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났던 나쁜선생들에 대한 잡담
하하 제목만큼 뭔가 심각한 얘기는 아니에요. 흠...요즘 매순간 깨닫는 거지만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학교를 다니고 집단생활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절대로 많은사람들과 잘 지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며 살고 있는데 문제는 어렸을 때는 지금 알고 있는 걸 몰랐죠. 정말 학교에 선생은 왜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에게서 뭘 배우거나 유익한 것들을 받은 적이 전혀없거든요.
흠...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를 무지 비싼 사립학교를 갔어요. 가고싶다고 마구 우겨서요. 당시에는 그런 학교를 가야 노벨상을 타는 데 유리할 거란 계산이 있었거든요. 7살 때는 너무 어리석었기 때문에 노벨상 따위나 노리고 있었었죠. 하여간 1학년 때 선생은 뉴비선생이었어요. 애들 손을 때릴 때 선생인 자신도 아파야 한다며 손 마주치기로 때려서 자신에게도 대미지를 주며 체벌을 가하는 선생이었어요. 나름 참신했지만 아예 체벌을 안했다면 더 참신하지 않았을까 해요. 당시에 해저 2만리에 나오는 네모선장을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선생에게 대답할 때 네모선장의 말투를 따라하던 기억이 나요.
2학년때는 제가 학교에 적응을 잘 해서 문제가 없었죠. 그학교는 한달에 한번씩 시험을 쳤는데 점수도 올백을 맞고 바이올린도 잘 해서 나름 학년 대표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때 지고르네이바이젠을 처음 들었는데 곧 나도 이걸 켤수있게 되겠지 하고 주억거렸어요. 그런 날은 결국 안왔지만요. 계속 올백을 맞다가 어느날 올백을 못맞았거든요. 그래서 그순간부터 이미 완벽한 인생을 구축하는데 실패했다는 기분을 늘 느꼈어요. 2학년때 선생은 나쁜 사람은 아닌 줄 알았는데 어머니를 만나는 자리에서 제가 점수를 잘 받고 바이올린 학년대표도 했으니 촌지를 내라는 이상한 논리로 돈을 뜯어갔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3학년때의 이춘X 선생은(이게 실명이던가? 뭐 상관없겠죠)맙소사였어요. 아무리 초등학교 선생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지만 무엇을 기대하던 실망할 만한 수준이었어요. 한데 그학교는 빌어먹게 비싼 사립 학교였거든요. 시간만 나면 등록금 값을 할 만한 지식을 전해주는 대신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어요. 빌어먹을 하느님이 이전에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켰으니 다음 번 종말에는 불로 세상을 멸망시킬거라며 10살 학생들을 위협하는 눈빛으로 장광설을 토해내곤 했죠. 그리고 세상이 썩었으니 그순간은 곧 올거고 엿같은 하느님을 안믿는 사람은 불에 타버릴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또 뭐더라...한번은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던 적이 있었죠. '아기들이 왜 말을 할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손을 들어 '그야 아직 말을 안배웠으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선생의 눈빛을 보고 논리적인 것을 기대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자문자답을 하는데 아기들은 너무 순수해서 세상의 모든 걸 알기때문에 말할 수 없는 심정이기에 말을 안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한번은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털렸는데 나중에 지갑을 찾았고, 다행히도 지갑 안쪽에 숨겨둔 헌금만은 소매치기가 못 가져갔다고, 마치 그것이 감동적인 일화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 때는...휴...그만하죠.
