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은 누가 해줘?

  뒤죽박죽 두서없는, 빵가루 같이 부스러진 제 멘탈로 쓰는 오랜만의 근황입니다. 욕설은 아니지만 다소 불편한 이야기나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밤운동 끝나고 집에 가는 골목이 유독 어두워졌습니다. 처음엔 잘 모르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집 앞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원래보다 한 시간 앞당겨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고양이와 함께 한 이후 운동 가는 시간이 자꾸 늦어져 언제부턴가 저녁 9시 다 되거나 넘어서 부랴부랴 갔다가 운동만 하고 헬스장 문 닫는 시간, 직원들 생각해서 샤워도 못하고 오는 날들이 많아졌지요. 그런데 그 1시간의 차이가 제 운동 후 귀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늦게 안 거죠. 한동안은 정말 온 고샅에 귀기가 서려있는 듯 해서 덜덜 떨면서 집에 온 적도 있습니다. 사실 이 증상의 시작은 벌써 두 달 반이 넘어가도록 수색 작업도 종결 안 되고 있는, 세월호 사고 때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이미 한참 지난 유영철 사건의 다큐를 우연찮게 다시 보면서 절정에 달하게 되지요. 유영철 사건 당시에 비할 바 아닌 충격과 공포를 뒤늦게야 체험하고 밤새 불을 켜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두 달 되어가네요. 꼭 그것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는 제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 고질적인 습벽들, 사소해 보이지만 곧 전체를 갉아먹을 것 같은 잠재적 복병들 같은 게, 정말 타인에 비해 병적일 만큼 수면과다임에도 스스로는 늘 만성수면부족인 저를 더욱 깊은 잠 못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아니면 기가 허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기 센 사람이라기 보다는 강한 사람으로 드센 사람이기 보다는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이 한끗을 늘 인식하고 살던 저는 요즘 너무 많은 무섬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심지어는 15년 넘게 끊었던 교회를 다시 나가볼까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어요.


  사실 이 모든 약함의 정점에는, 뒷북처럼 말하게 되는 영화 '한공주' 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저는 한공주를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관람을 후회하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이색경험을 했습니다. 원래 피 튀기는 고어물은 잘 못보는 편이지만, 이보다 더 끔찍하고 노골적인 영화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하는데(강간, 성폭력, 살인이 하도 난무해서 어느 순간 감흥도 없어져 버리는) 왜 하필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저는 그렇게 괴로웠는지, 그 유명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만든 영화라서 그런가 자꾸 생각해 봐도 저는 이 영화를 통해 하나의 지독한 트라우마를 얻게 되었어요.


  그냥 즉물적으로 말하면... 남성중심 상위체위로 일관하는 피스톤 운동에 대한 혐오 같은 거, 그 섹스에 동반되는 남자의 신음소리 또는 뭐라 낮게 지껄이거나 독백하는 듯한 말도 음성도 아닌 짐승의 소리.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단지 남성위주의 성체위가 아닌데 뭐라 더 점잖게 표현할 길이 없군요. 이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면 관능적인 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소재고 뭐고 다 떠나서 저는 눈앞이 하얘지면서 토할 것 같았어요. 이 영화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어떻고 저떻고 의식이나 불편한 감정 같은 걸 말하는 것도 저에겐 사치일 만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정말 죄송하게도 저는 극장 안에 있는 모든 남자분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잔혹한 소년들의 시기를 비슷하게 지났거나 아직도 잠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으니까요. 그 소년들 지금 다 자라서 대학다니고 취직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 사람 있을 텐데, 세월호 사고로 온 나라가 침통한 때 어딘가 조문을 다녀올 정도의 양식을 가진 남자어른으로 자랐을 수도 있는 건데, 본인들 스스로는 그 악마 같은 경험을 다 잊을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건 사람 새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차가운 물속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 소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가도 어스름한 저녁 귀가길에 대여섯 명의 교복입은 남학생들이 다가오는 것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 이 모순적인 감정은 어디 가서 말도 못했죠.       


