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사는 바낭]경계인이 되기 혹은 정체성분열이 되기
1.
지난 11년동안 처음 9년간은 일년에 한 번 정도만 한국을 방문했었어요.
그런데 최근 점점 한국 방문횟수가 늘었습니다.
올해만 벌써 세번을 다녀왔습니다.
변화의 계기는
1) 전에는 한국에 들어가도 저만의 공간이 없어 본가에 들어가 있어야 했지만 두해전부터는 제 집이 있어요.
전에는 한국에 들어가도 뭔가 어색하고 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세를 놨던 집을 다시 비운덕에) 제 집이 있어서 그런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들더군요.
2) 꿩처럼 건강하시던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 드디어 고장이 나기 시작하셨죠.
사소하게 시작된 고장으로 병원 출입이 잦으시더니 급기야 척수염으로 쓰러지셨다가 병원에서 뇌경색까지 오셨네요.
병문안겸 자주 들어가게 되는 것도 있지만 패밀리 비상시국인지라 가족들에게 얼굴이라도 비춰야 하네요.
그런데 낯설고 물설던 상해도 10년을 넘어가자 참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친구도 생기고 생활이나 일이나 안정되어가고 있어요.
상해의 집도 한국의 집도 문을 열고 들어설적마다 집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공항에 있으면
나는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떠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돌아온 것인가? 아니면 떠나온 것인가?
사회적 의미에서의 정체성은 물론 안헷갈리고 명확해요.
전 상해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한국인이죠.
혼란은 온전히 자연인, 개인으로서의 저라는 존재 자체의 공간적인 정체성이랄까요?
집이 꼭 하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별로 문제가 될것도 아니라 할 수도 있겠죠.
뭐...일부러 별장도 두는 마당에....
사실 한국에 있는 집이 문제인거 같아요.
생활의 근거지는 분명 상해에 있고 상해에 있는 집이 진정한 나의 집(my home)이어야 하는건데
한국에는 나의 생활이 없지만 그게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족들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뭔가 혼란을 주는거 같습니다.
한국에서 상해로 돌아오고 나면 한동안 우울합니다. 이런 일상의 균열?이 미묘하게 제 감정을 마이너하게 만드는거 같아요.
아....그냥 가을 타는 걸지도 모르죠.
2.
오래전에 읽어 제목조차 기억이 안나는 아시모프의 소설중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가 요즘 많이 떠오릅니다.
가상현실 구현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에서 벌어지는 사건인데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홀로그램같은 것을 이용하여 직접 대면하는 느낌으로 사람들과 사람들이 교류하는 상황
모든 공간적 제약이 허물어 지는 상황에서 어디 사는 그 누구와도 아무런 제약없이 현실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과 다를게 없는
교류를 하게 된다면 사람들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지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직접 접촉, 대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질테구요.
요즘 인터넷의 발전이 휴대형 넷접속툴과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거 같은데
딱 위에 언급한 소설이 떠올라요.
실제로....사람들이 점점 호흡과 체온까지 느껴질정도의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넷을 통한 교류에 더 경도되고 있다고 하죠.
3.
상해 살면서 이야기를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 생활속에서(사무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게 매우 제한적이거나 희소한 편이지 않나요?
게다가 늦게 배운 저급한 수준의 외국어로 소통한다는게 사실 피곤한 일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넷을 통하여 한국어로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소통을 많이 하다보니
1번에서 언급한 정체성의 혼란에도 왠지 영향을 주는거 같아요.
그래서 정서적으로 좀 힘들어지면 자제하는 편이에요.
아마 제가 듀게 외에는 다른 게시판 이용을 거의 안하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일체의 sns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인거 같습니다.
저도 외국에서 10년째 거주중이에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손 덥석이 이럴때 쓰는 말이군요. 저도 일과 모든 생활은 여긴데 인터넷 할땐 한국쪽만 자주 하다보니 더 헷갈리는 것 같아요. 예전엔 오래 살다보면 괜찮아 지겠거니 했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에 돌아가서 살기 전 까지는 이런 상태가 평생 쭉 지속 될 것 같네요.. 상해 보단 훨씬 먼 곳이지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니 반갑네요. 외국에 살면 확실히 가을을 더 타는 것 같아요.
저 보다 먼 곳에 게시다면...단지 공간적 거리감에서 뿐만 아니라.... 인종과 문화면에서 한국과 완전 다른 곳에 살고 게시니 저보다 더 격렬하게 느끼시겠군요!!!
중부유럽에서 10년 남짓 살던 측근은 매년 가을만 되면 다 포기하고 "나 돌아 갈래!!" 병이 도지곤 하더군요....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있지만 저도 물 건너 살다 10년 못 채우고 돌아 온 경험이 있어 1번 공감합니다. 한국 들어갔다가 다시 외국의 나의 집으로 갈 때, 한국에서 바리바리 산 물건으로 무거워진 수트 케이스를 돌돌돌 끌면서 역에서 아파트까지 가던 그 길이 왜 이리 쓸쓸하고 싸아~했던지...
그런데 또 한국에 있으면 뭔가 안절부절 못 했었어요. 뭔가 내 헤어드라이어, 내 옷, 내 컴퓨터가 있고, 내 핸드폰이 터지고, 내 우편물이 쌓이고 있을 외국집이 자꾸 생각나더라구요.
요즘은 핸드폰도 여기나 저기나 그 폰 그대로 그 번호 그대로 다 터지니까 더 혼란스러운거 같아요;
레옹 마지막 장면 생각나네요
저는 중국 특히 상해에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soboo님이 너무 부러워요. 상해에 대한 질문을 막 하고 싶어져요.
전 상해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게 신기했어요; 어떤 로망이신가요? 어쩌다가? ㅎ
날 잡아서 상해 질문 불판 한번 올려 볼까요?
오, 상해에서 쓰는 표현인가요 꿩처럼 건강하다....빨리 건강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