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어린 시절 추억 1.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못 받은 탓에 잘못된 버릇도 많았던 제 경험이
혹시 자녀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에 있어 참고하실 거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제게 있어 글이란 과자나 만화 같은 중독의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정도 이상으로 미친듯이 활자중독증. 하루종일 읽고, 읽고, 또 읽기만 하는
글 오타쿠였습니다. 균형잡힌 어린 시절은 아니었죠. 운동부족에, 사회성도
떨어지고, 또래에 맞지 않는 어른들 책도 마구잡이로 읽고.
읽기만 하다가 글을 직접 써 본 기억으로 최초의 것은 동시였던 것 같아요.
친척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동문학가셨어요.
그 분 빽(?)으로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쓴 동시가 '아동문학'이라는 문예지에 게재되었으니
우리나라의 정실주의는 대단합니다.
'보름달'이라는 동시였는데,
높고 높은 하늘에
축구공이 떠있네
얼마나 힘껏 찼는지
내려오지도 않네
넓고 넓은 하늘에
엄마 얼굴 걸려있네
얼마나 활짝 웃는지
햇님보다도 밝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은 모방이 아니었나 싶어요.
책벌레 기질로 보내주시는 아동문예지를
열심히 읽다보니 동시작가들이 쓰시는 타입의
동시들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운율과 은유, 댓구의 기법을 흉내냈던 것 같아요.
어린애다운 엉뚱함과 순수함보다는 어른처럼 능숙하게 써서
칭찬받고 싶어했던 것이죠.
사실 보름달에 대해 아무런 대단한 감흥도 관심도 없으면서
무난한 주제를 가지고 그럴 듯한 비유 두 가지를 나열한 죽은 시입니다.
집안 어른들도 선생님들도 제가 어른 흉내를 내고 아는 척하면 다들 대견해 하고
똑똑하다고 좋아하셨으니 그 칭찬에 중독되어 잘난 척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애늙은이 기질, 책벌레 기질이 바탕이 된
칭찬받기 위한 글쓰기는
그 후 꽤 오래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 중학교 1, 2학년 때까지 각종 글짓기 대회, 독후감 대회 등에
학교 대표로 참가할 기회가 많았고, 상도 참 많이 탔는데
그 때 쓰던 글은 사실 글이라기보다 어른들 글의 흉내, 어린애 수준의 현학이었습니다.
무슨 글 제목이 주어지면 우선 잡다하게 읽은 책 중에서 그 제목과 연관되는
지식을 주루룩 나열하고, 책에서 읽은 유식해 보이는 표현들(주지의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에고이즘 등의)을 의식적으로 섞어 쓰고, 무난한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했지요. '백일장 장원용' 글쓰기라고 할까요?
서가에 중학교때 교지가 있어 중1때 쓴 글을 다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꿈
"어젯밤 꿈 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동요의 한 귀절이다.
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꿈이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인류에게 꿈이 없었다면 고도의 현대문명도 찬란한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저 2만리에서 꿈꾸었던 원자력 잠수함, 잠수복
등은 모두 실현되었고, 옛날 사람들에겐 꿈이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실이 되었다.
꿈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정복이라는 야망, 시골 소년의 소박한 꿈, 냉혹한 현실과
비참한 환경에서도 피어나는 희망. 이런 많은 꿈들에 의해 역사는 창조되었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라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소년 시이저의 원대한 야망이
없었다면 대 로마 제국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대망보다도 소박한 희망이야말로 고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이스 신화를 보면 인류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를 미워한 제우스는
판도라를 보내어 세상에 온갖 질병과 악을 퍼뜨리게 했지만 오직 희망만이
남아 그 어려움 속에서 인류를 구해왔다고 한다.
그렇다. 인류에게 희망이라는 벗이 없었다면 이 세계는 절망으로 가득찬
지옥같은 곳일 것이다.
흔히 현대인들은 꿈을 잃어가는 사람들이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꿈은 인류에게 항상 새로운 창조의 힘을 줄 것이다.
