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문학상을 수상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현 상황에서 같은 수상소감을 했다면
http://iland.tistory.com/273
예루살렘상 수상 전문 번역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러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 편에 설 것입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벽과 알>중
— yoon-mi (@constellayoom) 2014년 5월 9일
가장 많이 알려진건 이 부분일 겁니다.
이스라엘을 비난한것 같은데, 그런것 같지 않기도 하고, 다른 차원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애매하기 때문에 반응이 갈리는것 같습니다.
@slowgoodbye 저 보면 우익/좌익 얘기만 생각나시는듯ㅎ 저는 하루키는 우파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하루키는 다들 말리고 받지 말라고 한 예루살렘상을 이스라엘 가서 받았는데 (전투하는 심정으로 간다고 했지요) 그건 전형적 우파행동이지요(계속).
— 예의 바른 악당 (@Bawerk) 2012년 9월 2일
@slowgoodbye (이어서) 이스라엘서 주는 상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대의에 공감하는 양식있는 지식인 코스프레 안하고 독고다이로 간 거죠. 그리고선 수상 기념연설에선 벽이 있고 거기 부딪히는 알이 있음 알 편에 서겠다고 했는데 이게 또 함정(계속)
— 예의 바른 악당 (@Bawerk) 2012년 9월 2일
@slowgoodbye (이어서) 어떤 네임드께서는 이걸 약자 편에 서겠단 말로만 해석해서 프로필에도 적어 놓았던데ㅋ 수상식 참석 관련 소동을 보면 팔레스타인=善/이스라엘은 惡이란 단단한 통념에 자신은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질 수 있겠더군요^(계속)
— 예의 바른 악당 (@Bawerk) 2012년 9월 2일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는 하루키가 이스라엘의 한 시상식에서 한 말로, 정말 좋아하는 말이었다. 저 말을 가슴에 담고 살리라 했다.
— Nature Kim (@naturekim) 2012년 5월 13일
무라카미 하루키는 꼭 저렇게 애매하게 말하더라. 이스라엘에서 이도저도 아닌 수상소감 생각남. 난 오에 오빠 스톼일~
— 흰뺨검둥오리 (@amaite_) 2012년 9월 28일
http://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d.hatena.ne.jp/mojimoji/20100825/p1
일본 얼터?라는 잡지에 무라카미 하루키 이스라엘 수상연설에 대한 비판 글이 있는데
…첫째, 연설이 "벽과 달걀"이라는 메타포를 매개로 한 상대화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을 면죄하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가자 학살 직후 이스라엘의 S페레스 대통령이 입회한 가운데 상금(만달러)를 받는 것은 무라카미의 의도를 넘어 가자 학살의 용인이란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p.34)
http://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palestine-heiwa.org/note2/200905281501.htm#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탠스는 결국 상대 주의에 빠져 결국"둘 다 똑같이"논란에
환원되고 비판력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문학(사람)의 역할로서 자처하는 부분의 "가장 약한 자
편에 선다"이라는 입장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 아닌가.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상 당시에 가자 침공이 있었고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한것 같은데,
수상과 연설을 이 시기에 했다면 반응이 어땠을라나요.
아무튼 반응이 갈리기 쉬운 수상과 연설입니다.
http://jptrans.naver.net/webtrans.php/korean/watashinim.exblog.jp/9358776/
-놀랍게도, 무라카미에게는 "여기에 오는 것을 결심" 할 때
팔레스타인인에게 자신의 수상이 어떻게 비치느냐는 점을 고려한 흔적이 없다
무라카미는 자신의 연설을 "정치적 메시지"가 없음을 거듭 말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만행을 세계적인 작가가 거절 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메시지"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무라카미가 거기서, 예를 들면,"상금의 1만달러는 전액 하마스에 기부한다"라고 표명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무라카미가 시상식 참석에 대해 일본에서의 수상 거부에 대한 요구에 대항해서(논리적으로 그렇게 된다)정당화하고 있는 것, 팔레스타인에서 어떻게 비치냐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수상 소감 전문을 다 읽고나도 반응이 갈리기 쉬울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하루키의 그 수많은 글 중에서, 의미하는 바가 명확한 몇 안되는 글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야, 이 이스라엘 ㄱㅅㄲ들아, 너희들이 죽일 놈들이다!'라고 하고 올 수는 없잖아요, 저토록 유려한 문장을 쓸 수 있는 글쟁이인데!
실제로 반응은 갈렸는데요. 제가 링크한 사람들이 알 부분만 읽고 한 이야기는 아니죠.
아니요,
(이스라엘 대통령이 하루키와 함께 찍힌 사진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개연성 있지만 하루키의 의지와는 거의 상관없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부분만 읽고 쿨내를 풍기던가 아님 전문을 다 읽고도 난독에 시달리거나 한 것 같아요.
"수상식 참석 관련 소동을 보면 팔레스타인=善/이스라엘은 惡이란 단단한 통념에 자신은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질 수 있겠더군요^"
이런 문장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죠?
저도 요즘 하루키를 칭하며 꼰대가 되어 버렸다고 툴툴대긴 합니다만, 이거 참...
전문을 봐도 마찬가지인데요. 직설적이지 않았고 여지를 뒀죠.
일본 논평? 잡지에서도 "첫째, 연설이 "벽과 달걀"이라는 메타포를 매개로 한 상대화의 논리에 따라 이스라엘을 면죄하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구요.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생각이 있겠지만 일본 비평가들이 비판하는걸 보면 전문적인 입장에서도 갈리는 문제입니다.
제가 올린 해석이 맞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요.
일단 연설문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하루키 문학처럼 상징이나 모호함의 여지는 거의 없는 단정투의 문장들 뿐이에요. 달걀은 개인이고, 벽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에 저항하라, 인데 어떤 해석의 여지가 더 있겠어요. 그리고 일본의 평론가들이나 문단은 여전히 하루키를 평가 절하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 문단 내에서 주류로 취급받는 문학상들을 이제껏 거의 받지 못했죠. 연설문에 대한 기자들의 비판적인 코멘트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이라고 보시는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무슨 시스템에 저항하라고 한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시스템에게만 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이스라엘 너네 정신 차려라"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마스가 벽처럼 군다면 알에도 서겠다는 이야기죠.
결과적으로 가자 침공이 있던 시기에 이스라엘 대통령이 입회한 문학상을 받는다는 건 어느 쪽 편에게 힘을 실어주는걸까요?
하루키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특별한 사전 지식이 없는 입장에서 보면, 이 수상 소감은 사인 곡선 같은 느낌입니다. + - + - + - 왔다갔다 하면서 총합은 0이 되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기 위해서 세심하게 쓴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 뭔가 말을 하려는것 같긴 한데 결과적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 기분입니다.
좋은 느낌으로 끝난 거 같은데, 무슨 말을 한 거지? 소설이라면 모호함이 단점이 되지는 않지만요.
닥터슬럼프님도 그렇고, 저 연설을 굉장히 뚜렷한 내용으로 보기도 하는데(그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애매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인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연설문의 요지는 알겠네요. 문제는 달걀이 모조리 깨져서 더이상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는 점 아닐까요?
그렇네요.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것 같은데 침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