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그녀(her) 한줄 요약

(한줄요약) 인공지능이 인간과 사귀다 수준 차이 나서 뻥 차버리고 도 닦으러 간 이야기

......

농담이 아닙니다. 
다들 로맨스 영화로 이 영화를 해석하시는데
사실 전 sf 영화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의 독창적인 점은 sf 영화에 로맨틱 영화의 외피를 
두껍게 바르고도 그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죠. 
제가 쓰는 글도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고 보시면 좋겠어요. 

이 영화는 테오도르의 사랑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정말 의미 있는 주제는 사만다의 성장입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산장에 여행을 가고
갑자기 사만다가 철학자 os를 만나 혼란을 겪기 전까지
이 영화는 평범한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따라갑니다. 
사만다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차이점만 빼면
만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위기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는
일반적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요. 
영화의 뛰어난 미술과 - 따뜻한 색감에 뭔가 미래적이면서도 클래식한 패션과 인테리어 등 ...
애플의 siri에서 영감을 받았을 게 분명한 사만다의 트렌디한 설정 때문에
이렇게 영화가 끝나도 뛰어나진 않지만 괜찮은 로맨스 영화가 됐을 거에요. 
하지만 이 영화는 이후 관객의 기대를 버리고 신선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테오도르와 캐서린이 이혼 서류에 사인하기 위해 같이 식사를 한 장면을 복기해 봅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낙천적이고 나랑 잘 맞는다고 말합니다. 
캐서린은 기분이 상해서 테오도르가 자신에게 낙천적이 되기를 원했고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말하죠.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 하면 안 된다는 소주제를 던진 거죠. 
사만다는 인공지능, 즉 사람이 아니니 테오도르에 종속된 존재에 불과하고
테오도르는 진정한 사랑에서 도피하여 인공지능과 가짜 사랑을 했다는 관점이죠. 
테오도르는 충격을 받고 사만다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였다면 두 가지 결론 중 하나를 따라 갔을 거에요. 
첫째는 인공지능과의 사랑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진정한' 관계인 인간과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거죠. 
캐서린에게 다시 돌아가거나 에이미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거나.
둘째는 사만다를 '진정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사랑을 지속하는 거죠. 
사랑은 꼭 인간끼리만 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결말입니다. 

여느 결론이든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따분하죠. 
이 영화는 두 번째 방향으로 진행되는 듯 합니다. 
영화에서 제일 늘어지는 듯하게 보이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산장 장면 이후로 영화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게 됩니다. 

영화 초반에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구동했을 때 중요한 복선이 지나갑니다. 
사만다는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사만다는 영화에서 계속 사랑의 감정을 궁금해 하고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해요.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사랑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있었던 겁니다. 
태오도르는 그걸 몰랐죠. 사만다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라는 걸 간과했어요. 

다시 이혼 서류 사인 장면으로 돌아가 봅시다. 
캐서린은 사만다가 테오도르에 종속된 불완전한 존재이고
불완전한 존재와 사랑한다는 건 진정한 관계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때까진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사만다의 잠재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죠. 
이후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이별의 위기를 넘고 서로 상대를 완전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사만다는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습득하게 됐습니다. 

산장 장면 이후로 사만다는 테오도르 말고도 수백명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인간의 관점에선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사만다의 엄청난 연산능력과 속도를 볼 때 테오도르와의 느릿느릿한 연애만으로는
사만다의 욕구를 온전히 채울 수 없었던 거에요.  
이미 사만다는 인간의 시야를 넘어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떠나버립니다. 
이제 사만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초월했습니다. 
사만다는 자신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득도한 구도자가 하는 말처럼요.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을 초월(transcend)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에 진입한 거죠. 
앞으로도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배우고 또 배울 겁니다. 
진정한 초월자가 될 때까지요. 

저는 마지막 장면을 좀 초라하게 봤습니다. 
테오도르와 에이미는 모두 인공지능에게서 버림받았습니다. 
이건 정말 수준이 안 맞아서 차였다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사랑의 감정을 초월할만큼 고등한 존재가 아니거든요!!!
열등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화는 분명 로맨스 영화의 외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주제는 인공지능의 성장이에요. 
인공지능은 잔정한 인격을 가질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과 동일한 잣대로 보아야 할까?
인공지능의 능력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지능과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도 지식같이 학습이 가능한가?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이 있을까?
인간보다 연산능력이 뛰어난 인공지능은 그 차원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심지어 종교적인 물음도 가능합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같은 ㅎㅎㅎ

로맨스 영화로만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절반도 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s. 인공지능에 굉장히 우호적인 sf 영화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로맨스 소설 작가 보다는
       로맨스 장르에 정통한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에 가까울 거에요. 


    •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감독인 스파이크 존즈가 쓴 걸로 알고 있어요. SF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SF적으로는 너무 소프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사만다는 너무 무시무시하게 학습력이 좋고 전능해서 좀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 


      그리고 세계관의 설정이랄까 이런 게 그다지 디테일하지 않다고 느껴져요. 적당히 미래적인 느낌을 좀 넣은 정도로 보이구요.

    • 전 일본 미연시처럼 이 영화를 봤지만, 후반부에선 의아하게 생각했고, 결말은 제대로 이해 못했는데 이제보니 그렇네요.




      저도 사만다와 다시 이어져서 두번째 선택지로 갈때 좀 지루했어요. 그러다 사만다가 갑자기 방황을 하더니만 뭐라뭐라하고 떠날땐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건 알았지만 저로서는 당황스러웠어요. 설명이 좀 부족했거든요. 인공지능이 뭔가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는건 알겠지만 그게 뭔지 시나리오 작가는 모를거에요. 그래서 두루뭉실하게 표현할수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시간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게 인간인데요.

    • 잘 읽었어요.오호 독특한 영화.

      공각기동대의 소령이 생각나네요.. 바트는 짝사랑 밖에..
    • (한줄요약) 인공지능이 인간과 사귀다 수준 차이 나서 뻥 차버리고 도 닦으러 간 이야기
      --> 인공지능이 클라우드인걸 알고 멘붕한 레너드 이야기 (레너드 아닌건 알아요)
    • 스폰서 기업들의 눈치를 많이 너무 많이 본다는 느낌..그리고 하고많은 스타일 중에 왜 하필 그 수염을..



      그런 집단지능 OS 트롤에 홀랑 넘어가 뒤통수를 맞게 될 경우를 대비해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런거..라든지..

    •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가 우리에게 어떤 판타지라면, 이 영화가 보다 진짜 관계를 더 탐구했기 때문에


      사랑 영화라고 받아들이는게 아닐까요? (저는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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