그다음에 만난 김덕X 선생은(이게 실명이던가? 상관없겠죠)맙소사였어요. 그사람의 반에 배정됐다고 할 때 그가 두려워해야 할 남자라고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있었죠. 그리고 그가 들어왔는데 고작 11살먹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카리스마-그것을 카리스마라고 부를 수 있다면-를 끊임없이 발산하며 처음 만난 날 고작 11살먹은 아이들을 상대로 기선제압을 하고 싶었던 건지 세명 정도를 손으로 때렸죠. 솔직이 그때는 세상을 몰랐기 때문에 따귀를 맞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어요. 따귀라는 건 사람을 크게 해칠 수도 죽일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때는 두려웠어요. 지금이라면 따귀를 때리는 게 잘못된 거라고 말하겠지만 1992년에는 그가 어떤 아이의 따귀를 때리겠다고 선언하면 그 아이는 그 선생이 따귀를 때리기 가장 쉽고 편리한 각도를 제공하기 위한 자세를 취해야 했죠. 저는 그 따귀를 맞는 순간을 피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했지만 결국 몇 개월 후 그 노력들은 따귀를 맞는 순간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따귀를 맞는 순간을 늦추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떠들지도 않았는데 제 주위에서 소음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맞게 됐거든요. 거기서 '사실, 저는 떠들지 않았습니다만?'이라고 한번 말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무의미한 시도를 했다가 따귀 몇 대를 더 맞는 상황을 이미 봤었기 때문에 그냥 따귀를 맞기로 했어요. 흠...11살 먹은 아이의 뺨을 중년의 남자가 풀스윙으로 가격했어요. 그런 운동에너지가 제 뺨에 가해지는 것과 그 순간을 50명이 보고있다는 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이쯤에서 여기까지 따라온 분들을 위해 줄바꿈을 하죠. 저는 배려심이 많으니까요. 뭐 어느 학급에나 하나씩 있듯이 그 반에도 선생이 편애하는 아이가 몇몇쯤 있었죠. 그중에서 또 순위를 매겨 1위를 정하자면 그건 어떤 여자애였어요. 그 반의 규칙은...아니, 모든 반의 규칙이 그랬죠 참...어쨌든 규칙은 숙제를 안해오면 손바닥을 매우 세게 맞는 거였어요. 한데 어느날 그 애가 숙제를 안 해온 거예요. 사실 숙제를 했지만 안 가져온 거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시도했지만 중요한 건 그 아이에게 숙제 결과물이 없더란 거였죠. 그 아이는 그때까지 한번도 맞은 적이 없어서 모두가 기대 비슷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 아이가 맞을 차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자신의 차례가 한 세번인가 남았을 때 울먹이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이 공간과 이 시간에서 공정함-그것이 잘못된 공정함이더라도-이 실현되는 순간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 아이가 맞을 차례가 됐을 때 상체를 돌렸죠. 선생의 편애로 그 아이가 몇 번인가 이득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순간만큼은 체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런데 선생은 그 아이 앞에 서더니 몽둥이를 드는 대신 입을 열었어요.
"~~윤이는 지금까지 한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다. 그래서 손바닥을 때리지 않겠다. 지금까지 한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내가 주는 상이다."
두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죠. 갑자기 이 반에 괴이한 규칙이 추가된 게 이상했고 누군가를 때리지 않는 것이 상을 내리는 것이라는 논리가 이상했어요. 지금의 저라면 벌떡 일어나며 콜로세움의 관객처럼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퍼포먼스 정도는 했겠지만 그때의 제겐 그런 비틀린 유머감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어요.
그리고 어느날...저도 숙제를 안 해오는 날이 왔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죠. 사실 90%정도는 했었고 그 수업 시간까지 약간만 손을 움직이면 숙제가 완료되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숙제라는 건 전날 밤 자기 전까지 해야 하는 거니까요. 학교에 와서 숙제를 완료하는 건 반칙을 하는 거였고 그건 공정한 게 아니었어요. 아마 제 강박증은 그때부터 징조를 보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래서 저는 그냥 숙제를 안 하기로 했죠. 왜냐하면 제가 숙지하고 있기로는, 이 반에서 처음으로 숙제를 안 해오면 벌을 안 주는 규칙이 있었거든요. 그날 또다시 숙제 검사하는 시간이 되자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은 교실 뒤로 나갔고 긴 줄이 형성되었어요. 어디쯤에 설까 하고 고민하다가 한 중간쯤에 섰어요. 너무 앞에도 너무 뒤에도 서고 싶지 않았죠. 왜냐고요?
"여은성은 지금까지 한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다. 그래서 손바닥을 때리지 않겠다. 지금까지 한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내가 주는 상이다."
