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 이야기 (스포있음)
(사실 스포일러랄 것도 없는 영화입니다만..)
극장 개봉했을때 놓쳤다가,
애정으로 1,2편 복습하고 볼까 싶어서 미루고 있다가
바쁘고 귀찮아져서 그냥 3편 비포 미드나잇 바로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시리즈는 원래 줄거리는 없고,
주고받는 대화와
대화속에 비춰지는 미묘한 감정 줄다리기와 농담따먹기가 주인 영화죠.
이번에는 아이를 키우고 경제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절정기에 접어드는 남녀부부의 관계를 다루고 있어요.
대화의 주 내용들도 한국인인 제 정서에도 와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갈등의 가장 큰 요소는
제시(에단 호크)가 전처의 아들인 헨리를 위해서
미국에 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라고 살짝 운을 띄운 후
영화 후반부에 벌어지는
제시의 의도를 알고 빡친 샐린느(줄리 델피)와의 부부싸움입니다.
남녀가 싸우는 디테일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웃겼어요.
호텔 방에서 뛰어나갔다고 바로 다시 들어와서 화내고
계속되는 뒤끝작렬과 지나간 일 들춰내기와 관심법 시전 등....
저는 남자라 그런지 제시한테 폭풍 감정이입 했죠.
최대한 잘 해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데
감정적으로 한번 어긋난 상대를 달래는 것이 불가능한 시추에이션.
하이라이트 부부싸움 장면에서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건 좀 우습지만
남자인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상황에서 제시(에단 호크)는 아주 대처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이건 제가 남자라서 그런거겠죠? ㅠㅠ
남자라서 억울함.
여자분들은 반대입장인가도 궁금해요.
(사실 이 궁금증 때문에 글 썼습니다)
굉장한 연기력을 요구할 것 같은 롱테이크 대화장면도 많았는데
이 두 배우는 세번째 합을 맞춰서 그런지, 역할들을 타고 난건지
정말 자연스럽더군요.
그리스의 풍경도 아름답게 잘 담아내서 보는 내내 시원했어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던 여리여리한 에던 호크가
중년의 아저씨가 되다니 저도 꽤 오래 살았나봐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 만들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비슷한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비포 선라이즈처럼 1편이 터지지 못해서
못한 걸 수도 있겠군요
맞아요 싸우는 부분이 백미였어요.
마지막에 화나서 혼자 앉아있는 셀린느에게 제시가 기분 풀어주려 접근하는 장면 보면 정말 대단하죠.
40대 부부에게도 20대 못지않은 로맨틱한 순간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제가 행운으로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포 시리즈 3편을
개봉한 바로 그때 그때에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며 목격했다는 것이랍니다.
한마디로 그 둘은 남같지가 않아요.
4편도 기대합니다. 노년의 제시와 셀린느.
이 영화를 본 지 일 년쯤 된 지금은 두 사람이 주고 받던 그 무수한 말들, 그 말들에 실려 나왔던 각자의 섭섭함과 분노 같은 것들은 기억도 안 나고 아무도 없는 구불구불한 길을 단둘이서 한없이 걸으며 얘기하던 모습만 떠오릅니다. 영화를 본 후, 사랑이 끝난 후, 남는 기억들은 언제나 정지된 사진, 혹은 말없이 흘러가는 느린 화면 같아요.
아름다운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