  평범한 일상의 일례로, 얼마 전 운동 마치고 오는 길엔 이미 10시면 영업이 끝난 대형 중국식당의 큰 마당에서 누군가 제 앞에 기습적으로 뛰어나오더군요. 그걸 목격하는 순간 저는 야구모자 밑으로 드러난 연쇄살인범의 눈빛이 자동적으로 떠올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겠더군요. 그 남자는 정말 자기 용무 마치고 나온 레스토랑 직원이 아닐까 하는 일상적 출몰이 아닌, 어둠 속에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나온 계획적 출몰이라고 밖엔 저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거기,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했을 카페와 레스토랑들로 운치 있던 그 길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일 뿐 그 짧은 2~3분 사이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호흡을 깊게 고르고 최대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걷는 남자의 보폭과 속도를 의식하면서, 그 남자가 뒤에 오는 나를 의식하다가 돌연 멈칫할 때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들고 어디서 전화가 온 양 빈 전화기를 붙잡고 '여보세요?', 그게 얼마나 얕은 수인지 알면서도. 때마침 빨간 비상등을 깜빡이며 순찰을 도는 경찰차가 골목으로 들어와 저는, 무사했습니다. 남자는 원래 길 가던 사람처럼 골목을 빠져나가더군요.  그 시간 겨우 밤 10시 45분. 늘 오버 타임으로 퇴근해야 하는 고된 직장일을 마치고 집에 와 약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고양이 수발을 들어 준 후 하루를 마무리 짓는 순서로 다녀온 밤운동의 귀가길, 이 소박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오는 그 시간이 그리 과한 시간인가요? 아니면 하필 제가 그때 운이 나빴거나, 아니면 운이 좋아 이렇게 듀게에 글줄이나 올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죠, 그 남자는 정말 아무 의도없는, 저와 일면식은 없지만 평범한 동네 아저씨 였을 뿐인지. "그래서 그 남자가 당신한테 아무짓도 안 했잖아?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피해망상에 젖어서 그 남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 일부 질타의 목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듯도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제 직감은 범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지역적 특색과 이유로 이 동네의 철통 치안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고, 때로 저녁이나 술자리 약속이 있는 날은 그보다도 더 늦게도 아무렇지 않게 다녔던 시절이 불과 몇 달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저는 밤 10시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변해버리는 이 동네가 많이 무서워졌습니다.


  어쩌면 이런 얘기를 길게 두서없이 쓰는 건 불과 며칠 전에 들었고, 사실 수십 년 동안 들은 저에 대한 덕담과 관련된 것인데,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늘 차분하고 믿음직하고 든든한, 그래서 늘 의지가 되는' 이라는 수식이 난무하는 저에 대한 상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저에 대한 최고의 평가나 칭찬 쯤으로 듣게 되는 저 표현은 저에겐 사실, 개나 줘버리고 싶은 녹슨 훈장이고 결정적일 땐 나뭇가지에 걸려 사냥꾼의 총에 맞게 되는 사슴의 뿔 같은 겁니다. 맘껏 어리광 부리지 못한 유년시절부터 다져진 것인지 자존심상 우는 소리  쉽게 못하는 성정 때문에 늘 속깊고 사려깊은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저는 어느 순간 아무도 제 걱정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고보니 저는 지금껏 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모든 얘기를 단 한 사람에게도 맘놓고 털어놓아 본 적이 없군요. 물론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고뭉치로 골칫덩이로 살아본 적도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런데 왜 저는 늘 주변에 미더운 사람이 되어 아무도 날 생각해 주지 않아도 안심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요. 널 믿는다, 는 말 한 마디 얻기가 그렇게 천금이라는데 저는 왜 이렇게 버거운 걸까요.


  그러는 저는 정작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랜데요.          
 

