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들...

[라스트 베가스]
어릴 때부터 서로와 가깝게 지내 왔던 빌리, 패디, 아치, 그리고 샘은 어느 덧 환갑 넘은 할아버지들이 되었고 여느 노땅들처럼 이들도 매일 마다 자신들이 늙어간다는 걸 느낍니다. 그러던 중,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하려는 빌리의 총각 파티를 위해서 이들 모두 라스베가스로 가게 되고, 당연히 이들은 도착한 첫 날부터 이런 저런 일들을 겪게 되지요. 마이클 더글러스, 로버트 드니로, 모건 프리먼, 케빈 클라인, 그리고 메리 스틴버겐과 같은 오스카 수상 경력의 실력파 노장 배우들을 한데 모아 놓고도 결과물이 비교적 평탄하니 실망감이 들긴 하지만, 출연 배우들의 기본기 덕분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간간히 소소한 웃음과 감동이 나오기도 하니 완전 실패작은 아닙니다. (**1/2)

[고질라]
뒤늦게 국내 개봉하게 된 [몬스터즈]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었던 가렛 에드워즈의 신작 [고질라]는 재난 영화 의상을 뒤집어 쓴 괴물 영화 같습니다. 고질라를 예상보다 덜 자주 드러내는 가운데, 영화는 갑작스러운 거대 생명체 출현으로 인해 도시들이 작살나고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거에 더 많이 초점을 맞추지요. 이런 접근 방식을 통해 여러 흥미롭고 인상적인 순간들이 나오는 게 마음에 들긴 했지만, 평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들 등의 단점들이 장점들과 충돌하면서 영화는 전반적으로 불균일한 인상을 줍니다. 잘 봤다는 생각이 완전 들지 않았지만, 그 형편없는 1998년 영화보다 훨씬 낫습니다. (**1/2)

[도희야]
경찰대 엘리트 출신으로써 경력이 창창했다가 어떤 문제로 인해 시골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된 영남은 복귀하기 전까지 좀 조용히 있을 예정이었지만, 그녀가 도희라는 한 소녀의 딱한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할 수 있을 만큼 도희를 도와주려고 하는 동안 영남은 도희가 그저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어린 애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고, 여기에다가 자신의 의붓딸 도희를 걸핏하면 학대하곤 하는 인간 말종인 용하가 영남이 무슨 문제로 좌천되었는지를 알게 되었거든요. 평온한 시골 분위기 아래서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추악함과 함께 영화는 화면 뒤에서 감도는 긴장감을 꾸준히 쌓아가면서 우리 시선을 잡고, 자신들의 캐릭터들을 통해 각자의 연기 영역을 효과적으로 확장한 배두나와 김새론 간의 연기 호흡도 매우 훌륭합니다. 이들 사이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송새벽도 적절하게 캐스팅되었는데, 보는 동안 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악역 연기를 선사하지요. (***1/2)

[엑스맨: 데이 오브 퓨처 패스트]
일요일 조조로 [엑스맨: 데이 오브 퓨처 패스트]를 보는 동안, 세월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학사 1학년이었던 2000년에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을 캠퍼스 상영회에서 본 이후로 지난 14년 간 총 7편이 만들어졌는데,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서 바닥을 치는가 싶었더니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로 시리즈는 다시 상승곡선을 탔었고, 작년의 [더 울버린]에 이어 나온 본 영화는 이 시리즈에 아직 재미가 충분히 남아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요즘 슈퍼히어로 영화 공급이 너무 과다한 탓인지 뚜렷한 개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상이 들지만, 극장표 값에 상응하는 재미를 안겨주면서 시리즈 청소 및 재정비한 성과는 인정해야겠지요. (***)
P.S.
[고스톱 살인]을 본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본 영화를 보니 기분이 좀 묘하더군요(두 영화들 다 보신 분들이라면 제가 무슨 말하는지 아마 아실 겁니다).

