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요즘 글을 쓰고 나면 자괴감이 듭니다.
강박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쓰는 글들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쓰기 보다,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평가받거나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 까닭인지 , 결과물을 보면 괴롭습니다. 시험장에서 쓰고 나와야 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자유롭게 남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성심성의껏 쓰던 때가 있었고 아마 그런 시간이 지난 10년 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제가 가진 생각이 있고, 공부해온 내용이 있고, 표현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 내용과 방식이 계속 '평가받는 글' 안에서는 '맞지 않는다' '이래야만 한다'라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기 시작한 최근의 글은 알맹이는 없고, 겉멋만 잔뜩 든 것 같고, 지식 자랑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갖춰온 '글에 대한 자의식, 투자해온 시간'이 마치 '짐'처럼 느껴지기 까지 한다는 점에서 더 괴롭습니다. 지난 10년이 무용해지는 느낌. 나에게로 가까워지는 글이 아니라, 나로부터 멀어지는 글이 결과적으로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 아니라, '이래야만 한다'라는 기준과 평가자의 눈치를 살피는 생각이 결과적으로 구라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 글이 자신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쇼하고 있다'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죠.
주위의 지인들은 그런 기준에 맞춰 나름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뭔가 그런 기준에 포섭된 글들은 그 사람의 개성과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어있다기 보다는 공장에서 찍어나온 , 잘나가는 공산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절대 비하가 아닙니다. 쉽고 간결하게 정확한 시간내에 자신이 선택한 간결한 주제의식을 살리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요. 저는 그걸 못하고 있구요. 하지만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해온 것이 있고 주제에 관해 분명히 할 말과 생각이 있음에도, 그것에 관해 자유롭게 풀어놓기 보다, 그것을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재단하고 평가받고 이렇게 써라 라는 명령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 자신으로부터 더 가까워지기 보다는 스스로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글 안에서 창의적인 자유를 얻기 보다는 교과서적인 정답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 글에서 '창의성' '개성'을 평가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구요.
글 안에서 이뤄온 것들, 글로 인해 살아온 날들, 글 자체가 나 자체였던 시간이 있는데, 이제는 그 글 때문에 내 자신을 잃고 있고,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생산품을 직접 사용하지 못하고, 상품으로 내놔야 하는 '소외'를 스스로가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괴로운 걸까요.
위와 같은 생각들을 반복하다보니, 이것조차 자의식 과잉. 또한 무한한 퇴고 과정에서 다 지워버려야 만 하는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글을 짓거리고 있는데, 이런 짓거림 조차 낯설다고 할까요. 한 문장 한 문장 놓는게 부자연스럽고, 써놓고 보면 이건 대체 뭔가 라는 생각이 들고, 자식을 낳아, 자식 맘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신조를 가졌던 부모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보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기준이 절대 틀린 것은 아닌데, 왜 저는 그 기준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게 이토록 괴로운 걸 까요. 세상에 입장하는 것이란 이런 걸까요. 왜 철부지 같은 생각을 이 나이에도 하고 있는 것인지. 내 스스로가 가진 개성이나 생각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생각에 , 잠에 들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여름 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출판사에서 원 텍스트를 무시하고 자꾸 쉽게 풀어서 하라고 요구하는데 요즘 내가 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논문 얘긴가요?
앗, Hopper님은 듀게에서만 글을 잘 쓰셨던 것이었군요! (제가 닉네임으로 글 검색해서 읽어본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분이신데요.) 듀게에서는 글을 잘 쓰시는데 다른 데서는 잘 못쓰고 계시다면 결론은 하나! 잘 못쓰고 계시는 그 글을 듀게에서 써서 올리시는 겁니다. 아니면 듀게에만 글을 쓰시거나요. Hopper님의 자아실현은 듀게가 책임진다고 하네요. (그렇죠, 듀나님??)
글쓰기가 생업이시거나 전문분야시라면 내내 지고 가셔야 할만한 고민이시겠네요. 저는 요즘 삶 자체가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강박관념 같은 거에 시달리고 있어서 남일 같지 않으네요.
생각해보면 저에게는 글쓰기라는 것 자체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글쓰기 대회라든지 수업 중의 글쓰기라든지.. 그런 게 아니면 글을 쓴다는 행위가 너무 낯설었거든요.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을 남의 입맛에 맞춰보이는 것도 대단한 재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족으로 궁금한 게... '짓거리다'라는 게 '지껄이다'의 다른 표현인건가요?
자조적으로 쓰시다보니 '짓'을 더 낮춰 부르는 '짓거리'랑 '지껄이다'를 잠시 혼동하신 듯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영 안 맞고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는 방법을 택해왔어요(-_-). 그게 안 되는 상황일 때는 글 자체에 너무 큰 가치를 두지 말자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글 자체가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쪼금 편해지더라구요. 글은 그냥 내가 만들고 싸고 쓴 많은 것 중에 하나다. 좋은 글이 태어나려면 형편없는 글도 쓰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영혼 없는 글을 쓰느라 힘드시더라도 10년 동안 지켜왔던 자신의 본질이 다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이런 고민을 붙잡고 계신다면 언젠가는 나 자신에 더 가깝게 다가간 글을 쓰시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쓰는 글도 그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저는 제가 쓴 글이 눈에 안 차서 너무 고민이에요. 글 잘 쓰시는 분들 글만 읽다 보니 눈이 높아져서 제가 쓴 글을 보면 다 휴지통에 던져 넣고 싶어져서... 계속 고민하고 계속 쓰다보면 뭐 진전이 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