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이라는 속성은 다루기 어려운 것 같아요.

아래 글에 답글을 쓰다가 내용이 점점 길어지고, 아무래도 원 글은 작성자분의 개인적인 사연과 고민이 중요한 내용인데 그저 주제만 가지고 이야기를 확장하는 모양새 인듯 해서 새로 글을 씁니다.

 

저는 제 자신이 여성적이고 여성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은 가정이나 사회가 주입한 고정관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듯 합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선머슴 처럼 살다가 여대를 갔는데, 우선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자연스레 그 환경과 생활 방식에 노출될 기회가 많았고

여대에 다니는 것 만으로도 쏟아지는 무수한 편견 + 반감을 경험하고, 동시에 페미니즘 같은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무언가 의식적인 변화와 선택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고정관념처럼 보이는 여성성을 제 방식대로 진지하게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극단적인 남성성 또한 마찬가지일거라 생각은 들지만, 스테레오 타입으로서의 여성성을 지니고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은 그닥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여성적 외향 자체만으로도)인간적으로 강한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이들은 제게 개인적인 상처를 주곤 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동기는 핑크 빛이나 꽃무늬 같은 아이템을 보면 모두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했는데

엄연히 차별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실 별 상관은 없지만, 기분이 좀 답답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가 자신과는 다른 어떤 샤랄라한것 정도로 타자화하는 덩어리에 제가 속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니까요.

그 외에 단지 외형적 관찰만으로 (패션은 물론 어조나 몸가짐?을 포함하여) 은근히 배척당한 경험도 있었던 것 같구요.


만약에 제가 그저 여성적인 것을 개인적 선호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위와같은 사소한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또는 그 선호를 다소 조정하는 차원에서 끝났을 것 같지만, 

문제는 여성성이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는 경우, 위에도 말했다시피 제가 '여대'를 나왔다는 것에서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제가 여대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 앞에서 그 집단과 구성원들 자체를 비방하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것은 그저 극단적 취향이나 성향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고정관념과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이 대다수인 공대나 군대와 관련된 편견들 또한 억압적일 수 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여대 등 여성적 집단에 대한 편견은 전자가 가지고 있는 '자기'비하의 어조를 찾아 볼 수 없을만큼 철저히 타자화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옷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할 때 여성성, 여성적 정체성이 어떤 도움이 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가장 편한 길은 나 자신도 그 순간만큼은 여성성을 타자화하고 (여대 나왔지만 나는 다른 여대생들하고는 달라, 라고 포지셔닝한다든지)

더 오바해서 나아가면.. 털털함을 갖춘 진국 코스프레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죠.  


전 단지 나의 모교가 좋고, 여성 집단만의 분위기와 여성적 외형이 좋을 뿐인데..

예수를 세 번 부정했던 베드로의 심경으로 그것을 부인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종종 느낄 때가 있어요.

그것에 대한 반항심이 좀 과하게 부풀어서(?) 오히려 여성성 자체에 대한 생각과 고집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넋두리(?) 겸..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었습니다.

    • 좋아요.. 저도 방금 저 글 읽고 여성성이라는게 타자화되어 정의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여성" 적인 건 무엇인가 하구요. 그래서 취향이 여성스러운 사람 이란 말이 갑자기 어색하네요
      • 이런 고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성, 타자화 등등이 복잡한 문제라는 증거인 것 같아요. 저도 글 쓰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네요.

    • 저는 딱히 여대 출신에 대해서 뭐 어떻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문득 대학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간혹 웃음 짓게 되더군요.




      제가 나온 대학은 신촌의 한 학교인데, 어느날 과학관 앞에 한 3~40명 정도의 여학생들이 서 있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보자마자 쟤들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군.. 하고 알았죠.


      왜냐하면,


      옷차림이 거의 8~90%가 쉬폰 재질의 파스텔톤 - 그 당시 유행이긴 했습니다. - 옷을 입고 여성용 백을 들고 책은 바인더나 손에 들고 있더군요. 보통 저희 학교에서 많이 목격되는 여학생들의 일반적(?) 옷차림은 청바지에 면티에 백팩이었거든요.


      무슨 교환 수업인가 들으러 온 학생들이라는 건 나중에 들었는데,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어떤 관념이 지나치게 뚜렷한 대비로 부각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아, 혹시나 해서 첨언하자면 그 학생들은 바로 근처의 여대 학생들이었습니다.

      • 고스 족의 피어싱이나 검붉은 립 화장하고 비슷한 의미 일수도요. ㅎ 

    • 젠더란....모호한 성질이죠. 유전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인 측면도 있잖아요.


      자신만의 해방구를 하나 마련해 놓는 것도 필요하더라고요. 사회와 부닥쳐 힘들 때는.

