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자주가는곳 리뷰...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느낌이지만 그냥 써 보려고 해요. 원래는 길거리 리뷰였는데 아무리 봐도 길거리는 아닌 거 같아서. 사실 길거리를 걷는 걸 좋아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어딘가에 가면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지 길거리를 걷거나 하진 않죠. 늘 모험을 떠나고 싶지만 결국은 최근 그나마 안 가본 곳을 가서 시간을 때우게 그나마 모험이죠.


 1.고속터미널-고속터미널이래봐야 센트럴시티에서 왔다갔다 하죠. 2000년대 초반엔 정말 자주 갔어요. 학교를 들어간 뒤에도 땡땡이 칠때 가끔 왔어요. 거의 처음으로 접한 복합문화공간이었죠. 어렸을 때 그곳을 걸으며 이곳의 화려함에 기죽지 않는 날이 올까 했는데 그날이 오긴 오더군요. 갈 때마다 다른 가게가 들어서는 등 종종 바뀌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빴던 것 좋았던 경험이 있는 곳이죠. 한때는 여기서만 영화를 봤었는데 워낙 좋은 멀티플렉스들이 많이 나와서 이젠 어지간한 우연이 겹치지 않는 이상 영화를 볼 곳은 아니죠. 백화점은 상당히 좋지만 식당가는 딱히. 저는 이곳 호경전은 호경전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호갱전이라고 부르죠. 신사면옥은 간신히 평균을 넘는 수준의 냉면집이고 사보텐은 뭐 딱히 지점을 타지 않는 프랜차이즈라서. 심지어는 돈까스집도 1층에 있는 돈까스집이 더 맛있어요. 호텔은 매리어트인데...호텔뷔페는 너무 간소화되어 있고 스테이크집은 정말 한 끼를 무난한 스테이크로 때우고 싶을 때 가는 곳이고 익스체인지 바도 너무 무난. 문제는 무난한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면 식당가에 하나 있죠.


 2.광화문-진짜로 길거리를 걷는다는 느낌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 같아요. 명동, 청계천, 광화문 앞, 경복궁, 시청역, 을지로입구 모두에 한번씩 가볼만한 곳이 있어서 어쨌든 진짜 공기와 바람을 쐬며 걸어야 하고 느낌도 괜찮아요. 일단은 버스를 타고 늘 명동신세계 앞에서 멈추는데 명동신세계에 가서 한바퀴 둘러본 후 거기서 밥을 먹고 다시 어딘가로 걷죠. 보통은 조선호텔 쪽으로 걸어서 롯데호텔을 나와 을지로입구 쪽으로 가던가 명동 쪽으로 걷거나 아니면 청계천으로 가거나 아니면 늘 사람들이 뭔가를 주장하고 있는 광화문 앞에 가거나 고즈넉한 경복궁으로 가죠. 대림미술관에서 무슨 전시를 하나 가보는 재미도 있고요. 교보문고를 가보는 거도 재밌습니다. 이 라인들은 의외로 숨은 지름길이 많아서 예전엔 엄청 걸어야 했던 거리를 뒷길을 알아내 슥슥 빨리 가거나 하는 재미도 붙었어요. 그곳에서는,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 기분도 나고 그러죠. 가장 좋아하는 중국집인 호경전도 있고, 살롱드떼에 가서 애프터눈 티로 식사를 때우기도 하고 여러 선택권이 있는 곳이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면 우울해져서 싫어요. 하지만 그곳에는 늘 활기가 있어서 좋아요. 을지로입구에는 한국에 놀러온 외국인들의 활기, 광화문거리 앞에는 전투적인 사람들이 있고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어떤 활기와 열정이 있죠. 도열해있는 경찰이나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의 군기잡힌 모습을 보고도 나름대로의 활기를 얻을 수 있어요. 교보문고 건너길은 직장인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사람들에게서도 그사람들만의 활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경복궁 쪽으로 가면 조용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곳에서 걷는 커플이나 나이든 분들을 보고 그들의 인생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해요.


 휴


 최근에 다시 만난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 집이 경복궁 근처더군요. 밤에 광화문 거리를 지나가는데 거의 처음으로 어두운 광화문거리를 본 거라서 신기했어요. 새벽에 나가서 걸어다녀 보고 싶었어요. 하긴 기운차게 걷자고 나가봐야 한 20분 걷다가 어딘가 틀어박히긴 하겠지만...


 3.용산 아이파크몰-영화를 주로 보러 가는 곳이지만 그냥 갈 때도 있어요. 흔치 않은 식당으로 우노도 있고 밀피유도 있고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쇼핑몰을 걷는 거도 재밌어요. 이쯤 되면 눈치채시겠지만 늘 큼직한 랜드마크가 있는 곳을 가죠. 걷는 게 질렸을 때 재빨리 틀어박힐 곳이 늘 있는 곳 말이죠. 어쨌든 전자랜드에도 가볼 수 있고 구경할 건 많은 곳. 악기를 파는 곳에 가서 피아노를 살짝 두드려보는 재미도 있죠.