[고스톱 살인]
[고스톱 살인]은 고스톱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잘 볼 수 있는 소품입니다. 고스톱 판 결과에 따라 삶과 죽음의 문제가 결정된다는 설정이야 당연히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야기 소재를 갖고 꽤 재미있게 노는 가운데 약간의 설명도 좀 곁들이니 고스톱 할 줄 모르는 저도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중반부 이후로 이야기 흐름이 덜컹거리고 결말에 가서 설정을 너무 좀 억지스럽게 굴리다보니 흥이 떨어지긴 하지만, 다운로드 사이트에 풀린 현 시점에서는 살짝 추천할 만하지요. (**1/2)

[에너미]
평범한 대학교수인 애덤의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상은 한 이상한 일로 인해 서서히 흔들려지기 시작합니다. 동료 추천으로 어떤 영화를 한 번 보고 별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나중에 뭔가 꺼림칙해서 다시 확인해 보니 자신과 너무나 똑같은 사람이 영화에 단역으로 나온 걸 발견하지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애덤이 문제의 배우를 추적하고 그에게 접근하면서 일은 더욱 더 묘하게 돌아가는데, 감독 드니 빌뇌브는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를 상영 시간 내내 유지한 가운데 우릴 아리송한 기분으로 계속 몰아넣습니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고 본 영화에 영향을 준 듯한 다른 영화들을 봐야겠다는 생각만 들 따름이지만, 제이크 질렌홀의 1인 2역 연기는 재미있더군요. (**1/2)

[Escape from Tomorrow]
[Escape from Tomorrow]는 제작 배경이 상당히 흥미로운 인디 영화입니다. 디즈니 월드에서의 가족 휴가 마지막 날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게 된 주인공 짐은 속이 복잡하게 끓음에도 불구 가족과 디즈니 월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가면 갈수록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런 가운데 우린 서서히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게 되지요. 영화 내용상의 이유로 촬영 허락을 받을 가능성이 전무하니, 감독/각본가 랜디 무어는 배우들과 촬영 스텝진들과 함께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에 살짝 들어와서 게릴라 촬영을 약 3주 동안 한 다음, 월트 디즈니 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후반부 작업을 대부분 한국에서 했다고 합니다. 최종 결과물이야 저예산 티가 팍팍나는 가운데 장편 영화보다는 단편 영화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보는 동안 내내 들었지만, 시도 자체만으로 꽤 흥미로운 소품일뿐더러 유원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내기 위해 짜증나는 것 참느라 고생하신 경험이 있다면, 이 발칙한 영화를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
P.S.
영화가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 처음 공개된 이후로 지금까지 월트 디즈니 사는 본 영화에 별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고소해서 관심 끌을 수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현명한 결정이지요.

[끝까지 간다]
처음엔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끝까지 간다]는 의외로 잘 만든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페이스 조절이나 전개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굴려가는 건 기본인 가운데, 시간 낭비하지 않고 목표지점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면서 유머 감각도 살짝 발휘하니 상영 시간이 잘 흘러가더군요.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도 이 모범적인 기성품 영화에게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여주고 싶더군요. (***)

[말레피센트]
예, 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주연인 안젤리나 졸리이고, 말레피센트를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만든 그녀의 연기는 결점들과 장점들이 그럭저럭 섞인 판타지 영화를 극장에서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으로 만듭니다. (***)

[오큘러스]
영화를 보는 동안 좀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오큘러스]는 하고자 하는 일을 거의 다 했고, 결과물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이야기 중심에 놓여 있는 거울이 정말 사악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갖고도 괜찮은 심리 스릴러 한 편 나올 수도 있겠지만, 초반부에서부터 미리 깔리는 음험한 분위기를 서서히 쌓아가다가 주인공들을 악몽 같은 순간으로 던져버리는 호러 영화로써 [오큘러스]는 여러 모로 괜찮은 편이고 연기도 좋은 편입니다. 그리 오래 기억될 호러 영화는 아니지만, [컨저링]보다는 덜 툴툴거리면서 봤습니다. (***)

[늑대들]
이스라엘 영화 [늑대들]의 도입부는 같은 해에 나온 [프리즈너스]와 비교될 만합니다. 어린 소녀들이 잇따라 납치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경찰은 주요 용의자 한 명을 주시하게 되는데, 성질 급한 형사 주인공 미키는 이 문제의 용의자를 구타까지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그만 해직 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사건에 집착하는 그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일을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만, 여기에 최근 희생자의 아버지가 개입하면서 영화는 이 세 주인공들을 둘러싼 고문 드라마로 돌변합니다. 후반부는 손가락 부러뜨리기로부터 시작해서 정말 막가파식으로 강도를 높여가는데, 여기에 타란티노 스타일의 잔혹 부조리 코미디까지 가세하니 도무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경악해야 하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듣자하니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쿠엔틴 타란티노가 본 영화를 보고 많이 웃어댔고 나중에 자신의 2013년 Top 10 리스트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그의 반응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프리즈너스]에게도 시큰둥했던 저에겐 본 영화는 썰렁하고 단조로운 잔혹극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