    • 음... 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에게 더욱 "널 믿는다"란 말을 하기 쉬워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우리는 항상 과도한 안전불감증과 편집증적 불안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죠. 적당한 선이란건 언제나 자의적이고 강렬한 외부적 충격에 의해서 내면이 요동칠 때도 있는 것이구요. 그렇게 한 쪽 방향으로만 미끌어져 갈 땐 결국 타자들의 이야기로 내적 영토를 늘릴 수 밖에 없겠죠. 마음의 고심에 남의 생각들로 물타기를 해 농도를 낮춰요. 타자에게 특정한 심경, 논리나 감정을 전하지 않을 때 마치 오래된 술처럼 내면의 순수성은 강해지고 독해지겠죠.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 판단의 범위를 유지하는 것도 나이겠죠. 이야기를 나누시란 말밖에 드릴 말이 없네요.




      덧붙여서, 전 남성이라 물리적 약함을 덮쳐오는 불안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모르겠군요. 같이 귀가할 사람?

      •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 생활을 제외한 타인들과의 교류, 것도 내가 원하는 종류의 교류를 해본 건 정말 선사시대 같아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남들 사는 얘기도 그닥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저는 회사 퇴근하고 나면 웬만해서는 정말 아무하고도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 같은 시간대에 몇 년 째 만나는 헬스장 회원분들이 자꾸 인사하고 말 걸어 오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딱 인사만 할 만큼요.(말 많이 하는 직종도 결코 아닌데도).




        난데없지만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제 귓구멍에 꼭 맞는 이어폰을 사보는 게 꿈인데(단순하고 소박한 것 같지만 한번도 딱 맞는 걸 가져본 적 없다는), 이어폰이 제 귀에서 자꾸 튕겨져 나갈 때마다 내가 남얘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인가 하는... 이 무슨 애 같은 성찰을 가끔 하곤 합니다. 아랫 댓글에 답댓글로도 달았지만 제가 워낙 호랑이도 때려 잡을 것 같은 기백이 넘쳤던 사람이라 아무도 저를 못 건드렸는데, 확실히 사람이 허해지니 빈틈이 보이나 봅니다.  

        • 신체가 바뀌면 정신도 그에 영향을 받겠죠. 잊고 지낼 수 있겠지만 그만큼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깜찍 놀라지 않나 싶네요. 교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교류를 도구로 얻고자 하는 바만 취... 할 수 있으려나요. 그건 저도 정말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제가 글을 읽으며 기묘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누군가에게 걱정 받는 것이란 무엇인지 였어요. 제목으로 결정한 의문도 그렇듯, 골칫덩이가 되고 싶지는 않듯 남의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이 자리잡았으면 하는 그 마음은, 이야기의 초중반을 가득 채우는 신체적 공포의 해결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잖아요. 즉, 충격의 방아쇠가 되었지만 해석을 통한 문제의 핵심은 무언가 다른 방향을, 이런 상황을 명분삼아 자신에게 얻어낼 수 있는 정책적 요구로 보이거든요. 결국 걱정하는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진전이 있을것 같아요. 아무래도 허함을 다른 식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섬세한 계획을 바탕으로 자기와 남(인간을 떠나서 타 종이라도)을 동시에 설득해서 걱정을 수급해야겠으나 쉽지 않겠죠. (<- 여기 감정 바보가 있습니다.)

          • 이 걱정과 그 걱정이 같은 걱정이 아니겠습니다. 또한 제 글에서 나오는 걱정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냥 걱정도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걱정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바꾼들 그 의미가 배가될 것 같지도 않고요. 이건 뭐 글쓴이의 정성이 부족하여 전달이 안 되는 것이라 치고요. 앞서 일상의 일례들과 제가 말하고 싶은 걱정은 동일선상에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냥 그날 밤 문득 내 걱정은 누가 해줘 라는 생각이 들더이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라 할 수 있는 말은 호신용품을 가지고 다니시면 어떻겠냐는 거네요. 호루라기 비스리무리한 경보장치 말고 가스총이나 스턴건 같은.

      실사용안 안 하더라도 마음의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호랑이도 때려 잡을 것 같은 기백으로 충만했던 저는, 아무도 저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넘쳐서인지 지금껏 정말 험한 꼴 한 번 안 당하고 살아온 운 좋은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어 감사히 여기고 살았는데, 이제 그 복은 수명이 다한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금 제모습으로는 믿기지않을지모르지만..제 몇년전 고민과 같네요.