 4.건대입구앞-만만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죠. 시간이 지금보다도 더 많았던 어느날 4212를 타고 계속 가면 무엇이 나올지 궁금해서 가보다가 내린 곳이에요. 이제는 그래도 제법 할일이 생겼으니 앞으로는 안 갈 거 같아요. 그런데 이곳에는 딱하나...백화점 건물과 옆 건물 사이에 서있으면 센 바람을 느낄 수 있더군요. 그 바람의 느낌이 신기했어요.


 5.신도림 디큐브시티-절대로 신도림에서 뭘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었던 적이 있었죠. 어느날 운동할 곳을 찾기 위해 서울 전체를 쏘다녀봤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상 접근 가능한 거리와 허용 가능한 청결함이 보장되는 곳이라고는 신도림에 있는 피트니스와 고속터미널에 있는 피트니스였어요. 피트니스를 가자고 1시간 걸리는 강북까지 갈 순 없으니까요. 고속터미널이 더 가깝지만 문제는 아침에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건 끔찍한 일이라서요. 그래서 신도림으로 잡았는데 뭐...나쁘진 않은듯. 그래서 현재로서는 신도림이 가장 자주 가는 곳이 되어버렸어요. 출근도장을 매일 찍으니 목적성도 생기고 좋긴 한데 디큐브시티가 그리 재미는 없는 곳이라 아주 좋진 않군요. 음식점은 제법 다양하고 질도 좋지만 유감스럽게도 맛있는 건 식당가가 아닌 푸드코트에 많이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중국집이 정말 별로예요. 중국집만 좋았어도...그런데 신도림은 운동하러 가는 곳인데 맛집 얘기를 하고있군요.


 6.영등포 타임스퀘어-여기서 추리력을 가진 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걷는 걸 좋아한다면서, 그리고 광화문으로 가면 제법 먼 거리를 걸으면서 왜 이 두개를 분리하는가? 하고요. 한데 디큐브시티와 타임스퀘어 사이에 공장들이 있거든요. 그 공장들에선 분진이나 나쁜 것들이 날릴 테고 그런 곳을 걷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상 제겐 디큐브시티와 타임스퀘어는 완전히 분리된 다른 곳이예요. 어쨌든 타임스퀘어에는 신세계 백화점도 있고 양적으로도 한국 최고급의 사이즈를 가지고 있죠. 음식점도 다른 어떤 곳보다 훨씬 다양하고, 같은 프랜차이즈가 무려 세개씩이나 겹친 곳도 있어서 같은 식당이라도 더 괜찮은 곳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요. 구색을 갖춘 서점도 있고 이마트를 빙빙 돌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 옥상과 약간 바깥쪽으로 빠진 곳에는 상당히 괜찮은 산책로가 있어요. 이 큰 도시에서 원래라면 기대할 수 없을 적적한 공간이죠. 한데 참 이상하게도 이곳은 밖은 시골 같은데 타임스퀘어만 삐까번쩍해서 참 요상해요.


 7.신촌역-사실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 기분이 더 다운되더군요. 하긴 대학생이 대부분이니 그렇겠죠. 신촌에 가면 가끔은 길거리에서'이봐! 나쁜 일들이 일어날 거야! 나쁜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하고 외치고 싶지만...그건 너무 친절한 거 같으니 그만두려고요. 아니...불친절한 건가요? 모르겠네요. 신촌에는 롯데백화점이 있는데 명절 전에 거기도 가봐야겠죠. 사실 명절 전엔 사람이 많이 몰리는 백화점 지하에 거의 매일 가요. 명절용으로 포장된 과일 세트나 한복을 입은 직원들, 들뜬 사람들을 보며 활기를 느껴 보죠. 명절 직전의 백화점 지하상가의 느낌은 그때 그순간 빼고는 1년 내내 느껴볼 일이 없어요. 그래서 위에 쓴 각 랜드마크를 순서대로 돌아 보죠. 명절 직전에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기분을 가장 낫게 하는 일 중 하나예요.


 8.압구정로데오-이곳은 꽤나 좋아요. 이제는 몰락한 거리를 걸으며 조금은 과거의 영광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구석구석 돌아보죠. 하지만 처음 보는 추리닝 입고 들어오는 사람을 어서오라고 반기는 회원제 비지니스바 실장을 보면 영광따위는 남아있지 않은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다른 곳보다 훨씬 공들인 인테리어에 고객은 없는 가게들을 보며 걸어다니는 호젓한 느낌이 좋긴 한데...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안좋겠죠. 어쨌든 이곳에는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아마도) 교촌치킨집이 있어요. 콜라는 폭리지만요.


