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배우의 공통점
신문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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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벗인 공형진, 황정민 두 배우와 함께 북토크 행사를 가졌다. 판사와 배우, 두 직업의 공통점은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고통받는 삶을.
‘파이란’의 공형진은 포르노를 파는 밑바닥 양아치고 위장 결혼 후 취업하는 장백지의 브로커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은 에이즈 환자인 여인을 사랑하는 농촌 총각이다. 두 배우의 명연기는 리얼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엄혹하다. 법정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 베트남 며느리의 삶은 팍팍하다. 장백지처럼 뽀얀 얼굴 긴 생머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화적인 삶이 아니다.
‘너는 내 운명’의 바탕이 된 실제 사건에서 인신매매와 카드빚 때문에 매춘을 하다가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인을 언론은 ‘성(性)을 위해 살아왔던 여인’이라고 매도하며 거주 마을을 공개했다. 윤락업소에 한번이라도 갔던 남성들은 에이즈 전염으로 몰살당할까봐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HIV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하여 모두 에이즈 증세가 발병하는 것은 아니며 에이즈는 이제 의학적으로 통제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본다. 1회 성관계로 감염될 확률은 1% 미만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처럼 무지는 공포와 편견을 낳는다. 타인에 대한 무지, 특히 소수자에 대한 무지는 배제를 낳는다. 필자는 2001년에 트렌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관련 입법 공청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다수자에게는 그저 불편함이지만 소수자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라고 주장해도 그 ‘불편함’의 벽은 높았다.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똘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강연을 마친 후 한 여대생이 다가와 펜을 내밀며 수줍게 ‘똘레랑스’라고 써 달라고 했다. 기억하고 싶다며. 고마웠다. 스타를 보러 왔을지도 모를 그 친구가 생소한 타인의 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사람이시군요.
잘 써주셨군요 오래 가지고 있겠어요.
똘레랑스 검색을 한번 해보니 누구의 답변에 다르다를 틀리다로 생각하지 않는 것.
배우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때론 그 작품을 쓴 작가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저런 역을 수용하고, 감정이입하고 연기할까...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판사도 사건을 통해 타인의 삶을 체험한다는 말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것도 결국은 사람 나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문득 글을 보고, 전혀 엉뚱하게도, 한때 공직에 발 담갔던 어느 연기자의, 그 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 긴 시간 농촌 청년을 연기하고, 혹은 햄릿을 연기하던 그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현실 속에서의 모습들을 보고 어이없었던 기억이 떠 올라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무지가 공포와 편견을 낳고 그것이 소수자(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제의 폭력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요즘은, 그것이 결국은 사람의 인성 속에 모두 포함된 한계는 아닐런지 하는..조금은 암울한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개개인들이 '그래도 계속해서 분투해' 사회에 영향력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배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 공감합니다. 인연이 있어 친해진 두 배우만 하더라도 평소 보면 흔한 그 나이 또래 아저씨일 뿐이에요. 화제도, 관심도 사는 모습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런데 화면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거든요. 아, 어떻게 저 인간이 생전 겪어보지 못한 다른 인생의 고뇌와 환희를 저리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일까. 그들은 위대한 창작자이고, 접신하는 무당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배우와 판사 뿐 아니라, 어쩌면 대부분의 직업이 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필요한 것 아닐까 싶어요.
작년말인가 금년초에 중국에서 에이즈환자의 공중목욕탕 출입을 금지하는 입법이 시도된 적이 있었어요. 결과는 찾아보지 못했는데 그 입법시도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분 및 환영을 동시에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체적 내용에는 에이즈환자의 경우 공중목욕탕에 출입할 수 없으며, 공중목욕탕업주는 에이즈환자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을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정도였습니다. 제가 본 글은 에이즈 환자여부를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뿐더러 목욕탕을 같이 쓴다고 해서 에이즈가 옮지는 않으며 에이즈 병균은 고온에서는 살지 못한다 어쩌고 하는 내용의 과학자 의견을 붙여서 쓴 비판조의 신문기사였는데, 입법화 여부를 떠나서 그런 시도 자체가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무지가 사람들을 그렇게나 비인간적이고 배려없게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것이 한 나라의 지도층이라는 것도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지식이나 배려,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었어도 그런 사태는 안 일어났을텐데요.. 뒤이어 우리나라도 뭐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지기도 했구요.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배우, 판사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지식과 배려(공감,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의 굴레지요. 저나 sublime님 역시 에이즈가 발견되어 전세계가 공포에 떨던 초창기였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지요. 그 한계를 알기에 더 스스로 경계하고 되돌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에이즈 소동 기사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참 기가 막히다' 입니다. 어떻게 남자들은 성매매 하러 가면서 콘돔도 안끼고 매수 행위를 할까 싶어서요ㅋ 에이즈도 그렇지만 성병이 무섭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