      저는 이길로 삐뚤어져 징징이가 됐는데..

      지금도 집에서는 제걱정아무도안합니다.

      어느날 허무가찾아왔고.

      삐뚤어졌습니다...네;

      전 강한성정이아니라 이리되었지만 극복하긴할겁니다
      • 저는 이제 삐뚤어질 나이도 너무 지나버린 연식이라... 네, 익명요님도 요즘 어렵게 느끼는 일 있으시면 잘 해결되길 바랄게요. 그곳에서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직장생활은 아니셨으리라 믿어요.

    • 전 남자라 쿠델카님 글보고 완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마지막 문단의 기분은 뭔지 알거같아요. 저도 어려서부터 듬직하다, 튼튼하다는 소리 듣고 살았는데 독감걸려 앓는데도 황소같은 놈이 아프다고 한다고 허허웃는 가족들 보면서 상처를 좀 받았거든요. 




      나이 들면서 슬슬 몸걱정 건강걱정을 해야되면서 저런 모습이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습니다. 나중에 짝을 만나더라도 저처럼 듬직하단 오해를 샀던 분 만나서 사실 너도 상처많았지않냐고 보듬으면서 살고싶어요.

      • 맞아죠, 너를 믿는다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층위의 함의가 들어있는지. 밀키웨이님 만나는 분은 참 따뜻해서 좋으실 것 같네요. 보듬는다는 말, 참 눈물나네요.

    • 그럴땐 '걱정해 달라'고 말하면 된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티를 못내서 괴로운 거잖아. 라고 오랫동안 여겨왔지만 어느 순간 보니 나 혼자 일관성에 매여있는거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고 그것들은 온전한 형태로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잖아요. 각각의 일부만 상대와의 관계적 특성이나 친밀함에 따라 다르게 영역 분할이 되고요. 한 사람의 전부를 온전히 이해받는다거나 모두를 아는 상대란건 그래서 불가능한 판타지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간극을 메울 방법은 표현밖에 없어요. 그냥 말로 하면 되는걸 내가 스스로 제약을 걸고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담을 쌓아오고 있었구나. 그러라고 입이 있고 말이 있는건데. 어느결에 그런 생각 들더라고요. 평소 불평불만 없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면 마일리지 짱짱하게 쌓였을테니까 이참에 좀 쓰세요. 힘들다 아프다 걱정해달라 나도 약할때가 있다 응석 부리면 오히려 반길지 모릅니다. 아끼던 사람이 기대온다면 기껍고 뿌듯하잖아요. 그게 불안을 없애는 근본적 해결책은 되어주지 않지만 내 주변에 곁을 내어주길 반기는 사람들이 있단 사실 확인과, 일시적 안정감과, 스스로 매인 족쇄를 조금이나 느슨하게 한다는 성취감에 힘이 생깁니다. 그럼 그 힘으로 불안과 계속 싸워야고요. 그리고도 이건 좀 오지랖인데 응석이란건 딱히 육하원칙대로 설명하고 설득시켜야 하는게 하니니까요. 내 불안의 이유와 원인과 해결책 등등을 (숙고와 별개로)발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요구하면 된다고 봅니다. 네, 물론 나도 상대가 필요로할때 요구를 받아줘야겠고요. 맨날 징징대면 안되겠고요. 그걸로 불안을 덮으려하면 안되겠고요. 그러겠지만요. 설명을 너무 많이 하려하다 보면 듣던 상대도 같이 답을 찾아줘야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지니까요. 내가 답이 안 나온 상태에서 의견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 안정감, 온기가 필요한 거라면 그냥 기분만 솔직하게 전하는게 오해할 여지도 없고 좋은거 같아요.



      어쨌든 마음이 약해졌을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악의처럼 느껴지는 것, 혼자만 참아 이기려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힘을 나눠달라 대놓고 요청하세요. 암만 똑똑하고 강한 인간이라도 때로 그럴 때가 있으니까 인간은 혼자 못 사는거죠.

