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세지의 <침묵>/체키 고리

어제부터 생각나서 찾아 보니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마틴 스콜세지가 드디어 영화화하네요.


리암 니슨과 앤드류 가필드, 와타나베 켄이 나옵니다.


"The subject matter is very close to my heart," Scorsese told Total Film earlier this year. "I've been working on it since I first read the book in 1989... "It goes back to growing up in New York, living in an area that was pretty tough, and also the church at the same time. It's similar to Mean Streets, in a way. It deals with spiritual matters in a concrete, physical world; a world where invariably the worst of human nature is revealed."


2016년 오스카를 기대한다는 기사.

http://www.theguardian.com/film/2014/jul/15/martin-scorsese-silence-oscars-2016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http://www.indiewire.com/article/martin-scorsese-settles-silence-lawsuit-casts-liam-neeson


<침묵>의 제작자가 체키 고리였네요.  이탈리아 축구 좋아하시는 분이면 이 사람이 피오렌티나 옛날 구단주인 것 아실 겁니다.

http://www.theflorentine.net/articles/article-view.asp?issuetocId=3461


플로렌스에서 마리온으로 알려진 마리오 체키 고리는 피오렌티나의 팬들에게는 구세주란 칭송을 받았다. 1990년 그는 로베르토 바지오를 유벤투스에 판 것으로 극심한 비판을 받고 있던 폰텔로 가문으로부터 클럽을 인수했고 사망할 때까지 회장직에 있었다.


1993년 11월 5일 체키 고리가 로마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을 때 플로렌스의 모든 사람들이 산타 크로체의 바실리카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 나타났다. 그를 추모하며 콜롬비아 트리스타는 버라이어티 지에 '마리오 체키 고리 - 추모'란 전면 광고를 냈다.


비토리오 체키 고리가 영화사와 피오렌티나의 경영을 이어받았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일 포스티노","인생은 아름다워"같은 영화제작자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토리오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없었다. 그는 재정적인 것과 여러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1995년 라이와 피닌베스트의 텔레비전 2두체제를 부수기 바라면서 무모한 도전으로 그는 비디오뮤직,텔레몬테카틀로와 텔레피우의 지분을 인수했다. 2000년 아주 큰 실패를 거두었으며 체치 고리 그룹의 재정적인 몰락의 주요원인이 되었다. 그의 아내인 리타 루시치와의 같은 해 있었던 이혼도 도움이 되지 ㅇ낳았다. 1994년과 1996년에 상원의원이었던 그가 2001년 재선에 나섬으로써 문제는 더 악화되었다. 선출되지 않은 채, 몇 달 후 표를 사려 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피오렌티나에서는 그의 잘못된 경영으로 팀을 2001-2002시즌에 강등으로 몰아갔으며 2002년 6월에는 파산까지 갔다, 그 당시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가장 혐오받는 인물이었다. 2005년 11월 그는 팀의 재정적 상황에 끼친 영향때문에 3년형을 선고받았다. 사면되어서 그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2006년 체키 고리는 자신의 그룹의 지주회사인 Finmavi에 관한 사기 파산 혐의에 연루되었다.




2008년 6월 3일 비토리오 체키 고리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수많은 상영관을 통제하는 회사인 사핀의 사기 파산으로 체포되었다. 감방에서 그는 언론에게 " 오해가 있었으며 곧 해소될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그러기를 바란다.


<사커노믹스>에서 마리오가 사업파트너였던 베를루스쿠니에게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비토리오를 돌봐 주게나, 너무 순진하고 충동적인 아이야."




바지오와 피오렌티나, 유벤투스의 관계



1994 월드컵 당시 바지오 기사(http://sportsillustrated.cnn.com/vault/article/magazine/MAG1005193/index.htm)에 따르면


바지오와 토리노 그리고 토리노의 팬들,티포지와의 관계도 종종 불편한 것이었다. 90년 피오렌티나에서 한밤중에 이루어진, 당시로서는 기록을 경신한 12m 달러 이적료의 거래는 플로렌스에서 분노와 수류탄의 환영을 받았다. 토리노의 반응은 22개 리그 챔피언십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양키스-셀틱이 된 팀인 유벤투스 후원자들이 가장 잘 보여 주었다. 토리노로 떠나던 날,바지오는 그의 오랜시절 몸담았던 팀에서 떨어지는 데에 씁쓸해서 그에게 주어진 흑백의 유벤투스 스카프를 매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한 경시를 유벤투스 팬들이 포착했다.

플로렌스에서 치룬 친정팀 피오렌티나 전에서 바지오는 12야드 거리의 거의 확실한 골이었던 pk를 차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한 행동은 캔자스 시티를 위해 경기한 조 몬타나가 그의 오랜 샌프란시스코 팀과의 공고한 유대감을 보여 주기 위해 49er 원 야드 라인에서 고의적으로 바운드를 넘어 버린 것처럼 반역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팀동료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바지오는 킥을 차라고 동요될 수 없었다. 더 나쁘게, 그의 대체자가 그 기회를 놓쳤다. 몇 분 후 바지오는 교체되었다. 바지오가 사이드라인에서 라커룸으로 돌아가던 중 한 팬이 보랏빛 피오렌티나 스카프를 그의 길에 던졌다. 바지오는 주저함없이 그 스카프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피오렌티나에서 보낸 5시즌에 고별 인사를 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토리노에서 그러한 행동은 배신으로 여겨졌다.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바지오가 그 일화에 관해 말한다. “제가 그 pk를 놓쳤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제가 고의적으로 놓쳤다고 말했겠죠. 가끔 저는 동료들이 골을 넣을 수 있게 pk를 양보하기도 하는데 아무도 그걸 두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은 과장되게 불렸을 뿐이에요. 저는 스카프를 주웠고 언론은 저를 토막냈죠.”



이탈리아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영화제작자로 유명한 사람이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현 나폴리 구단주입니다 .펠리니의 <길>,<맨헌터>, <한니발>을 제작한 디노 데 라우렌티스의 조카입니다.



    • 부모가 이룬 위업을 자녀가 따라가는 일은 정말 어려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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