 여담을 좀 해보자면, 예전에 이곳에는 서울 3대 성지라고 불렸던 조이플라자란 오락실이 있었어요. 오락실 서울 3대 성지 중 두곳이 이미 망한 상태이지만...가끔 그때가 그립긴 해요. 금요일마다 서울의 내노라하는 강자들이 오락실에 모여 배틀을 벌였는데 그것을 '금압구'라고 불렀죠. 하지만 롤러스케이트장이 다시 열릴 일이 없는 것처럼 다시 그런 오락실이 열릴 일은 없겠죠.


 9.삼성역 코엑스-예전엔 가끔 갔어요. 요즘은 공사때문에 안가지만...솔직이 코엑스는 그리 낙후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왜 이 시점에 대규모 리모델링을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요즘은 삼성역에 가면 현대백화점, 인터콘티넨탈 호텔만 가는데...밥먹고 차마시자고 가기에 삼성역은 좀 멀고 귀찮아요. 그래도 현대백화점 로즈힐은 맛있어요. 냉면은 가끔 실패하지만 맛있는 편이고 불고기전골 밥, 된장찌개를 먹으면 좋아요. 현대백화점 자체도 옷을 사러 간다고 하면 굉장히 선택권이 많기도 하고요. 여기도 이번 명절 전에 한번 가서 활기를 얻어와야 할 곳이죠. 불고기도 먹고.


 그나저나 여기도 옛날 얘기를 해보자면 한국 최고의 피자가게였던 스바로가 사라졌어요! 어렸을 때 스바로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언젠가 마음껏 이곳에서 피자를 먹겠다고 다짐했거든요. 이젠 스바로 피자를 사먹을 돈을 있는데 스바로가 없군요. 슬픈 일이예요. 스바로피자가 맛있었던 건 그냥 느낌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정말 맛있었어요.


 10.제2롯데월드-아직 열리진 않았지만...열린다면 규모 면에서 타임스퀘어를 분명하게 뛰어넘을 곳이겠죠. 굳이 쓰는 이유는 이번 추석 장사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봐서예요. 만약 그렇다면 그 엄청난 교통을 뚫고 한번 가봐야겠죠.




    • 신촌에는 롯백이 아니라 현백이 있어요 이름만 백화점이고 동네마트 같은 분위기인. 이 글 보니 경복궁이랑 타임 스퀘어 가 본 지 오래다 싶어서 조만간 산책 가 볼까 싶어지네요.
    • 영등포 타임스퀘어 밖은 시골같다기보단 글쎄.. 역 주변이고 부도심인데 묘하게 세월을 비껴간(?) 느낌이 있어요.

      예전엔 집창촌이 있어 주위 돌아다니기가 꺼려졌었는데, 얼마전에 가보니 역 뒷쪽으로는 조선족들 대상 가게가 많이 생겨났더군요.
    • 서울에 사시는 20대이신 것 같은데 재미있게 글을 쓰시네요 ㅎㅎ 부럽기도 하고 40가까운 평생 거의 지방 살아서 본문의 "아시죠?"하는 것들 하나도 몰라요 ㅜ ㅜ

      제 2 롯데는 개장하고 좀 있다가 가세요. 차라리 개장 직후가 나으려나요. 가지마시라고하고싶지만.. 뭐 다 운이긴 하지요.
    • 디큐브 지하 1층에도 푸드코트가 있을 때는 괜찮은 중국집이 있었는데 아쉽게 됐지요.


      신도림과 영등포 사이. 문래 지역은 주로 철물 다루는 공장지대 기는 한데 기묘하게도 독특한 카페 같은 게 틈틈이 박혀있습니다.


      근처 공장 직원들의 대화를 우연히 주워들었는데 홍대쪽에 있던 가게들이 세가 낮은 문래로 옮겨오는 모양이라 하더군요.

      • 한참 옮기려는 붐이 불때쯤 문래동 건물주들이 담합해서 세를 올려 훅 주저앉았죠. 동네를 좀 키우고 올리던가 했어야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고 흐지부지된 사례..
    • 랜드마크 느낌의 장소들 자주 다니시네요.

    • 서울의 명소들 부러워할 거 하나 없어요.

      체인점이나 백화점은 지방에도 다 있고

      다 거기서 거기예요.

      공기가 나뻐서 절대로 살고 싶지 않은 도시.

      그나마 광화문라인과 미술관이 부럽지만 차량 통행이 많아서 배기가스 들이마시며 하루종일 걸어봤자 보람스럽진 않네요.

      어디나 사람이 너무 많고 지저분한 거리에 뭘 하나 먹어도 지겹도록 기다려야하고 비싸요.

      빈부의 격차도 너무 심하고.

      물론 장단이 있겠지만 지방 사시는분들 서울 부러워하지말라고 꼰대질 했네요.


      한때 시청앞에서 데모 열심히 했는데,

      군것질을 하면서 원숭이 구경하듯 흥미로워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는데,

      바로 그 객관적인 입장을 잘 기술하신듯.

      전투적인 시위대와 제복을 잘 입은 경찰들에게 활기를 느껴 좋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 웃지요.


      글이 좀 히스테릭해졌는데

      여하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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