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사고와 지휘관의 책임...
김관진 안보실장이 국방장관때 사고와 지휘책임을 분리하겠다는 지휘서신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헐...
저는 연대 작전병 출신이라 아침에 일어나면 일직사령에게 내용을 받아 상황판을 보드마카로 적고, 아침 상황보고때 꼬박꼬박 들어갔습니다. (이등병 나부랭이한테 왜 상황판을 적으라고 하고 상황보고때 상황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지만... ) 상주인원이 적은 향토사단이라 대대장들도 연대 상황보고를 다 들어왔죠.
첫번째 연대장은 인사참모 출신이라고 하던데 아침에 일직사령이 보고를 하면 늘 물어보는게 '어제 온수는 틀어줬나?', '어제 밤에 몇도까지 떨어졌나? 보일러는 잘 틀어줬나?' '내무반 좀 돌아봤나? 분위기는 어땠나?' '병사들 청결에 신경쓰고 있나?' '날이 더운데 창문열고 자다가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향은 잘 켜고 자던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군생활하던 부대는 온수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1주일에 2회 정도 목욕/샤워 하라고 온수가 추가로 더 나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대장이 겨울만 되면 목욕 시켰냐.. 추운데 보일러 잘 틀어줬냐.. 같은걸 물어보니 일직사령이 챙길 수 밖에 없고 어느 일직사령이 지휘관이 물어보는데 '어제는 목욕일이 아니라 안틀어줬습니다' 하겠습니까.. 무조건 보일러병과 행보관 불러다가 틀어주라고 갈구지..
가끔 사고가 나거나 하면 '내 자식, 내 조카라고 생각해라. 부모님들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소중한 자식들이다. 2년간 잘 보살펴서 씩씩하게 돌려보내는게 우리 일이다.' 라는 말을 하곤 하던 양반이었죠.
여름에 사고가 한건 날뻔 했는데 진짜 이유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등병이 일과 끝나고 운동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심장마비였다고 하더군요. 의무병과 일직사관, 사령이 몰려와서 CPR 하고, 사단 의무대에 전화를 하네 어쩌네 하는데 마침 퇴근을 하지 않았던 연대장이 달려와서 바로 수도통합병원에서 헬기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직접 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수통 응급실 의무장교가 이등병이 쓰러졌다고 헬기타고 날라온건 처음 이라고.. 아마 사단 의무대 통해서 병원 왔으면 넌 죽었을거라고 했다더군요.
유격훈련 대비 회의때도 '아이들 다치지 않게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하고 동계 혹한기 훈련때도 야영지 돌아다니면서 이등병들까지 방한장비들 잘 챙겼는지 확인하고, 날이 추우니 밥/국 식지 않게 하라고 해서 조리병들이 좀 고생하긴 했습니다.
그외에도 이등병의 날이니.. 병사 간담회니 해서 연대장이 직접 병사들을 접하는 이런저런 행사들을 많이 했죠.
하지만 이 연대장은 별을 달지 못했고, (2차 진급이었다는데 떨어졌으니 별은 결국 못달았을겁니다.) 새 연대장이 왔습니다. 둘이 동기라고 하더군요. 전 근무처가 교육사령부인 교육/작전통이었던 이 연대장이 오니 부대 분위기가 바뀝니다. 뭐 연대장부터가 '요즘 애들은 정신력이 부족하다'. '요즘 병사들 왜 이렇게 빠졌어?' 같은 소리를 해대니... 새 연대장에게 병사들은 그냥 '잠깐 있다 가는 부하들. 전쟁나면 소모되는 자원들' 이었던 겁니다. 새연대장이 오고 이런저런 행사들은 거의 다 줄어들었고, 온수도 정해진 날만 나오고.. 오로지 훈련과 교육에 매진하더군요. 덕분에 유격은 안 받았습니다. 유격끝다고 연대 전투력평가가 있었던지라 연대장이 직접 '가상병은 유격가지 말고 훈련준비해' 라고 찍어줘서 작전과장이랑 둘이 하루종일 일만 했지요. 다들 얼마나 부러워 하던지...(....)
군대내에서 병사간 폭행사고나면 '지휘관이 어떻게 일일히 다 챙기냐, 소/중대장도 아니고..' 라는 말이 가끔 나오는데.. 제가 겪어본 바로는 지휘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신경쓰는 시늉이라도 하느냐.. 김관진 실장처럼 '사고원인과 지휘책임은 분리해서 따질것'이라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죠. 고급장교들 보기에 우리 군의 병사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병사들은 다 '부모로부터 빌려온 소중한 자식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뭔가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P.S) 회사 윗분은 장교 출신인데 '요즘 군대 좋아졌잖아.. 그게 군대냐, 보이스카웃이지.. 우리 때는..' , '군대 너무 짧아졌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양반인데 자기 자식이 군대가니까 그말이 쏙 들어가더군요. 남자들이 예비역 되면 군대 빡세져야 한다고 소리치다가 아들 낳고 군대갈때 되면 태도가 바뀐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ㅎㅎㅎ
공감 가는 글이네요. 저는 연대장이 육사 출신이였는데 사람이 좋아서 병/간부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민간인 되고서도 한동안 이분 진급 되었는지 찾아봤으니까... 결국 진급 하셨더군요.
그 후 병장 막 달았을때 신임 연대장이 왔는데 전임 연대장이 병사들 책 보는 공간도 없냐면서 비어 있는 창고를 쓸고 닦고 (그 작업 우리가 다 했지만) 자비로 에어컨까지 사서 설치 해준 독서실이 있었는데 어느날 독서실에 갔더니 에어컨은 없고 이빨 빠진 선풍기 2대만 돌아가고 있더군요. 관리병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도 기가 찼는지 웃으면서 그 에어컨 부대 시찰하면서 독서실 왔던 연대장이 보자마자 이거 떼서 연대장실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고...(...)
전임연대장 명의로 신임연대장한테 에어컨 값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그 돈으로 병사들 회식을 합니다.
계속 발생하는 군내 가혹행위와 얼척없는 인권무시는 징집제 때문도, 우리 나라가 휴전국이기 때문도 아닌 것 같아요. 사병들을 유통기한 있는 물자 정도로 생각하는 군 고위층이 제일 문제 같더군요.
사병한테서 존경을 받는 지휘관과 그렇지 않은 지휘관이 지휘하는 부대들이 발휘하는 전투력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나 보네요.
그리고 사고중에 구타로 인한 사망등의 인사사고를 지휘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을텐데...?
지휘관에 따라 분위기가 천지차이죠 군대라는 게.
제가 복무하던 시절에는 자질구레한 소원수리 신고나 직통신고가 많아 지다 보니
제가 딱 상병 되니까 분위기는 제가 신출내기던 시절보다 좋아졌는데,
워낙 군기 강조하고 갈굼 심하고 사건사고 많기로 소문난 부대라 요즘엔 어떨런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