      • 사실 스스로 어떤 감별기처럼 고정관념을 취해 자신에게 적재해 놓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이 고집이 별로 좋지많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제가 사회에 나오고 나서, 요즘 말로 치면 딱 일베스타일인 놈한테 여대 나온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여대 출신이라면 뭔가 샤랄라하고 샤방샤방한 거 아닌가 싶어서 좀 갸웃했거든요. 근데 알고보니 그 놈이 말한 여대 스타일은, 남자 따윈 필요없어 나 혼자도 할 수 있어 이런 거라고...츠암나. 그 말을 듣고보니 참 여대 나온 분들도 피곤하겠다 싶었어요.어떻게 보면 정반대 방향의 편견이 모두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사회 나와서 겪어본 여대 출신들은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도 잘하고, 일도 독립적으로 잘하고 그렇더라고요. ; 잘 꾸미고 여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여자=의존적인 여자, 이런 것부터가 편견이죠 뭐.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은 양성적인 인간이라던데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부터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 맞아요. ㅎ 편견의 방향도 제각각이고 거의 대부분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인데, 동시에 침범할 수 없을 정도의 확신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죠. 

    • 처음 취직한 직장에서,


      자리들을 재배치 할 때였을 겁니다,


      다른 여자분들은 다들 책상을 누가 들어다 주길 바라며 쭈볏 쭈볏 하고 눈치 보는데,


      제가 '저분 매력있다'고 생각하던 그분은 자기가 자기 책상을(1인용이라 작았어요)


      번쩍 들고 옮기는 걸 보면서 '우와, 저분은 뭔가 다르네!' 했었지요.




      그분이 여대를 나온 분이었습니다.


      누가 안 들어다 주나 하던 분들은 공학을 나온 분들이었고.




      저한테는 여대 출신자에 대한 어떤 앵커 효과를 처음으로 준 분이 그분.


      여대를 나온 저희 고모 하나는 상여우도 그런 상여우가 없었는데.



      • 여대에도 힘쎈 사람이 많아서.. ^^; 그런 문제는 아니겠지만요. 좋은 걸 넘어서 복합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게 좋을 수 있겠죠.
    • 사실 실제 여성성/남성성이란게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성별은 여자지만, 흔히 말하는 여성적 외향(하늘한 옷차림, 예쁜 외모, 긴머리..), 취미(화장, 수다, 쇼핑??), 여성적 취향의 문화상품 (순정만화라든지 드라마라든지..)도 좋아하지만, 흔히 남성적이라고 일컫는 취미나 행동, 성격적인 면도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게임이라든가 스포츠경기관람, 외모 별로 신경안쓰고 편하게 옷입고다닌다든지.. 컴퓨터 작업, 추리/공포/SF/판타지 등의 장르소설보기 등등)인간의 각각의 개성을 성별에 국한지어서 한정짓는게 가끔 답답합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이외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럴거라고 생각하구요. 

    • 오오... 그 고집을 지지합니다.

      • 아무튼, 우리가 항상 어떤 편견에 휩싸여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그냥 나일뿐이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는건데, 항상 사람들은 나를 지레짐작하지요. 근데 그 근거가 성별에 관계된것일땐 꼭 반론을 하고싶어져요. 넌 남성스런애잖아, 넌 여성스런애잖아,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냐구!

        • 지지 감사합니다. 

    • 근데 연애시장에서는 어느정도 여성에게는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성?이 요구되는게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안되면 예선탈락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해야하나...

      저도 그게 처음 그 글처럼 꽤 고민이랍니다.

      뭐 전애인도 자기는 연애하는 사람한테 신비감이 있는게 좋다고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여자가 어느정도 내숭을 떠는게 좋다는뜻이었었거든요.

      남자라고 내숭을 안떠는건 아니겠지만 여자랑은 좀 다르겠죠


      반대로 남자가 연애시장에 놓여있다면.... 지나친 남성성은 억제해야하는건지도 모르겠네요. 남자들끼리만 있을때 그렇게 욕을 많이 한다는데 이성을 대할땐 보통 안그렇잖아요. 그것도 이런 경우일지 몰라요
      • 어떤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갑니다. 


        연애시장에서 여성성이 통하는 방식(?)은 제 경우엔 자존감에 영향을 주고 언제나 어떤 딜레마에 직면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숭떠는 여성성은 연애시장을 떠나면 그 어디에서도 대부분 호감받지 못하는 성향이고. 취직보다는 연애나 결혼에 특화된 여성상이라는 약간 시대착오적인 이미지도 만들어 내는 측면이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여성성이 다루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여성스럽다, 남자답다란 말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안썼으면 좋겠어요. 이미 엄청 편견적이잖아요. ~스럽다와 ~답다의 차이라니... 섬세하다 무던하다 리더쉽이 있다 등의 표현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할뿐더러 개인의 특성을 종특?으로 함몰시켜버린달까요.
    • 여대 출신에게 선입견이 있다는 이야기 처음 들어본지라 놀랍네요.

      • 있죠, 한 예가 신촌의 한 여대출신이면 멋 잘 부리고  세련되겠네, 명품 좋아하겠네, 애들 다 부잣집 딸들이겠네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생겼을 때 이대 출신 여성들이 이유없이 싸잡혀서 우루루 까이기 시작했지요.
        • 이대 선입견과 여대 선입견은 약간 궤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대략 미루어 이해가 갑니다.

          • 저도 본문 읽으면서 저 선입견은 여대라기 보다 이대에 대한 선입견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 여성성의 정의가 안 되어있으니까 어려운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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