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에서

카린이 혼자 커피와 차를 파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걸 본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빵을 사러 빵집으러 향해 걸어갔다. 


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내가 누린 첫 생활의 사치는 보통 가게에서 사는 커피보다 더 비싼, 커피와 차 전문 가게에서 즉석에서 갈아주는 커피를 사는 거였다. 나혼자 마시는 커피이니, 한달에 약 750 g 정도 마시는 거 같은데, 확실히 맛이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진하게 볶은 커피콩을 (커피 볶는 것으 다 달라요) 프레스에 맞게 갈아 살 수 있는 가게. 모두 내 커피를 마시면 어 이 커피 뭐야? 굉장히 맛있네? 라고 말하곤 했다. 커피랑 차 뿐만 아니라 초컬렛, 쨈, 고급 과자, 코코아 등등, 내가 대체로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선물로 사가는 대부분의 물품이 여기에 있으니, 이 작은 '차잎' 가게는 적어도 12년 동안 한달에 두번을 꼭 다녀가는 곳이다. 카린은 내 생각엔 이곳의 주인 중 한명. 

생각해 보면 참 긴 시간동안 일상의 기쁨들이 이 가게와 연관되어 있다. 이 가게에서 거북이가 몇안된 내 생일 선물을 카린의 도움으로 사왔고, 선물이 임신한 동안 초콜렛도 얻어 먹었고, 태어나고 한달된 뒤 시내에 갔을 때 축하 선물로 커피도 받았다. 마데를 위로하기 위해 산 커피, 내 머리의 주인(?) 카로 생일 때 제일 좋아하는 초컬렛도 여기서 샀다. 오랫동안 알아왔지만, 미용실 처럼 수다를 떠는 곳이 아니니, 손님으로서 나의 취향이나 습관 같은 건 알아도 서로의 사생활은 잘 모른다. 사실 카린의 이름을 안것도 얼마되지 않았다. 내가 어느날 이제 우리 얼굴 안지도 10년이 되었는 데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해 그때서야 통성명을 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카린을 보는 일이 참 드물었다. 가게를 그만 두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안본적이 없어 가끔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몇달 전에 봤을 때 바글 거리는 다른 손님들 사이로, 어떻게 지내냐는 그녀의 질문에 완전 끔찍하게 힘들어요 라고 질문을 그냥 인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짜 답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나의 눈을 바라보면서 정말? 나도 그렇게 끔찍한 그 기분 알아, 그런데 지나가, 더 나아져 내가 알아 라고 답해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나눌 수 있던 최대의 대화였다. 그리고 나서 또 몇달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그녀를 만났을 때는 여름 휴가가 시작된 뒤, 요즘에는 어떠냐는 그녀의 질문에 내가 여전히 끔찍하다고 하자, 나아지지 않았냐고 물어왔다. 나 외에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사실 지금 이혼하고 있는 중인데 이놈의 이혼이 1년은 걸린다고 했더니, 거북이가 나한테 선하게 대하냐고 물어왔다. 내가 막 웃으면서 아니 라고 답하자 내 손을 잡고 나도 끔찍한 일년을 보냈어, 그런데 지나가더라 그런 일년도, 나아지더라고 라도 물기담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해주었다. 손님이 들어와 더 이상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무언가 할일이 있어 다시 시내에 갔을 때 카린이 혼자 일하는 게 보여서 그녀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지고 가게로 들어갔다. 내 앞에 있던 손님을 보내고 나선 어제 커피 500 g 에 러시아차도 사갔는 데 뭐가 필요한 걸까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면 나를 보는 그녀에게, 오늘은 뭐 안살거에요, 이거 줄려고 왔지, 라고 말하며 빵을 내밀었다. 나한테 줄려고? 라고 말하면서 빵봉지를 열어보던 카린은, 어머 이거 내가 좋아하는 빵이야! 라고 말한다. 내가 웃으면서 응 나 알아, 지난 번에 이 빵 가게 빵이 너무 좋다고 말했잖아, 라고 답했고, 맞아 너는 이런 거 참 잘 기억해 라고 카린이 웃는다. 그 전날 큰아이가 엄마 따라 가게온 게 기억나서 두개 샀다고 하자, 오늘은 혼자인데 오후에 자기랑 교대할려고 오는 직원이 19살 여자아이 라면서 그 애한테 남겨주겠단다. 그러더니 우리 둘만 있는 시간을 이용, 그녀가 지난 일년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자기도 이혼을 하고 싶었다고, 우리 좀 떨어져 있어보자 했는데 남편이 싫어했다고 그러더니 당신을 사랑해서라는 메모만 남기고 남편이 같이 살던 집에서 자살을 했단다.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순간 난 그 남편이란 인간한테 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붉어졌다. 사랑은 무슨! 이런 악독한 인간아, 카린한테 그런 상처를 주다니, 아이들은 또!). 그래서 지난 일년간 아이들과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정말 힘든 건 말이지, 지난 날 행복했던 그 날들이 다 잊혀지는 것 뿐만 아니라, 정말 그때 난 행복했던 건지, 그런 날들이 정말 있었던 건지, 그 날들이 거짓이었는 지 그런 생각이 들어'라고 내가 눈물 한줄 흘리며 말하자, 눈물 그렁 그렁한 얼굴로 다시 내 손을 잡으면서, '내가 단연코 말하겠는데, 그런 날들이 있었지, 그러니까 네가 떠나야 했던 그 순간보다도 더 길게 남아 있었던 거야. 그 날들은 정말 있었어' 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있잖아, 나한테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제일 아름다운 선물들 난 이미 받았거든, 내 아이들. 오늘 아침에 우리 둘째가 자전거 타고 가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엄마 사랑해 라고 말하더라고. 거북이가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거, 너도 받았잖아. 그러니까 용서해' 라고 덧붙였다. 가판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아 배고픈데 너 가면 차 만들고 이 빵 먹어야지, 너무 좋다 네가 나를 생각해 주다니'라고 말하는 그녀에서 어린 아이처럼 빠이빠이 하고 돌아왔다. 



