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작가
- 정유정
- 출판
- 은행나무
- 발매
- 201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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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블로그 개업인사 말미에 링크했던 독후감입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 경어체가 아니어서 죄송합니다. 다시 올린 건 책 좋아하시는 듀게 분들과 좀더 수다 떨 거리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에 이런 책 읽는 분들이 희귀(?)한 환경이라 양해 부탁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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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일변도의 책벌레였던 소년 시절과 달리 나이 먹어서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류에 치우친 독서를 하는 것 같다. 특히 한국 소설은 몇몇 작품 외에는 잘 읽지 않는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최근의 유명 작가 작품 몇 개를 읽어보려 했지만 초반부의 벽을 못 넘기고 덮게 되는 것이 많았다. 뭔가 신선한 설정과 매력 있는 캐릭터를 눈 앞에 들이밀고는 있는데, 잘 몰입이 되지 않더라.
왜일까. 정말 소설이란 소설은 아무리 지루하건 쓰레기건 재미있게 읽던 소년 시절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었기 때문에 관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은 여유시간을 투자할 경쟁자가 많다. 웹서핑하면 짧은 시간에 좋은 기사, 눈을 사로잡는 동영상과 사진을 볼 수 있다. IPTV만 틀어도 놓친 좋은 영화들이 많다. 좋아하던 미드도 점점 우선순위가 밀리는 판이다. 짧은 시간 내에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는 소설을 인내심을 갖고 몰입될 때까지 기다릴 관대함이 내겐 남아있지 않다.
나름 유명 작가 작품 몇 권을 펼쳤다 덮었다. 그 중에는 정유정의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도 있었다. 그러다가 '28'을 펼쳤다. 이 책은 좀 달랐다. 일단 도입부 알래스카 개썰매 이야기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내가 잘 모르는 낯선 세계의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디테일이 살아있게 묘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문열 류의 사변적 독백도 탐독하던 소년 시절과 달리 이제는 방구석에 앉아 협소하고 익숙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책은 바로 덮게 된다. 수십만 부씩 팔려대는 자기계발, 힐링 류 서적을 펼쳤다가 몸서리를 치고 바로 덮는 이유다. 하나마나한 소리의 나열 같다. 나이 든 나는 미지의 것, 구체적인 것에 끌린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정보'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나이 먹은 후에는 소설을 덜 읽고, 읽어봤자 마이클 크라이튼, 베르베르, 쥐스킨트의 '향수', 존 그리샴 등등 최소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정보'가 담긴 소설에 끌렸던 것 같다. 소설보다 차라리 당장 가지도 않을 여행 관련 책을 더 열심히 본다. 그것도 감상으로 점철된 류 말고 여행지 역사, 문화 등 정보가 많이 담긴 쪽. 정보 편향적인 독서라, 이것도 슬픈 일이다. 난 한 때 분명히 '쓸데 없는 세계'에의 몰입에 더 큰 매력을 느꼈었는데 말이다.
여하튼 '28'은 덮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던 첫 이유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디테일이 살아있게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 작가가 '발로' 글을 쓰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취재와 자료 수집이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참 성실한 작가인 것 같다. 이거야말로 한 작품을 위해 몇 년을 투자하기도 하는 전업작가의 위대함이다.
이야기 자체는 익숙한 묵시론적 재난물의 세계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부터 좀비 영화들, 한국영화 '감기', 미드 워킹 데드까지. 그런데 보통은 대충 묘사하다 멈출 선에서 좀더 나아간 디테일 때문에 익숙함을 탈피할 수 있었다. 수의사, 간호사, 119 구조대, 심지어 개의 생태까지 다 묘사가 생생하다.
이런 점에서 감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런데 중반부터 앞에 언급한 장점의 '약발'이 적응으로 인하여 약해지고 보니 다시 몰입도가 떨어지더라. 분명히 처절하고 극적인 이야기고, 입체적이고 매력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함에도 작중 인물이 처절해하는 만큼 나에게도 처절한 감정이 전이되지가 않고 냉정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왜일까.