이상향, 유토피아라는 것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곳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기독교에서 일컫는 천국, 불가의 극락, 무릉도원, 에덴동산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르되, 이런 곳이 있다고 믿는 근본적인 이유는
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꿈이 있으므로 완벽한 행복이 충만한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 동산 같은 곳을 동경하게 된다. 이런 곳을 동경하는 건
인간 본연의 심리인 것이다.
하나, 지나치게 꿈 속에서만 사는 몽상가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자기 분수에 맞는, 아름다운 꿈을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이 지구야말로 다시 없는 천국일 것이다.
7월의 태양보다 더 빛나고 5월의 신록보다 더 푸른 꿈을 내 마음의 정원
속에 가꿔 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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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글쓰기를 금과옥조로 삼아온 데에는 신문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국민학교 고학년 때부터 집에 들어오는 신문을 읽었는데
특히 이규태 칼럼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주제에 대하여 동서고금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나열하고 점잖게 훈계하며
마무리를 하는 패턴의 이 칼럼이 당시 제게는 제일 폼나 보이는 모범적인 글이었던 게죠.
그러니 자신의 삶 속에서 펄펄 살아있는 자기 이야기를 할 줄 모르고
책에서 읽은 죽은 지식만 나열하는 신문 칼럼형 글쓰기에 젖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런 저를 깨우쳐주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모두들 똑똑하다, 글 잘 쓴다 칭찬만 하시면서 학교 대표로 여기저기
백일장에 내보내 교육감상 타고 무슨 구청장 상 타오게 해서
애국조회 때 교장 선생님이 뿌듯해하시도록 등을 밀어대셨어요.
결국 어른들을 위해 재주 넘는 원숭이 같았다고나 할까요.
항상 백일장 주제는 '고궁', '희망', '신록' 등등의 화석 같은 것들이었으니
신명나게 진짜 쓰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중2때인가 또 모 학생신문 주최 백일장에 나갔습니다.
주제는 '우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또 관포지교가 어떻고 우정에 대한 격언들이 뭐가 있고...
따위의 백일장용 글을 뚝딱 써 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장원이겠지 하는 오만한 착각에 결과 발표를
보니, 장원은 커녕 장려상도 아니고 아예 이름이 없더라고요.
주제에 충격에 휩싸인 채 장원을 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맞춤법도 곳곳에서 틀리고, 유식한 일화 소개 하나 없는
일기 같이 소박한 글이었어요.
국민학교 때 몸이 불편한 짝꿍과 다투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지만, 서서히 친해지면서 형제같이 지내게 된
이야기를 진심과 애정을 담아 쓴 그 글을 읽던 충격을
아직까지도 기억해요.
이런 글도 있구나. 인용 하나 없이 그냥 도란도란 이야기하듯이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잘 읽히고 마음에 와 닿는 글이 되는구나.
사춘기의 자존심에 열등감까지 느끼게 만들었던 글이었습니다.
나 따위는 죽어도 이런 글 못 쓸 것 같았어요. 죽은 책만 읽었지,
정작 살아있는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에는 익숙해
있지 않았으니까요.
.....(아마도) 담에 계속
이규태 결론: 가공할 ...가 아닐 수 없다. 엄청난....가 아닐 수 없다. 깜짝놀랄....가 아닐 수 없다
아 재밌습니다.
중1이 저렇게 쓰다니 좀 충격이긴 합니다.
보름달 시 참 귀엽네요.
저도 책의 몇귀절을 훔쳐서 지어내는 글을 써서 제법 잘 쓴다 말 들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짓을 지금도 가끔 합니다 눈치 못채게 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죠.
이규태 칼럼을 오려서 벽에 붙여놓은적 있는데 얼른 내용이 생각안나는군요.
화를 두려워할줄 알아라 그런 고사성어였나 그랬는데요.
ㅠㅠ빨리 다음편 주세요
보름달 시 1연 좋은데요? 저는 왜 dmajor7님의 칼럼 글보다 이런 글이 더 좋을까요.^^ 아마 dmajor7님의 솔직함과 따뜻함이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어린 dmajor7님을 너무 심하게 야단치진 마세요.^^)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김전일, 가끔영화/역시 우린 이규태 칼럼이 익숙한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