라는 말을 듣는 영광스러운(당시 기준에서)순간을 즐기고 싶었거든요. 줄 가운데쯤에서 그 순간을 음미하고 싶었죠. 그리고 결국 제 차례가 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입을 여는 대신 다짜고짜 몽둥이를 드는 거예요. 거기서
"자, 잠깐! 규칙을 잊었어? 난 지금까지 한번도 숙제를..."
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순간 깨달았어요. 규칙 같은 건 사실 없었어요. 그때 그 아이의 손바닥을 안 때린 건 그냥 때리기 싫어서 적당한 이유를 댄 거였고 저는 숙제를 지금까지 해왔는지 안 해왔는지도 이인간에게 관심 밖이라는 거요. 그래서 그냥 손바닥을 맞아야 했어요.
휴...지치는군요. 5학년때와 6학년때의 선생은 언급하지 않기로 하죠 뭐 올해의 좋은 담임선생님 상과는 매우 먼 곳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만 말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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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어요. 최근에 들었는데 중학교때까지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 인간들이 매달 10만원씩을 촌지로 가져갔다는 걸 어른이 된 후에 들었어요. 이런 빌어먹을. 당시에 10만원! 매달!
그순간 진심으로 짜증이 나더군요. 빌어먹을 100원이 없어서 킹오브파이터도 못 했고 떡볶이 1000원과 순대 1000원어치를 혼자서 다 먹어 본 일도 없어요. 심지어는 생일날조차도요. 빌어먹을 가난 말이죠. 어떤 작가들은 가난에 대해 묘사할 때 그것이 마치 액세서리나 낭만 같은 캐릭터의 개성이나 되는 양 묘사하지만 그건 가난을 모르기 때문이죠. 가난은 족쇄예요. 내가 떡볶이를 한 번 먹고 싶을 때도 킹오브파이터를 한판 해보고 싶을 때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을 때도 그러는 대신 그냥 떡볶이를 먹는 상상과 킹오브파이터를 하는 상상과 놀이공원에서 노는 상상을 하는 자유만을 허용하는 족쇄죠. 그런 집에서 당시 돈으로 한달에 10만원씩을 뜯어갔어요. 빌어먹을 그럼 2학년 때 선생같은 '특별 촌지'를 요구하는 경우는 방학을 빼고라도 100만원쯤 갔다준 거잖아요? '여은성이 전교 1등을 하고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바이올린 학년 대표를 한 건 여은성이 노력해서가 아니라 내가 담임이었기 때문이니 특별히 더 내세요'해서 준 촌지 말이죠.
물론 편애받던 그 아이네도 촌지를 갔다 줬겠죠. 한데 우리집에서 준 촌지는 무시하고 그 집에서 준 촌지는 가치있게 여겼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열받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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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계획을 세웠어요. 하루 날 잡아서 그때 그 선생들을 다 찾아다니는거죠.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약간의 덕담을 건넨 뒤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그들이 자신의 자식과 자신의 손자손녀 자랑을 하는 걸 5분쯤 들어준 후에 반말로 이렇게 말해야죠. 그때 뜯어간 돈을 지금 물가 기준으로 변환해서 내놓으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아 심심한 나는 평생 너랑 니 자식들을 따라다니며 진짜로 짜증난다는 게 뭔지 가르쳐 줄 거라고 말이죠.
뭐 그 선생들이 더이상 찾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면 자식들을 찾아가서 내놓으라고 해야겠죠.
'사랑의 파괴'라는 소설이 생각나는 글투네요.
그 소설의 무척 똑똑하고 생기발랄하면서 아주 자존심 강하고 도도한 체하고 남들을 자기 눈 아래로 보는
재수없는 여자아이 주인공이 떠올랐어요, ^^
1990년대 초에 10만원씩이라... 그런 걸 '촌지'라고 불렀다는 것만 봐도,
참 그 때의 선생들이란 얼마나 후안무치하고 저질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실이죠 -_-;;
그 당시면 노동자들이 일해서 받는 봉급이 기껏해야 50만원 60만원 정도이던 시절이 아닌가요?