앞에 언급한 전반부의 장점,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의 힘은 처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갈고리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독자를 몰입시키는 것은 스토리의 힘, 캐릭터와의 정서적 교감이다. 그런데 '28'은 지옥도의 생생한 묘사만 연속될 뿐이라 어느새 지친다.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물음표가 자꾸 떠오른다. 돼지 살처분의 끔찍함에 충격을 받은 작가가 죽어간 동물들의 진혼을 위해 인간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휘둘러 엄숙히 제물로 바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지옥도의 묘사는 앞에서 언급한 영화, 미드 등 다른 매체로 인하여 이미 익숙하다. 새롭지 않은 것이다. 그런 지옥도는 배경에 그치게 두고 뭔가 작가가 전달하고픈 이야기가 읽혀야 할 것 같은데, 잘 잡히지 않았다. 엄청 새로운 이야기일 필요도 없다. 심지어 '사랑만이 희망이다' 따위의 손발 오그라들게 진부한 메시지라도 좋다. 성공한 헐리웃 영화의 뛰어난 점이 진부한 메시지를 아주 약간이라도 참신하게 양념하여 전달함으로써 대중의 보편적 정서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인간의 악마성을 비관하여 살처분당한 동물들처럼 멸종당해 마땅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차라리 한발 더 나가서 냉정하게 모든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묘사했어야 한다.
'28'은 동해를 제외하고는(동해조차도 억압적 가정의 희생자) 선량한 주인공들이 그리스적인 비극 속에 처절하게 고통받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간의 운명적인 비극성에 관한 고전적인 이야기로 읽어야는데, 그러기에는 역시 재난영화에 익숙한 패턴인 무능하고 비인간적인 정부권력이 운명에 해당하는 '바이러스'보다 더 큰 비극 제공의 원천으로 점점 더 부각된다. 이는 그 고전적 비극성을 훼손하고 익숙하고 구체적인 분노만 소환한다.
요약하면 좀 더 가지치기를 해서 투박하고 우직하게 한 가지 중심 이야기를 밀어 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희망이든, 인간에 대한 냉소든, 인간의 운명적 비극성이든, 시스템에 대한 분노든 간에.
묘사도 너무 세다. 초반에 죽은 개 머리를 밟는 지독한 묘사에서부터 곳곳에 끔찍한 장면이 예의 그 뛰어나고, 구체적인 묘사력으로 그려진다. 센 양념이 범벅되면 혀가 마비된다. 밋밋한 와중에 한번 머리를 강타하는 센 묘사가 있어야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초반부터 달려대니 나중에는 그것도 심드렁해진다. 극작가 이현화의 연극 '카덴자'를 본 기억이 난다. 암전되었다가 0.5초 조명이 고문받던 여주인공을 잠깐 비추고 꺼지는데 상반신 누드다. 뭐 세세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섬광같은 누드가 강렬한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에로스, 타나토스, 비극적인 희생자의 모습, 그로테스크함 모두. 첨부터 벗고 설쳐서는 얻을 수 없는 효과다. 누드를 가장 효과적으로 쓴 연출의 예로서 오랫동안 기억난다.
그리고 캐릭터의 감정선에 잘 설득되지 않는다. 특히 윤주가 재형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무성의하게 표현하자면 대충 투닥거리다 직싸게 고생하다보니 어느새 당신 밖에 없어.. 하게 되는 갑작스런 느낌. 그 이유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재형이라는 캐릭터가 잘 몰입이 안 된다. 도입부에 쉬차를 늑대에게 던져 준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인간에 대한 폐쇄성, 반면에 개에 대한 헌신, 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잘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냥 끝까지 까칠하고 내성적인 의사선생으로만 느껴진다. 윤주처럼 와락 끌어안고 싶어지질 않는다. 좀더 독자가 재형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장치를 친절하게 배치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주인공에게 호감을 갖고 싶다.
가장 설득되는 감정선은 사람이 아닌 개의 것이다. 링고의 스타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집착, 그로 인한 복수심이 이 작품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감정들이었다.
여하튼 오랜만에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지만,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뭐 다 까탈스러운 소리고, 2년 3개월간 한 작품을 위해 노력했다는 작가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