.^^
      • 아내에게 피케티 얘길 하다가 오히려 덕분에 피케(piqué)티셔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 매경이나 한경 같은 경제지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한겨레, 경향, 조선일보, 중앙일보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 칼럼에 많이 인용되길래 잘 알려졌는 줄 알았는 데 아직 아니었군요.




      피케티의 이름 발음에 대해선 프랑스 사람이니 '티'보다는 '띠'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케'도 '꿰'에 가깝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 데 프랑스어를 모르니 저로선 그저 언론에서 다루듯 '피케티'로 적을 뿐입니다.




      한겨레나 경향 부류의 필자들 처럼 피케티가 딱히 급진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가 제안한 부유세나 누진세는 모두 이전에 시행된 적 있고 딱 그 만큼이죠. 물론 글로벌 부유세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만...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아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언론에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미국에선 그조차도 '공산주의' '빨갱이' 운운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잔인한오후님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저항 운동의 새 이념이 될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 프랑스어 등 로망스어는 파열음이 한국말 된소리에 가깝긴 해도 된소리/거센소리 구별이 없으므로 삐께띠/피케티 차이가 별 의미는 없고 Piketty의 ke는 그냥 [ke]입니다.


        대중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겠죠.


      • 그렇군요. 글을 읽어보니 피케티가 자료를 통한 사실 규명 정도를 했고, 강한 가치 판단 식의 단언은 안하는 스타일인가봐요. 어쨌든 자료는 꼼꼼히 모았고, 많은 이들의 해석과 해결이나 나왔으면 좋겠네요. 저 같은 사람은 구경하고.. (그리고 이게 FT의 말처럼 과잉이라 하더라도, 경제학 내외에서 다른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있는지 증명하는게 아닐까 싶군요.)

    • 한국에 당도하는 것은 피케티의 저서보다 그를 비판하는 책이 먼저일 수도 있겠네요 ㅎ

    • 잘 읽었습니다. 번역되면 이해가 되든 안되든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하비의 비평 중에 자본이 투자파업을 통해 자본 수익율을 높인다는 부분이 있는데, 누군가 자본 전체를 조율하는 게 아닐텐데 이게 가능할까요? 마땅한 투자처가 있는데 전체 자본의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참는 자본가를 상상하기 어려워요.
      • 문제는 마땅한 투자처가 언제나 원하는 만큼 나오질 않는다는 거지요. 그것은 그들의 집단적 행동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구요. 최근 유럽에서 은행에 돈을 맡겨두면 오히려 마이너스 이자를 부과하겠다고 나서는 게 이것과 관련 있지요.

    • 다양한 읽을 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전문가로서 이것저것 읽어보는 수준이지만 저 EM님의 비판은 좀 이상하네요. 생산과 경쟁에 대한 동학은 이미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오고 있었던 것이고, 피케티가 뜬 것은 -그런 경향에 가려져 제대로 못 보아 왔던- 분배에 관한 `근본적인 법칙'을 제시하고 방대한 자료를 통해 증명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이걸 보고 거꾸로 다시 생산과 경쟁에 대한 동학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제가 이해한 피케티 현상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비판이네요. 그리고 최상위 1%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피케티가 주장하는 부의 집중현상이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크루그먼이 "아무리 반박해도 지겹도록 계속 기어나오는 바퀴벌레 같은 논증"이라고 부른 전형적인 논리인데(http://krugman.blogs.nytimes.com/2014/04/22/inequality-1992/ , http://krugman.blogs.nytimes.com/2014/05/31/that-old-time-inequality-denial/ ),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주류 경제학은 시장에서의 경쟁, 즉 분배 만 다룬다는 것이죠. 생산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경쟁을 만들어내고 다시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행동을 강제받는지에 대해선 피상적으로만 다룬다는 것이 보통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입장이죠. 이른바 이번 피케티의 데이터에서 추출한 '법칙'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현상을 관찰하고(떨어지는 모든 물체를 '관찰'하고), 그것을 그대로 서술하는 것(모든 물체는 '아래'로 떨어진다)와 같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EM님은 부의 집중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은 '세습'의 결과라기보다 '경쟁'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걸 강조합니다. 

        •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지 잘 와닿지가 않네요.


          1. 떨어지는 모든 물체를 관찰했다기보다, 방대한 수의 관찰을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맞겠죠. 그리고 그 관찰로부터 일반상대론까지 끌어내지는 않아도 g>0이라서 물체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동어반복이라면 모든 과학이 동어반복 아닐까요?


          2. EM님의 분석 중, (피케티가 말하는 정도의) 부의 집중과 세습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정말로 최상위 계층이 계속해서 바뀌는 그룹이라면, 그렇게 섞이는 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부가 퍼지게 되고 극단적인 집중현상이 해소되지 않나요? 세습을 부정하는 건 부의 집중이 피케티가 말하는 정도로 강해지지 않는다는 걸 내포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M님의 글은, [부의 집중과 세습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원인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케티의 자료들로부터 알 수 있는 건 딱 피케티의 주장까지이지, '부의 집중과 세습의 원인이 경쟁이다'라는 EM님의 주장이야말로 추가적인 많은 설명과 근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 제가 아는 데까지 조금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1. 일단 제가 낙하와 만유인력을 예로 들었으니 조금 더 말해보자면, 뉴튼은 그저 떨어지는 데서 더 나가 그것이 모든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냈죠. 단지 '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물의 내적 법칙으로부터 공식을 이끌어냈다는 게 중요하죠.  그런데 (EM을 비롯한 논평자들에 의하면) 피케티는 단지 관측된 데이터로부터 자산수익률 r이 경제성장률 g보다 크다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과학'이 아니죠. 마르크스가 대표적으로 지적했 듯이 현상이 그대로 진실을 나타낸다면 과학은 필요 없을 겁니다. (게다가 피케티의 자료는 의구심을 갖고 검증해봐야 할 대상입니다.)




            2. 부의 세습과 집중은 다르죠. 이를테면 세계 1위의 부자 자리를 앞다투는 빌 게이츠가 세습 자본가인가요? 그렇지 않죠.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각종 스캔들의 주인공들도 대개는 "개천에서 용난" 사례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부터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에 세습이 현실에선 중요한 요인일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부의 거대한 집중을 설명하진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세습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근절시킨다고 할지라도 부의 거대한 집중 현상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현재의 경제는 그대로겠죠.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평등을 양산하는 진정한 원인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고,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현실의 자료를 모아 동학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성진 교수가 대표적이고 세계 곳곳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현실의 '데이터'로부터 마르크스가 제시한 법칙을 현실에 맞게 변용하거나 발전시키려 하고 있죠. 마지막에 링크한 마이클 로버츠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추가적인 많은 설명과 근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데이비드 하비도 제가 링크한 글 마지막에 그러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EM이라는 분의 글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상위 수십명 부자 명단이나 소득세 납부 상위자가 계속 교체된다는 게 세습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근거라는 주장은 냉장고는 열역학2법칙을 부정하는 근거라는 식으로 들립니다. 피케티의 책을 못 읽어봐서 확언은 못하지만 설마 자본이 편향적으로 축적되고 있다는 실증적 근거가 그 두꺼운 책에 안 실려있을라고요.
      • 그 실증적 근거라는 게 매우 빈약한 지반에 서있다는 게 문제죠. 부의 집중이라는 현상으로부터 세습이 문제다라고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EM님 비판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선 위 댓글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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