고급 사립학교면 릴라? 아무리 릴라국민학교 선생이라도 월급을 120만원보다 더 받진 못했을 것 같은데
한 아이 부모한테 10만원씩이라니, 아니 한 반에서 한 달에 월급보다 더 많은 뇌물을 받아 챙겼겠는걸요.
전 듀게에서 여은성님이 쓰신 글이 제일 재밌어요.
촌지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는 상상은 좋군요.
다만 어린 시절의 가난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리해서라도 비싼 사립학교를 갈 수 있는 수준이라면 가난을 칭하기엔 부끄럽거든요. 저도 그 시절엔 저희 집이 아주 어렵다 생각했는데 커서 직접 벌다 보니 단지 제 용돈이 없었을 뿐...한 가정에서 돈이 없다면 하지 못했을 이상한 점들이 보이더군요.
ㅋㅋㅋㅋ
근데 많은 선생님 댁 자녀들이 이 글을 본다면
상당히 간담이 서늘하겠는걸요.
선생님 집 애들도 고등학생쯤 되면
자기 부모도 자기가 학교에서 보는 다른 선생들처럼
그렇게 뇌물을 받아 챙겨 왔다는 걸 알던데 말이죠.
초등학교 시절 촌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일매일 맞았어요. 받아쓰기를 빨리 하지 않는다고 맞고, 반 아이들이 모두 그린 그림을 뒤에 걸어줄때도 저는 안 걸어줬죠. 못 그렸다면서요. 음악 시간에는 리코더가 더럽다며 맞았구요. 할머니선생이었는데 2학기에 수면중 돌연사했죠. 반 아이들이 모두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로 우는데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던 기억. 그 다음 교사는 반에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가난한 여자애를 '더럽다'며 수업 중 일으켜세워 코트를 입은 채 매로 몸을 때렸어요. 빨래를 얼마나 안 했는지 코트에서 먼지 일어나는거 보라며요. 그리고는 자기가 이 더러운 아이를 동정해 대중목욕탕에 데려가 때를 밀게 했는데 얼마나 더러웠는지, 얼마나 때가 많이 나왔는지에 대해 반 아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했어요. 여전히 그 아이는 세워둔 채로. 당연히 그 아이는 왕따... 그 다음 선생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촌지를 주지 않았다며(저희 어머니는 참 순진도 하셨죠; ) 1학기가 끝나고 학급도서를 가장 많이 읽은 아이에게 주는 상을 저에게 주지 않으려고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 내용을 한권한권 다 말하게 시켰어요. 널 믿지 못하겠다, 너는 책을 많이 읽을 아이가 아니다라면서요. 저희집은 서점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고 이건 좀 너무 아닌데. 하고 집에 와서 어머니께 말했고.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와 상의 후 촌지를 대령했다고 합니다. 그 뒤 2학기는 굉장히 편해졌어요. 더 이상 물걸레질 해서 젖고 더러운 바닥에 강제로 무릎꿇리는 일도 없었구요.
중학교에 올라가자 1학년 담임이 남자였는데, 첫 인사가 끝난뒤 바로 한다는 말이 '너희들 중에 이번 IMF로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 혹은 두 분이 실직한 사람 있으면 지금 손을 들어' 라고 했어요. 1학년1학기 첫날에요. 당시 4분단 앞에 앉아 있었는데, 손을 들고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죠.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요; 설마 지금 갓 중학교 올라와 처음으로 만난 친구들 앞에서 '우리 부모님이 실직했습니다'하고 발표하라는 건가 하구요. 바보같은 나. 덕분에 1년간 제 성적표에는 '반항적이며 협동심이 없음' 등등의 평가가 적혔죠. 그 뒤로 만난 기기묘묘한 교사들을 떠올리면 다 쓰기도 힘드네요. 교사에 대한 신뢰는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끝장난 채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없는건지 제가 예민한건지 원. 유일하게 초등학교 1학년 담임 만은 참 좋은 분이었어요. 지금도 기억나요. 젊고, 순수하고, 예쁜 여선생님이셨죠.
아, 이 글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하나 되살아 났어요 -_-;;
저도 중학교 시절, 저희 어머니한테 노골적으로 돈 가져오라고 하던 선생이
돌연사한 적이 있었어요.