      • 그게 한 번 입떼기가 어렵지, 해보면 될 텐데... 안 되더라구요. 어쩌면 저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상대로 하여금 흔들리는 저를 보여주며 "너도 별 수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묵언의 안도감 같은 걸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어떤 관계에서든 우위를 점하고 싶은 정말 치졸한 이기심이 있는 건지도요. 물론 압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놔버리고 보여줘도 항상 관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드물게 타고난 난년놈들이 있다는 것. 이미 제가 그런 부류가 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제 가오를 지키고 그나마의 품위라도 유지하는게 몸에 오래 밴 습관인데. 그런데 저는 이제 이 게 제 옷 같아요, 때로 불편하고 외롭지만 벗어버릴 수 없는 가죽 같은.

    • 저도 '한공주'를 보고 정확히 쿠델카님과 똑같은 반응을 했어요. 중간에 뛰쳐나오고 싶었던 영화는 제 인생 최초였습니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요즘은 조금 괜찮아졌는데, 역시나 본 건 후회해요.


      쿠델카님 걱정을 해주는 이는 분명히 있을거에요. 다만 강해보이니까 그 말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일수도요. 저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난 괜찮아' 타입인데, 누군가 걱정을 해준다고 내 불안함이 사라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래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구 두어명 한테는, 마음껏 제 약함을 티내곤 해요. 이게 뭐 직접적으로 제 밤길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마음으로는 위로가 되더라고요. 술마시고 헤어지면서 조심히 가라는


      뻔한 인삿말이라도요... 


       

      • 그렇죠... 그 영화 너무 지독했어요. 입에서 쌍욕이 나올 만큼요, 잔혹한 범죄자를 향해서가 아닌... 그냥 대상없는 장탄식처럼 욕이 나왔어요. 주변에 뭣 모르고 보겠다는 사람들 있으면 극구 말렸는데 기어이 본 사람들은 -_-;;; 저는 이제 그런 친구들 없어진 지 좀 되었네요. 못 견딜 건 없더라구요. 우정도 사랑도 결국 각자의 이익과 입장에 따라 변한다는 게 이제는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일 만큼 저는 인간에게 그 이상의 믿음과 희망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 수년 전 제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네요. 


      .............-




      저도 체구는 작지만 한칼하는 성격에 항상 당당하고 주변인들이 믿고 의지하며 치부를 털어놓거나 일을 맡기고 신뢰하는 성격이었어요. 지금은 제 자신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생각하는데 쿠델카 님처럼 느끼던 시기가 그 나쁜 변화의 시작 즈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괜찮다. 나는 강하다. 나는 독립적이다' 라는 자기 최면이 너무 강했어요. 윗분들 말씀대로 주변사람들에게 어깨 좀 덜주고 주변 사람들 어깨 빌릴 줄도 알고 투정도 부리고 그래야 합니다. 자기를 진정 사랑하는 길은 그런 거 같아요. 


      은근히 속으로 제 장점이라 꼽았던 것이 스트레스나 상처로부터의 회복탄성력이었는데, 작년 건강검진에서 몸의 스트레스 저항수치가 그래프 제일 왼쪽 매우 나쁨에 찍혀 있더군요. 뇌MRI를 찍어보니 검은 점이 숭숭.. 그 동안 저를 '강하다' 착각하고 학대해 왔던 때문이었어요. 하고 싶은 일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하고 주변 사람들이 손내밀면 내치지 않고 진심을 다하며 기뻐하고, 그런 것들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좀 더 여유를 가지시고 즐겨보세요. 상담도 받아보시고, 헬스도 좋지만(저도 당시 건강과 시간상 이유로 헬스 수년간 꾸준히 다녔는데요) 본인이 흥이나서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꺼리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현대무용을 하는데 음악 속에서 몸을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모바일이라 오타가 걱정이지만 길게 썼어요. 제 일 같아서.  꼭 배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너지와 시간들이 실제로는 놓아버려도 되는 것일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아직 어렵지만 그렇게 변해가도록 노력중입니다. 힘내세요. 