[엣지 오브 투모로우]
작년에 톰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을 보면서 별별 SF 영화들이 자동적으로 떠올랐었는데, 올해의 톰 크루즈 주연 영화인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볼 때도 여러 SF 영화들이 금세 떠올랐었습니다. 사실 개봉 전부터 본 영화에 별다른 기대가 가지 않았지만, 다행히 영화는 [오블리비언]보다 많이 영리하고 재미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 설정을 이리저리 굴려대면서 액션뿐만 아니라 코미디와 드라마도 노련하게 하다 보니 영화 속 주인공이 갇히게 된 반복된 상황에 낄낄거리다가도 그의 힘든 처지에 신경 쓰게 되더군요. 톰 크루즈와 다른 출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크루즈야 든든한 액션 영화배우인 가운데 에밀리 블런트가 터프한 면모를 보여주는 게 재미있더군요. (***1/2)

[더 콩그레스]
[더 콩그레스]의 초반부는 일단 흥미로운 소재로 보는 이의 관심을 자극합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배우 경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할리우드 여배우 로빈 라이트에게 미라마운트 사로부터 한 제의가 들어오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배우 이미지 소유권을 미라마운트 사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최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그녀의 신체와 연기를 캡쳐한 뒤에 영화사가 거기에 바탕을 둔 디지털 배우 버전의 라이트를 영화 제작에 계속 사용할 계획인데, 당연히 본인의 배우 경력을 그만 두는 게 조건이지만. 계약금 액수가 만만치 않고 가족 부양도 해야 하니 결국 그녀는 거래를 받아들이지요. 영화에서 로빈 라이트는 본인의 허구 버전을 연기하는 동안 슬며시 재미 보는 듯하고(웬만한 분들은 다 알다시피 지금 라이트는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 덕분에 배우 경력이 상승 중이지요), 그녀의 충실한 에이전트를 연기한 하비 카이텔은 어떤 한 장면을 상당히 흡인력 있으면서도 찡하기도 한 순간으로 만들어냅니다. 중반부에서 와서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20년 후로 흘러간 뒤 영화는 애니메이션 세계로 전환되는데, 이는 처음엔 재미있긴 하지만 초반부에 비해 공중에 붕 뜬 기분 그 이상이 아니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본 영화가 [바시르와의 왈츠]로 상당한 인상을 남겼던 아리 폴만의 신작인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1/2)

[경주]
북경대 교수인 최현은 선배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 만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7년 전 선배와 함께 갔던 경주의 한 찻집에서 봤던 춘화가 문득 생각난 그는 장례식 조문 후 바로 경주에 내려와서 그 그림이 아직도 그 찻집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고, 이렇게 하여 경주에서의 그의 긴 하루가 시작됩니다. 감독 장률의 전작들에 비해 본 영화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나지만, 느릿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작은 순간들에 웃다보면 홍상수의 영화들이 연상되는 가운데(찌질함과 소주가 덜 가미된 얌전한 홍상수 영화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영화 속 경주 풍경들도 보기 좋습니다. 상영 시간이 140분을 넘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1/2)
P.S.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사족 같습니다. 새벽녘 골목 장면에서 바로 찻집 장면으로 넘어간 뒤 신속히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
본 영화를 추천하기 앞서 미리 하나 말씀드리자면, 본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들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같이 멀쩡하지 않은 캐리커처 주인공들의 과장스러운 행동거지들을 어느 정도 견디셔야 하고, 감독 소노 시온이 연달아 꽝꽝 터트려 대는 악취미적 순간들을 웃어넘기실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영화 속의 막가파 블랙코미디를 잘 감상할 자신이 있으셔야 합니다. 시온의 전작 [차가운 열대어]를 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본 영화의 전반부를 보는 동안 영화 속의 한심한 얼간이들에게 자주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후반부 동안 광기와 과대망상의 도가니 속에서 영화가 정말 확실하게 막가는 걸 보는 동안 전 어느덧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그러니 기분 좋게 별 세 개 주렵니다. (***)

[더 더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 [분신]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더 더블]은 공교롭게도 최근 국내 개봉했던 [에너미]와 여러 모로 겹치는 구석들이 있습니다. 두 영화 다 각자만의 묘한 도시 분위기에 중점을 많이 두고 있을 뿐더러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한 정체성 위기란 소재를 다루고 있거든요. 조지 오웰,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 등이 절로 연상되는 답답하고 우울한 기운으로 가득한 복고풍 디스토피아 배경이 인상적인 가운데 제시 아이젠버그의 1인 2역 연기도 볼만 한데, 전 비교적 더 명확하고 흥미진진한 본 영화가 [에너미]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