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권력, 지적의 권력.

 지방 출신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몇 년 사이에 '사투리'를 싹 고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대부분 전라도나 제주도 사람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빨리 고칩니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빨리 고친다는 이야기이지요. 경상도 출신의 남성에게 사회 생활에 지장 있을 수 있으니 '사투리'를 교정하라는 이야기 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전라남도 출신의 여성으로 거의 7~8년을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소위 '사투리'를 교정하지 못했지요. 일단  어휘를 표준말에서 벗어난 걸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귀가 밝은 편이 못 되어서 리스닝이 잘 안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서울말과 전남말의 차이가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고쳐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교수님께도 '사투리'를 교정하라는 말을 들어 봤고, 심지어 100% 전남 사람인 부모님께도 그런 말을 들어봤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게 악의가 있어서 그렇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게 제게 유리하니까 충고해주는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것과 감정적인 반응은 다른 문제입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제 말을 좀 듣다가 항상 물어옵니다. 

- 집이 지방인가요? 어디예요?
- 전남이에요.
- 어쩐지 말투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했어요.

 

아마 다르겠지요. 그런데 그걸 왜 꼭 집어서 지적하는 건가요? 제게도 경상도 말, 서울말, 충청도 말, 제주도 말이 다 다르게 들립니다. 하지만 전 그걸 지적하지 않아요. 의사소통이 되는데 상대방이 억양이나 강세가 약간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게 무슨 상관일까요? 누가 그들에게 제 말투에 대해 지적할 권력을 준 겁니까?

 

전라도 사람의 입장에서도 다른 지역의 말투에 대해 부정적인 평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 합니다. 그게 무례하다는 걸 아니까요. 하지만 지난 10년간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전라도의 지위가 조금씩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적이 무례하다는 합의가 올 날은 아직 요원한 모양이군요.

 

말투와 '사투리'의 문제에는 서울과 지방 사이의 권력 문제, 전라도와 같이 차별받아온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의 권력 문제, 남성과 여성의 권력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한국 사회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계층이고요. 제 말투에 대한 지적에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 판단과는 별개로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납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간 들어온 지적질들이 오버랩되면서 지금 분노까지 치미는군요.
 
완전 오버라는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저는 지금 지난 97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왜 어른들이 개표 방송을 보면서 춤을 추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음에도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하고 있습니다.

