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잘봤습니다(스포 있음)

메가박스 코엑스 9관에서 봤는데요, 상영관 입구쪽에서 나오는 빛이 스크린에 비춰져서 신경쓰였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희미한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비춰지는 게 눈에 거슬리더군요. 영화가 끝나면 반드시 항의하고 말리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몰입해서 보느라 그런게 있었는지도 잊어버렸어요. 아마도 영화 시작 초반에 입구 문을 잠깐 열어 놨던 것 같아요. 좌석은 G열이었는데, 살짝 올려다보는 자리였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마스킹도 잘 해주었고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없었어요. 강동원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전부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오는 밀항자 이야기라니 별 볼거리가 있겠어?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체 토막내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짙은 해무 속에서의 긴장감도 좋았습니다.

한예리는 정말 예쁘게 나옵니다. 하얗게 빛나는 느낌이라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청순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남자들의 판타지가 투영된 캐릭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마 인간적인 청년 동식이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어떤 것'을 형상화한 모습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초반에 키스하는 장면의 경우, 아름답기는 했지만, 동식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이 너무 강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홍매 캐릭터에 대해 한예리 본인은 "살아 있는 피붙이가 오빠밖에 없기에 순수하게 보러가야겠다 결심할 수 있었을 거고, 그래서 계산 없이 동식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죠."라고 했네요.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023936

박유천의 모습은 재미있었어요. '저렇게 꾸며 놓으니까 천하의 JYJ도 어쩔 수 없는 시골 총각이구나. 그래도 해양고를 나와서 그런지 제법 번듯하게 보이기는 한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 번듯한 느낌이 동식의 행동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인물은 위 두 사람, 동식과 홍매 뿐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장과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갑판장, 자기 성욕만 채우려는 두 선원이 그렇죠. 아마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묘사된 것 같아요. 실제 악당은 대부분 지루하고 단순하다는 듀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배와 선장이 나오는 이야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량 생각이 나면서 이순신과 강선장을 비교하게 되더군요. 한 사람은 거의 혼자서 나라를 구해 낸 초인적인 인물이고, 다른 사람은 빚을 갚으려다가 수십명을 죽이고 자신도 파멸시킨 인간이죠. 억지로 말을 만들자면, '이순신을 모시는 안위가 되길 바라지만, 현실은 강선장 밑에서 홍매를 노리는 창욱' 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해석하기 보다는, 그저 '모두가 아무 생각없이 욕망만 있을 때 어떻게 되는가' 정도로 생각하고 싶네요.

결론적으로, 제게는 기대 이상의 영화였고 몰입해서 잘 봤습니다. 한예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p.s.
선장이 시체를 토막낼 것을 지시하는 부분은 충격적이었지만 좀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잔인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아무 고민도 없이 시체를 갈고리로 막 찍을 수 있나요? 더구나 밀항 일은 처음 해보는 거라던데. 사실 그런 지시만 하지 않았어도 이후의 그 난리는 없었을 것 같거든요.
    • 선장이 시체를 토막내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저에겐 의외로 충격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는데요 왜냐면 선장이 상륙했을 때 (좀 일찍 돌아온 탓에)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그 때 화를 내거나 뭔가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들을 경멸한다는 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뭔가 이상하다 뒤틀렸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해양공무원이 배 위에 올라와서 어창을 열어보려고 했던 장면 있잖아요 그러니까 갈고리를 들고 찍을 것 같은 모션을 취한 경우도 있었죠 한번 돌아버리면 갈데까지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선장이 온갖 극단적인 행동을 해도 납득이 되더군요  

      • 음, 그러네요. 말씀하신 대로 뭔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게 미리 보여졌었네요. 참고로 저는, 그 불륜 장면은 자주 겪은 일이라 무감각해져서 그냥 넘어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 선장의 전진호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잖아요.

      시체따위 때문에 전진호를 잃을순 없었겠죠.

      이상하게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 밀항만으로도 큰일인데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 버렸으니 돌이킬수 없고, 


      이미 자신의 인생, 선원들의 미래 그리고 배가 날아가는게 확정되었죠.


      더이상 나빠질수 없는 상황이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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