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늘 그렇지만 개인적인 생각과 우울함이 듬뿍 들어가 있는 글입니다.
늘 그렇지만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쓰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죄송합니다.
최근 우울함의 방아쇠가 어떤 감정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우울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지 못하고 있는 죄책감, 살아 있다는 죄책감, 쓸데없는 글로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럴 때면 살아 있다는 것은 죄악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무거운 죄를 짓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전 사람은 왜 사는가를 고민합니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요.
여름이 되면 들끓는 벌레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여름 한 철만 살아도 된다면 얼마나 마음 편할까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화나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전 이 한 철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아요.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언제부터 미래란 무거운 걱정거리가 되어 버린 것일까요.
더 나아져야 하는데, 더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미래가 두려울까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변수들과 어쩌면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신.
어느 쪽도 두렵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을 즐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라고.
지금 마시고 있는 차가운 음료의 맛이나, 지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기분 좋음 같은 것들.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자꾸 걱정이 되니 미치겠어요.
걱정 많은 성격이야말로 저주받은 게 아닐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우울증을 앓고 나서는 정신의 내성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쉽게 약해지고, 쉽게 지쳐요.
근육이 약해지는 것마냥 정신의 근육도 약해져버린 듯해요.
예전에는 별 생각 없이 가볍게 걷던 밤길도, 이제는 걸으면 쓸쓸하고 무서워요.
자꾸만 마이너스 방향으로 향하는 사고를 추스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애써 좋은 점 하나 없는 자기 자신을 칭찬해가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도록 애를 씁니다.
용감하게 살고 싶어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가끔 인터넷에서 힘들게 산 사람들의 경험담 같은 것을 보면,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을까 하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어떤 비교여도 좋지 않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생각이 잘 멈춰지지가 않아요.
고생은 좋은 것이 아니라지만, 어떤 환경에 내던져져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나는 왜 그렇지가 못한가 하는 자괴감에 빠집니다.
이래선 안 되겠지요.
덜 고생한, 혹은 고생하지 않은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먼저겠지요?
얼마 전에 고용안정센터에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 걱정만 더해지더군요.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작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자기들은 어디까지나 중립이라고 말하던 상담사의 그 말이... 마치 선을 그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기술도 능력도 없는 사람은, 국가조차도 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조금, 조금 울적했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꿈을 찾아 달린다는 사람은 티비에도 나오는데, 전 아직도 꿈을 찾아 달리지 못합니다.
버티는 인생만 살다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싶어 이곳에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조금씩이라도 마음으로부터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도록 애써야 하는데.
뭐가 즐거운지도 잘 모르겠는 저였습니다.
트위터의 누군가가 던지는 말들로 마무리합니다.
「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만약 계시다면 들어주세요」
「지금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 모릅니다」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모든 분들께, 전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주세요」
「그냥, 살아주세요」
「계속 살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제 부탁입니다만」
「만약 이 목소리를 듣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가 외톨이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듣고 있는 분이 존재하는 그 순간, 비록 느끼지는 못해도, 저와 당신이 연결된다는 뜻이니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태어나, 혼자서 죽습니다」
「다른 사람과 친해져도, 본질적으로는 혼자입니다」
「서로 마음이 통해도,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이란 건, 외로운 일입니다」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느냐는……중요한 일이죠」
「그것을 위해……타인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누군가와의 추억이 있나요?」
「그것은 귀중한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주세요」
「고독과 싸우는 사람의, 유일한 버팀목이니까요」
「제가 바라는 것은, 가까이 있어주는 누군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당연한 일마저 보증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요」
「여기는 군죠학원 방송부」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그럼 다음주에 보죠」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언젠가는 저도 가까이 있어주는 누군가가 되어줄,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게시판에 늘 이런 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아직 살아있습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는 합니다.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위트블랙// 그것만으로는 전 힘들더라고요... 정답은 없지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는 죽어야 하는 이유처럼 들려서요.
10%의 배터리// 반드시 쓸모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더 어렸을 때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긴 해요. 그 사실이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요.
괜찮다는 그 말씀 믿고 싶어요. 제가 가장 힘들 때 듣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고맙습니다.
미치르// 고맙습니다. 자책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
김전일// 감사합니다.
아침//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네요. 고맙습니다.
solo// 고맙습니다.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 정말 믿고 싶어요.
아침//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살아 주세요.
그렇습니다 우울함이 조금 깊어지면 죄책감이 따라오죠 마냥 다 잘못한거 같은.
다 비슷한 무게를 안고 살아갑니다.
귀찮아도 스스로 에게 질문하며 슬슬 방향을 찾아가야죠 필수조건은 아니지만요.
끝이 없다고 느끼더라도 계속 밝은 곳으로 나가려고 하면
언젠간 비슷하게라도 살 수 있고
조금 더 지나면 소망하는 대로도 살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에아렌딜님이 그 경험담에 나온 사람들과 다를 건 하나도 없답니다. 그 사람들이 먼저 지나갔을 뿐이에요.
힘내세요!!!
음~ 온전히 준비되고 이쁜 나만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실패하는 나를,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해요.
물론 그러지 못한다 해서 탓할 필요는 없구요.
그리고 용감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아도 나약하고..나아지지 않는 나도,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은거 같아요. 옮겨 주신 트위터 글들 잘 봤습니다.
티미// 고맙습니다.
칼리토// 고맙습니다. 살고 싶지는 않아도 계속 살아야겠죠...
가끔영화// 네 방향을 찾아가야겠죠... 계속 질문을 하면서...
Violet// 정말이죠? 꼭 그랬음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Ilovemyself// 실패하는 나를 사랑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못생긴 나를 사랑하는 건 가능했는데 못난 나를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제가 제대로 된 자아존중감을 갖고 있지 않아서일까요. 고맙습니다.
저는 약대신 음악으로 스스로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찾으려고 하던 음악을 검색하던중, 또 다른 음악을 알게되었고, 그 음악이 어느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걸 알게 되었고, 그 음악이 들어간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그영화를 보고 제 나름 진지한 영화평을 하고 싶었지만, 님 때문에 아무래도 그글은 올리지 못할것 같습니다, 여 주인공이 님과 비슷한 상태를 보이기 때문이죠,
제 맘대로 만들어보자면 버지니아울프 증후군 같은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스스로 의사가되어 자신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보세요,
오늘도 반가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