사족 : 그런데 요즘 거북이한테 화도 많이 나고 지쳐서 용서가 힘듭니다. 선물이 보면서 카린의 말을 생각하면서 노력합니다. 저희 마지막 서류 보냈습니다. 이제 정말 이혼이에요. 이혼이 힘든 건 상대방의 끔찍한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끔찍한 모습도 봐야 하니까 그런거 같아요. 

    • 제가 카린도 아닌데... 카린이 선물 받은 빵을, 같이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고통스러워하시는 커피공룡님께 위로를 드리기는커녕, 도리어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 힘내세요, 커피공룡님!

      • 사실 저 오늘 친구한테 울고 자기 연민 마구 보여주고, 짜증내고 그랬어요. 어쩐지 제 글의 저는 저보다 더 어른스러워서, 가끔 부끄럽습니다. 



    • 10년이 지나서야 통성명을 하셨군요. 당신을 사랑해서. 한글로는 영 이상해요. 영어였다면 becuz i love you 일까요?

      안다고 다 용서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애초에 힘들 사람 한 명도 없었을 거에요. 용서는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라고, 그리고 된 후라도 얼마든 다시 리셋될 수 있다고, 저는 제 삶에서 배웠어요.

      커피와 차, 빵과 초콜릿 모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포근해집니다. 카린말을 저도 믿어요. 나아질 거에요.
    • 가슴아픈 이야기인데 울림이 있네요.커피공룡님의 글은 담담하게 쓰신 듯한데 쉽게 읽어넘길 수가 없어요.가까이 계시면 뭐라도 해드릴 수 있을텐데..힘드신 와중에도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분이시니 충분히 이겨내실 겁니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용서하려고 애쓰지 마세요.지금은 어렵잖아요.어떤 사람 때문에 괴롭다면 용서보다는 우선 마음에서 내보내도록 해보세요.내가 먼저 치유되어야 용서도 되는 거니까요.

    •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오래 알고 지내는 관계엔 밀착의 오물들이 없어서 오히려 더없이 위로를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날 판단한 그의 비난 같은 충고가 아닌 순수한 위로가, 역시 그를 재단하지 않고 던지는 내 마음의 설명뒤에 따라오기에 그럴테죠....저도 비슷한 울림과 상황을 가끔 만납니다.


      구름사이로 잠시 비추던 햇빛 같은 순간이 어지럽게 지금을 건드릴 때 그걸 뭐라고 불러야할지 몰라 스스로 당황하게 되는 기분, 그리고 분명 반짝이던 순간임이 뚜렷한데도 그걸 의심하게 되는 당혹감 그 자체가 서글프지요. 그래도 언젠간 마음의 필터가 제 기능을 회복해 그 불순물이 사라지고 온전한 시절을 지닐 수 있게 된답니다. 이토록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실 수 있는 내면을 지닌 카페님 자신을 더 굳게 믿으시면 좋겠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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