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두리안

두리안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소싯적에 열심히 읽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입니다. 헌책방하던 친구네집에서 염가로 사와 읽었더랬지요. 시사보다는.. 잔잔하게 읽을만한 글이 많았던 잡지였는데 거기에 열대과일의 왕이라며 소개된 두리안은 지옥의 향기와 천국의 맛으로 묘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도대체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하더라구요.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에 싱가폴 갔을때 두리안을 처음 만났습니다. 노상에서 뿔이 삐죽삐죽 솟아난 과일을 쩍쩍 쪼개서 파는데.. 호텔에 들고오지 못한다, 버스에도 가지고 타면 안된다.. 이거 먹고 키스 하려면 진짜 사랑해야 하는거다.. 등등..가이드가 미리 던져준 말에 압도되어 한조각 먹어보니 달긴 다네..하면서도 왠지 혐오식품 같기도 하고 *냄새가 나는 과일이라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즉.. 화장실 냄새가 맴도는 걸 각오하고 먹어야 하는 과일!!로 각인되어 버린거죠.

 

이번 추석에 막내 동생이 무슨 생각인지 마트에서 산 냉동 두리안을 들고 집에 왔습니다. 아울러 아보카도와 패션 후릇도.. 가끔 엉뚱한 녀석이긴 한데.. 신기한 마음에 사왔답니다. 딱히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두리안. 일단 개봉하고 냄새를 맡아 봅니다. 음.. 예전에는 그냥 배설물 냄새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지하게(?) 맡아보니.. 배설물보다는 발효된 양파냄새? 정도네요. 이정도면 홍어도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먹어보니.. 달고 녹진하고 깊은 맛이 납니다. 식구들이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길래 혼자서 그 맛있는 걸 후딱 먹어치웠네요. 다시 동남아 국가에 갈 일이 있으면 싼값에 배부르게 먹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제 안에서 두리안의 정체성은.. 강한 양파향이 나는 크림치즈같은 과일로 다시 자리매김했구요. 역시.. 기억속의 모습만 가지고 뭔가를 재단하면 안될 일입니다.

 

추석에 옛날만큼 뭔가를 많이 먹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제 슬슬 늙어가는 모양입니다. 먹고자 하는 욕망도 나이에 따라 줄어드는게 정상이라고 한다면.. 저는 적어도 정상적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는거겠지요. 하지만.. 아직도 분짜라던지 두리안이라던지 호빗롱이라던지 콘지라던지.. 이국의 음식에는 여전히 끌립니다. 어쩌면 나가살 팔자인지도. ㅎㅎㅎ

 

아직 점심을 못먹어서 슬슬 배가 고프네요. 요기를 하러 나가봐야겠습니다. 맛점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 저는 대략 못먹는게 없어서 그런지 두리안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입니다.


      흔히 냄새난다고들 하지만 그게 원형일때는 그래도


      껍질까고 썰어놓으면 전혀 냄새가 안나고 과일맛만 나던데 제 코가 발코인걸까요^^;;

      • 냄새가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나 봐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진해지는듯..

    • 아직 접해보지 못한 세계 두리안..



      듀게에서 가끔 접하는 이런 글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근두근한 마음을 더욱 증폭시키지만.. 과연..

      • 듀근듀근... 듀리안을 드세요.

    • 두리안 맛있죠! 삭힌 홍어는 도저히 못먹습니다만 두리안 정도야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 전 삭힌 홍어도 없어서 못먹기에 두리안은 뭐.. ㅎㅎㅎ 갑자기 홍어애가 땡깁니다.

    •  두리안을 먹었을때는 잘 먹었는데 그 껍질을 쓰레기통에 넣어놨더니 계속 냄새가 심하더라구요. 

      • 껍질이 없는 냉동 두리안을 드세요. 좋더라구요. 편리하고..맛도 괜찮고..

    • 필리핀 세부에서 한 달 전 처음 먹었습니다.

      악명을 듣고 겁을 먹고 한 입 넣었는데...


      구리한 냄새가 나면서도 묘한 상큼하고도 단맛이랄까요?


      멋도 모르고 호텔 반입하려다 제지당해서 가족이 인도에 서서 먹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립네요.
      • 호텔 반입은 여전히 안되는군요. 역시..

    • 싱싱한 두리안은 냄새도 전혀 안나고, 정말 맛있어요-!! 다만 몸에 열이 막 나서 힘들었던 기억이-

      • 맥주랑 같이 먹으면 열이 더 잘 오른다지요... 

        • 칼로리가 엄청 높아서 말이죠.

    • 전 이걸 십 년도 전에 호치민의 유명한 가게 켐박당(아직 성업중)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처음 먹어봤어요. 전부터 두리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들어봤지만 뭐 워낙 입이 걸어서 먹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죠. 결론은 맛있었습니다. 제 카페를 열고 나서 두리안 한창 나는 철에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 적이 있는데 냉장고에 두리안 냄새가 겁나 배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한 철만에 관뒀다는... 오늘 장보러 간 마트에 입구서부터 달달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더라니 아니나다를까 한 쪽에서 두리안을 까서 속살만 포장하고 있더군요. 열대 시장 공기의 결정권자는 역시 두리안이랄까요.

      • 구리구리 달콤한 향기가 은근히 땀이나는 더위속에 떠돌아야 비로소 열대에 온 실감이 나겠지요. 두리안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저는 잭프룻도 좋아합니다.

    • 바나나나 망고도 구리구리 달콤한데 두리안은 더 구리하고 더 달콤한가요


      왜 열대과일들은 대체로 달달하고 구리구리한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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