      • 긴 댓글 구구절절 동감하는데, 그래서 뭔가 새로운 즐거움꺼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운동은 늘 하던 것이라 중단하기 그렇고, 춤은... 뭔가 늘 최후의 보루로 미뤄놓은 것이라 지금 시작하고 싶지는 않고(사실 제가 춤을 좋아하고 출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짜 춤 추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이상한 반감같은 게 또 있거든요...?) 그리고 이게 또 취미나 그런 걸로 대체될 만한 성질인가 싶으면... 다 시들하고 그래요. 저는 그냥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만 있어도 그게 어디인가 싶은 자기최면으로 살고 있달까요. 다들 또 어딘가 한 구석은 고장나 있거나 그렇기도 하잖아 하면서 자기위무 하고. 혹여 남들이 제 뒤에서 허위의식이나 뭐니 아무리 손가락질 할 지 몰라도 저는 저를 사랑하는 이 오래되고 변태적인 방식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어쩌면 달라지고 싶지 않은 것일 지도 모르죠.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는데, 그건 정말 강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얘기 같아요.  감사합니다.

        • 쿠델카님 덧글을 너무 늦게 보았네요. 읽으신건 확인했으니 위 제 글에서 상황 설명은 지웠습니다. 좋은 얘기도 아니라. 


          춤 추는 사람이시군요! 저는 그냥 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ㅅ'  제가 하는 것, 쿠델카님께 권했던 것은 춤이라기 보다는 몸으로 하는 생각, 소통, 그리고 즐기기! 뭐 그런 거였어요. 요즘 좋은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쿠델카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랬는데요, 내가 놓지않고 유지하려고 기를 쓰던 것들이 실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어떤 방식으로건 다르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비롯되는 거더라고요. 저는 겸손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고, 나를 내어주는 것이고, 세상에 좀 덜 동화되더라도 그냥 감수하는 것이고, 남들보다 현실적 이득추구나 처세에는 서툰 것이고 그렇게 남들보다 좀 모자란 것이라 여겼는데 실은 그게 오만이더라고요. 남들도 저랑 다 같았던 거죠. 저는 그랬어요. 그렇게 정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남들처럼 몸도 사리고, 그게 낯뜨거운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내게 더 관대해지고.. 그러려고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이 덧글 보실 가능성은 적지만, 제가 지금 롸잇나우'ㅅ' 쿠델카님 답을 본 것처럼 언젠가 쿠델카님이 또 제 답을 보게 되면 그게 대화려니 하고 글 남겨요 :) 

          • 해윤님, 이미 페이지도 많이 지난 글에 이렇듯 정성어린 긴 댓글을 또 달아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많이 공감이 되고, 어느 부분 조금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네요. 네, 저도 제가 늘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착)각하며 살고 있지만 동시에 누구든 조금씩은 자신이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그럼에도 제가 참 오만하고 편협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깨닫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이게 참, 너무 오래된 고질적 인식인지 뭔지 쉽게 바뀌지가 않네요. 그리고 분명 저는 이 부분이 저를 밀고 나가게 하는 변별점이나 원동력으로써의 순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요. 저는 정말 어울렁더울렁 만수산드렁칡 같이 얽히고 섞여서 사는 게 너무 맞지 않는 인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게 더 편한 걸 어떡합니까. 때로 듣게 되는, 너는 뭐가 달라서, 너도 똑같은 인간이면서 뭘 그렇게 유별나게 구냐, 라는 주변의 힐난들이 저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몰라요. 사람들 사이에서 물의를 빚지 않으면서 내 세계를 지켜나가는 게 여타의 사람들에겐 참 말할 수 없이 낯설고 불편한 기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걸 매번 새삼 느끼게 되지요. 이런 제 자신 역시 누구못지 않게 평범하고 성실한 소시민일 뿐임에도요.  여하튼 저는 또 살아갈 겁니다, 제 식대로 버티고 견디면서.  

