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과 개그를 동시에 고민하다
좀전에 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아파트 경비원분들의 업무고충, 분신, 자살에 관한 방송을 보고 마음 속에 내내 남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분들 마음 속에서 퍼져 나오던 그것.
"모멸감"
식당 주인이 담백하고 따뜻한 사람이면 그곳 음식도 그렇더군요. 파조차 띄워놓지 않은 심심한 국물이라도 담긴 정성을 느낄 수 있는데, 깊은 국물 맛이라든가 뜨겁게 준비해 조심조심 건네는 손짓에서 말이죠. 나가는 그 길목에서도 그런 배려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웃음짓게 만드는 소품이라든가 손수 만든 간식거리 같은 것.
"인간애"
이 세상을 거대한 식당이라 가정한다면 전 이곳이 아주 나쁜 식당이라 말할텐데, 불행하게도 우리 대다수의 처지는 손님도 사장도 아닌 종업원이죠. 안가면 그만이지 할 수 없는 상황. 용역/종업원이란 중간과정은 일대일의 대면이 아닌 가면의 상태를 만들어버렸죠. 아파트 관리소는 민원처리를 빌미로 다음 재계약을 못하게 될까봐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휘두르는 행패를 경비원 개인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영악한 아파트 주민은 더더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릅니다.(주차, 쓰레기처리, 택배, 조롱, 하대)... 버릴 정도의 음식을 선물이라고 주는데도 웃으며 받아야되고, 때리진 않으면서 가하는 폭력 앞에서 누가 강해질 수 있을까요.
-이게 뭐가 어렵나, 이거 정도 못해 주냐, 더 잘할 수 없냐, 왜 이것 밖에 못하냐.
나름 노력하며 살아온 성인이 매일 미숙아 취급을 당하며 산다면 정말 괴롭겠지요. 누구나 직장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고민하지만 이런 직종의 업무는 그게 매일이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분야인 게 참 마음 아픕니다. 업무적인 부당함은 법적으로 개선하면 되겠지만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인 것 같습니다. 상식과 배려. 모든 부모는 다 누군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면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야지 하며 가르치는데,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란 성인들은 따로만 모여 사는 걸까요.더러운 꼴 안 보려면 더욱 성공해라란 인식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지만 그걸 바꿀 수 있는 백신도 우리 안에 있으니 그걸 다같이 꺼내쓰면 참 좋을텐데.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주름에서 타성의 찌듦이 아니라 그 만의 고유한 행복을 보고 싶어요.
오늘은 사무실 경비원분께 타성의 인사가 아니라 저만의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자의 울분의 하이파이브라도...아, 아직 그 정도로 친해진 건 아니라 좀 어렵겠네요. 요구르트에 하이파이브라도 그려서 드리는 정도면?
마니또 같은 스스로 비밀리에 친절을 나누는 그런 것, 듀게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남은 한 해 좀더 따뜻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소소한 나눔 이미! 많이! 진행중이시면 자랑도 좀 해 주시고요!
))) 듀게에 저도 유머러스한 글을 쓰고 싶은데 왜 제 글은 늘 이런, 뭔가 계몽적인 회한 모드인지 늘 미스테리...))))))
가끔 듀게 댓글에 (제 생각에는 제법) 웃기는 노래 하나 올려놓고 혼자 좋아서 데굴데굴 구르는 저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글쓰기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
tempsdepigeon_ 어디든 안 그렇겠냐만 타인에 대한 배척성+하대가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사회에서 엄청난 경직성을 만드는 것 같아요.
바깥_ 어제 경비원분의 인터뷰에서도 그보다 더한 말씀 하시더군요. 경비원 옷을 입는 순간 집에서 키우는 개만도 못하다고. 득도를 해야한다고.
underground_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 인지는 하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잖아요. 잘못하면 되려 불화를 키우기도 하고 말이죠. 많은 선인들이 많은 방법 중에 유머를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도 거기 있으니 제 유머의 형편없음에 좌절이죠^.ㅜ
경비원이 그런 일을 하거나 그렇게 말도 안되는 대우를 받는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얼마나 분노에 차서 그런 행동을 했을지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아파트 주민의 위세가 그 정도나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