    • 사투리도 성우가 쓰면 멋있게 들리는데 다 그런거죠 뭐.
    • 에, 제주도 사람이 사투리를 빨리 고치는 게 약자라서 그렇다는 건 좀 잘못된 연결이라 봅니다.
      구조상 그래요.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반면에 경상도 남자들이 빨리 안 고치지요. 전 서울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말투에 부모님 영향을 받아 사투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경상도 방언은 권력의 언어라는 이야기들도 있잖습니까? 경상도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그 어느 자리를 가도 절대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도 고치라는 압력 은근히 많이 받습니다. "사투리 쓰면 머리아프니까 좀 입닫아줘" 란 얘길 들은 적도 있네요. 저 말을 한 사람은 방배동 토박이였는데, 정작 할아버지는 경북 군위 사람이었다고 하죠. 배우 황정민도 사투리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고, 사실 강호동조차도(!) 상당히 고쳐진(!!) 사투리죠. 저는 20대 초반에는 고쳤었지만 복학한 이후로는 귀찮아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내가 내말 쓰는데 뭐 어쩌라고, 라고 버텼죠. (사실 서울말이 아니라 친구의 진한 수원 억양을 배우는 바람에, 표준어가 아닌 경기 사투리를 구사해버리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데 루이와 오귀스트님 댓글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그게 잘못된 것인양 느껴지는데, 오히려 자기 출신지에 애향심을 마음놓고 발현할 수 없는 세태가 잘못된 것 아닌지요? 본문 쓰신 분의 주장도 그렇게 들립니다마는.
      (+ 또한, 그 '강남 쪽 가면 50대 남자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억양'은 엄밀히 말해 경북 억양도 경남 억양도 아닙니다. 그건 그냥 강남 억양입니다. 이건 경남말 네이티브 스피커로서 5000원 걸고 내기할 수 있습니다. 깃대봉 냉면 한 그릇 값.)
    • '사투리'를 따옴표 안에 가두신 것에도 공감해요. 저는 전남말, 경북말이라고 하고 어디 사투리라는 표현을 피합니다.
    •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사투리를 소재로 한 개그... 갑자기 코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그걸 별로 웃으면서 볼 수는 없었어요. '말'을 소재로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 인물들의 특징을 단편적으로만 묘사했지요. 근데 '사투리' 억양을 거의 쓰지 않는 지방 출신으로 생각해보면 쓰는 말을 고치게 되는 계기는 순전히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 경상도 여자인데 대학때는 좀 노력하다가 외국에 사는 지금은 그냥 사투리를 씁니다. 가끔 한국 가서 서울 가면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암튼 '사투리'를 지적하는데 거리낌이 없더군요. 저는 지방 사투리에만 있는 고유한 단어나 표현 같은 것이 사라지는게 안타깝습니다.
    • 01410/ 방배동 토박이란 출신도 있나요? 부모도 방배동 출생, 자신도 방배동 출생이면 방배동 토박이 요건에 부합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저도 방배동 사람 많이 아는데 자기가 방배동 토박이란 사람은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 너 말투가 듣기 힘드니까 좀 고쳐봐. 와 네 고향이 어딘지 숨기는 게 좋겠다. 가 같을수가 없지요.
    • 지방에서 서울말 써도 뭐라 하거나 놀리기도 하죠. 연고와 출신을 따지는 한국 사람 성향 탓일 수도 있고, 이질적인 것은 대놓고 지적질해도 된다는 한국인들의 배타적인 성향 탓일 수도 있겠네요. 둘 다 같은 말인가?;; 그런데 서울에서의 '사투리' 지적은 확실히 서울이 표준이며 중심이라는 우월 의식이 있고, 경상도 '사투리'문제로 들어가면 한국 역대 대통령 얘기까지 나오게 되는 게 당연하죠. 강남3구에서 경상도 말 쓰는 중년들을 유독 많이 만난 시절이 있는데, 역시 기득권층에 경상도인들이 많이 유입됐나, 그런 생각 했더랬죠. 문득 드는 생각이, 노무현이나 유시민으로 인해서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느낌은 바뀌고 있을까? 궁금함이... Keira님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순전한 순진함으로 그러는 사람들도 많을 거에요.
    • 순전히 순진함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keira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경상도 출신인데, 제 억양이 강하지 않기도 하고 사투리를 즉각 '고친' 경우라, 특별히 귀가 밝은 사람이 아니면 "고향이 서울아니죠?" 하고 지적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로 "사투리를 하나도 안쓴다"는 말을 듣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제 경우(그리고 제 주변에 많은 경우) 경상도/ 전라도 억양이 남아 있건 없건 "사투리 때문에 듣기 힘든 말투"는 아니라는 거예요. 제 경우엔 말이 빨라지면 발음이 뭉개져서, 오히려 의식적으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는 편이라 목소리 좋다, 혹은 전달이 잘 된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eira님이 느끼는 문제를 저도 느껴요. 요즘 주변에 고향억양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덩달아 저도 사투리 억양을 다시 쓰게 되었는데, 꼭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4,5년 살면서도 심한 대구억양을 쓰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말투가 저로선 조금도 듣기 힘들지 않고, 오히려 강한 억양 때문에 흐릿하게 뭉개듯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말하는 내용이 귀에 더 잘 들어오지만, 그 친구에게는 "아직도 억양 못 고쳤냐" 는 말이 일상적으로 쏟아지지요.
      물론 서울사람들에게는 대구억양이 귀에 설어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걸 고치라고 말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나요? 대구사람에게는 서울 억양도 귀에 설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서울 사람이 대구에 내려가서 살 때 그 반대의 경우처럼 많은 불편함, 지적에 맞닥뜨려져서 자기 서울 억양을 빠른 시일 내에 완전히 숨기고 유창한 대구말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할 확률은 지극히 적다고 느껴지구요.

      저도 같은 수도권말 계통(?)의 말투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거든요. 나이든 서울 사람들이 쓰는 "서울사투리"와 01410님이 말씀하신 "강남억양" 등이 오히려 이 동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잘 느껴집니다. 어차피 다른 말인데, 그걸 지적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사투리에 관해서는 지적이 무례하단 생각을 아무도 안 해요. 말투를 듣고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을 때 자기 출신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좀 이상하거든요. 제가 외국생활을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긴 하겠는데, 인도사람이 영국 살면서 인도억양 영어를 쓸 때 "너 인도출신이지? 영어가 우리랑 다르네" 라고 묻는 사람의 의도가 얼마나 순진하건간에 무례한 태도가 아닐까요?
    • 원론적으로 말하면 방언에 대한 표준어의 억압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존재합니다. 이 자체는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특이하게 표준어가 경상도 방언에 살짝 눌려있는 감이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전국방송, 정계 등 몇몇 분야에서는 표준어를 강요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만 해도 kbs 메인뉴스 앵커들 중에 굳이 경상도 억양을 감추려는 사람이 몇 없었죠.
    • 억양이 다르니 이동네 사람은 아니구나...하고 고향을 물어보는 게 억압이 되고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거였군요.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자잘한 화제거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다른 지방에서 살게 돼도 당연히 누군가가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고요. 듣고보니 모르는 새에 꽤 실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뜨끔하네요 근데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거예요 물론 처음 본 사람한테 호구조사부터 들어가는것도 딱히 예의바른 민주시민의 태도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요^^;;
      사실 서울 사람의 억양도 제각각이죠 전 수도권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한번도 없는(심지어 여행조차도 잘 못 다닙니다) 사람인데 어디가서 얘길 하다보면 어디 출신이냐고들 하대요. 서울말은 1을 쎄게 말한다면서요 어어 그런가 하면서 며칠동안 신기해하면서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십일십이...읊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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