            • 네! (사실 너무 공감하면서, 그리고 저도 지금도 님과 같은 생각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사람으로서. 그래도 남들에겐 (나는 못하면서) 너무나 적확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대는 사람으로서) 공감해요 공감해요. 그리고 힘내세요. 단지 건강 절대 잃지 마시고요(저에겐 이게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어요) 조금 더 약삭빨라지실수 있기를. (실은 저에게 하는 말이지요) 힘내요 우리. (실은 저 지금 아주 살짝 취해서 쓰는 글입니다. 집에 와서 생각이 났어요. 혹시나 쿠델카님이 덧글 보았을까 하고. 그래서 검색해 보았지요 :)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또 덧글 쓰는 이유는 쿠델카님께 덧글 읽었어요~ 많이 공감해요~ 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힘내세요 쿠델카님 :)  앞으로도 글 많이 써 주시고요. 

              • 쪽지를 확인해 주세요. ^^

    • 내 걱정은 내가 할 수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내가 죽겠으면 가족이건 형제건 누구건 털고 노략질을 해서라도 살아남고,


      그 뒤에 잘 풀려서 갚으면 결국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다'가 되더군요.




      반면 젊은 시절 개룡 되어 부모 형제들한테 베풀었어도


      말년에 잘 안 풀려 망하면 나쁜 소리만 듣고, 퍼준 원금도 못 돌려 받고요.




      결국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 남 안주고 내가 하나라도 더 먹어야 하는 것,


      똥이라도 굵게 싸야 하는 것이더만요 ㅠ.ㅠ



      • 딱 까놓고 현실적인 얘기들 표현들에 웃었어요. 그럼요 나 아니면 다 남인 걸요.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자신에게 이런 방식으로 집착하는 것일지도요.

    • 예전부터 쿠델카님이나 커피공룡님 글을 보면 무언가 좀 아슬아슬했어요. 조사들이 법을 구하려면 거문고 줄처럼 공부하라 했습니다. 너무 느슨하면 아예 소리가 안나고 너무 팽팽하면 쇳소리만 난다구요. 잘 하실거라 믿습니다.

      • 쇳소리!!! 그리고 저를 믿지 말아주세요.

    • 이런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제목에 경고나 주의 좀 붙여 주시면 안 될까요? 무심코 몇 줄 읽고 기분이 나빠졌어요 처음 몇 줄 무시한 제 잘못이기도 하지만 좀 더 강한 경고의 표현을 써 주셨으면 해요 불안과 공포는 전염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 불안과 공포는 전염되는 경향이 있고 내 기분이 나빠졌으니 <불안주의>라는 경고를 달아달라니요. ??


        다시 돌아봐도 글쓴님이 타인에게 뭔가를 짐지우고 불안을 부추기려고 한 의도로 글 썼단 생각도 안들어요.


        공개된 게시판에서 내 입맛과 기분에 꼭 맞는 글만 골라 읽을 순 없죠.

        내가 골라 읽고싶으니 라벨링을 해서(기쁨주의 무서움주의 배고픔주의 이런건 어떤가요) 대령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요.
      •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냥 속으로 앞으로 잘 걸러내야지 하는 정도면 됐지 뭘 또 경고까지 해달라고 그러세요. ; 쥬니버만 들어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 다른 분들 흔히들 달고 쓰시는 '바낭' 말머리조차 잘 달지 않는 건 제가 듀게에 글을 자주 올리지도 못할 뿐더러, 가끔 쓰는 글이면 어떤 얘기든 좀 공들여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가급적 본문 내용을 집약한 제목으로 써 왔어요(그렇다고 다른 분들 글이 다 바낭이라는 건 아니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의' 말머리를 달면 더 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는 것도 같고요. 이 글이 '충격과 공포 주의' '불안감 엄습주의' '혐오문장 주의' 이렇게 친절한 말머리를 달 만큼 쎈 글인가 자문하면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읽는 분의 감정까지 섬세히 배려 못한 글이 되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유감이네요.

    • 지금은 주무시겠네요. 평안하고 힘나는 잠 되기를 바랍니다.

      • 네 어젠 12시가 좀 안 되어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고양이도 못들어 오게 하고 그래서 안 깨고 잤어요. 고맙습니다.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2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37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48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4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89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0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5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5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3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26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1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3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4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49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2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