전교생을 모아놓고 추도시도 읽는 등의 장례식을 했는데,
저는 진짜 눈물이 나오긴 커녕 '귀신도 가끔은 제 할일을 하는군'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어요.
당시 저희 집은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기울어 가고 있었고,
그 선생이 요구하던 돈은 5만 원 10만 원도 아니라, 전체 학년 선생들이
회식을 하거나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돈이었죠.
저희 어머니는 5만 원 정도 되는 물건을 갖다 바치면서
'이걸로 좀 봐주세요' 라고 했어야 했고요, 지옥에서 한번 더 타 죽어라, 망할 놈의 그 선생!
저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담임들을 찾아가는 걸 잠시 상상해봤는데. 어린 시절의 저를 가장 찢어놨던 담임은 이미 그 당시 사망했고, 저 학급도서 사건 교사가 한 번 만나고 싶네요. 도대체 당신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어? 하고 묻고 싶습니다. 음...중고등학교 담임들은 너무 비상식적인 인간들이어서 만나고 싶지도 않네요...더구나 남자들이 더 많았어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당시 남자 교사 한 명은 여학생을 너구리 굴 같은 남교사 흡연실로 불러서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한 다음 엉덩이와 허벅지를 맨 손으로 수차례 때리는 '체벌과 훈계'를 저질렀다는 소문도 있었고,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가위로 여학생 머리를 마구잡이로 잘라서 부모님을 출동시켰던 지구과학교사라든가... 아이고 두야. 잊고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샘솟네요 하하. 제게 학교란 정말 지옥같은 곳이에요.
전 초등학교 6년 내내 어머니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만 다녔는데...
엄마도 담임한테 촌지를 줬을까요?
중학교때는? 고등학교때는? 전 왜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하기야, 그걸 물으려면 "엄마아빠도 받았어?"도 물어봐야했겠지만 ㅋㅋ
어렸을 때 학교의 기억이 거의 없는 저로써는 이렇게 뚜렷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합니다. 저는 이상하리만큼 교정 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별로 기억나질 않거든요. 초, 중, 고등학교까지 전부요.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을 짜맞추어보면 별로 즐거운 학교생활은 아니었고 의도적으로 망각한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공백들이 꽤 무섭게 다가와요. 특히 중학교 시절 3년을 다른 식으로 보냈다면 현재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죠. 제게 있어 적은 선생님들보다 학생들이었으니까요.
저는 체벌을 강박적으로 싫어해서, 고등학교 때는 맞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고 맞지 않기 위해 교칙과 불문법과 선생윤리를 지켰죠. 단체 체벌은 선생이 아니라 집단을 증오하게 만들었구요. 솔직히 군대가 고등학교보다 편하더라구요. 군대에서 연좌제보다 고등학교에서 연좌제가 훨씬 많이 적용되었고 적어도 군대는 규칙은 제멋대로인 망정 내 통밥으로 피할 수 있다란 개인주의적 감각은 줬으니까요. 짜증나게도 제가 가장 착실하게 생활했던게 고등학생 때였고 거기서 교훈을 추출해야하는가 아닌가는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독재 시절에 경제가 성장한 듯이 말이죠. 학교가 가르치는게 집단생활인지, 학교가 세뇌하는게 집단생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생활의 연장선상을 사회생활로 두는데 솔직히 한국에서는 그 전후와 인과를 어떻게 배치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저도 오히려 중학교 2학년 3학년 시절은 묘하게 기억이 희미해요. 리플을 쓰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시 학급을 좌지우지하던 아이 두명이 돌아가며 왕따를 만들고 주도적으로 대단히 적대적인 반 분위기를 만들었던게 떠오르네요. 아마 너무 괴로운 나머지 일부러 지운 것 같기도 해요. 당시 반에서 학우들간의 배신과 공개 재판이 연속으로 일어났던 게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두명에게 그렇게 휘둘리다니 어이가 없지만, 이런 일은 성인들의 회사에서도 쉽게 일어나죠. 고등학교 시절은 희미하게 미화라도 되는데 중학교 시절에는 어떤 블러도 안 먹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