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에 나오는 엄마 이야기. 당연히 스포일러)

보이후드를 보면서 연배가 있는 사람들은 어린이에서 청년이 되는 주인공 메이슨 주니어보다는 청년에서 중년이 되는 엄마 아빠의 상황에 더 공감하게 됩니다.

 

특히 저는 엄마역을 맡은 패트리샤 아퀘트가 애 둘을 키우면서 얼마나 씩씩하게 사는지 좀 놀랐었습니다. 영화에서 23살 때 피임실수로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누나가 그때 태어나고, 약 2년 터울로 메이슨이 태어났다면 실제 에단 호크 나이인 44살과 거의 일치합니다. 파트리샤는 68년생이니까 에단보다 2살 나이가 많습니다만 그냥 엄마아빠가 동갑이라고 쳤을 때 영화의 시작 무렵 엄마는 갓 서른을 넘긴 나이입니다.

 

삼촌말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맞춰 보자면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사귀다가 같이 대학교에 갔으며 졸업하기 전인 22살 무렵 피임실패로 아기를 가지고 결혼합니다. 아마 아빠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나 싶은데 엄마는 (아이를 키우느라?) 못했고요. 2살 터울 남매를 20대 중반에 키우면서 책임감 부족한 아빠랑 갈등을 겪다가 갈라서게 되었겠죠. 엄마가 서른살 때쯤 이혼하고 아빠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알라스카에 간 걸로 짐작합니다. 10살 미만 애 둘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어느 정도 양육비를 준 건 같지만(인터뷰에서 에단 호크는 분명히 봉투 건네는 장면이 있었는데 왜 사람들이 자길 무책임 아빠라고 비난하는지 불평했었죠) 엄마는 이즈음에 고졸 학력으로 일을 하며 애 둘을 키우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다다르게 되죠.

 

그래서 엄마는 애들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 갑니다. 거기서 대학편입해서 공부하는 한편 역시 애 둘이 있는 이혼남 교수님과 사귀어서 재혼합니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던 대학교수 남편은 알콜중독자(몰래 산 술을 숨겨두고 마시는 건 달리 해석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에 쓸데없이 애들을 볶다가 결국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죠. 아마 엄마는 처음에는 어떻게 상황을 통제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남편이 아이들을 위협하자 가출합니다. 이런 어려운 때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서 모두가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엄마는 빼갈 수 있는 현금을 챙기고 신세 질 수 있는 친구를 알아본 듯 합니다. 일단 피신할 장소를 확보한 담에는 집에 돌아 와서 애들만 챙겨서 달아납니다. 옷가지나 애들 물건도 하나 못 들고 정말 몸만 빠져 나온 거죠. 남편 애들을 폭력아빠의 손에 남겨두고 온 것이 아쉽지만 엄마는 당국에 신고도 하고 애들 친엄마에게 연락하고 할 수 있는데까진 한 거더라고요. 애 둘을 데리고 재혼한 남자가 이 모양인데 엄마가 이 정도로 대응한건 사실 대견하다고 해야 할겁니다.

 

새로 이사한 동네로 전학한 아이들이 어렵게 적응하는 동안 엄마는 학교 석사과정까지 마치고(폭력남편이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했을까요, 아님 애들처럼 다른 지역 학교로 편입했을까요?) 강사자리를 알아봅니다. 사실 전 엄마가 새로 학업을 시작했을 때는 직장을 구하기 쉬운 전공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밝혀지는 심리학은 좀 의외기는 했으나 실력있는 엄마는 일단 대학강사직을 구하고 어느 사이에 교수가 됩니다. 강사에서 교수로 되는 과정의 피눈물나는 사연이 애들 눈에는 안보인 걸까요, 아니면 엄마는 정말 무서운 실력파여서 두번째 결혼의 파경의 와중에도 남들이 알아주는 명성을 쌓았던 걸까요?

 

동료교수와 학생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연 파티에 온 군인출신이라는 나이가 찬 학생이 등장합니다. 이 남자가 주둔지역주민과 협력한 이야기를 하며 인간관계에 존중이 필요하다고 진지하게 피력했을 때 엄마가 이 연하의 남자에게 끌리는 걸 느낄 수 있고요. 엄마는 어느새 세번째 남편과 결혼해서 교외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새아버지는 아들에게 카메라를 소개하는 등 첨에는 아빠노릇을 하는 듯 하지만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서 친구들과 놀다가 밤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잔소리하던 남편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잡으면 이 남자가 감옥 교도관인 걸 알게됩니다. 첨에 어림짐작했던 경찰이 아니라 교도관이 되었다는 것은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마땅치 않은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교수 부인과 우등생 애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상황으로 연결이 됩니다.

 

어느새 세번째 남편과도 이혼한 엄마는 애들 대학보내면 필요없다고 부담스러운 주택을 처분하고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딸에 이어서 아들까지 대학에 간 것은 대견하지만 이제 뭘 위해 살죠? 아직 나이는 40대 초반이고 경력도 있는 똑똑한 미인이지만 결혼을 세번 실패하고 보니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오지요. 하지만 전 애들을 대학에 보낸 엄마가 새로운 인생의 전성기를 맞아 보람찬 삶을 이어 갈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남편없이 아이 둘을 가지고 이정도로 삶을 이끌어 온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잘 살겠지요. 그렇게 어려보이던 첫 남편도 이렇게 성장했는데요 뭐.

    • 솔직히 보이후드에서 엄마는 사기캐죠.......어린나이에 자력으로 애 둘 멀쩡하게 키워내고 그 사이에 결혼세번 이혼세번 거기다 교수까지 되고 진짜 사기캐임.............. 

      • 전 그정도로 보이진 않아요. 공부머리가 좋고,아이를 봐줄 조력자가 있는 행운이 따라다녔다는게 이유가 될듯.

        중간중간 승질도 부리고.. 영화가 생략한 엄마의 히스테리도 있을거구요.

        그래도 도를 넘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생기더군요. 사기캐로 믿고 싶을 정도로 부럽슴미.
    • 패트리샤 아퀘트가 실제 삶에서 23살 쯤에 이미 아들이 있는 어머니였죠. 아들 이름이 엔조였던가, 자신과 아들은 함께 자랐다고 <미디엄> 1시즌 방영 앞두고 토크쇼 나와서 말하는 것을 봤어요. 그러다가 빌리 제인하고 재혼해 딸을 둔 걸로.

      • 빌리제인과 재혼했군요?

        그 배우 악역이미지인뎁...암튼^^
    • 이렇게 읽기쉽고 상세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시다뉫.

      제가 놓친 부분도 있네요..


      패트리샤 아퀘트 미인이긴해도 몸이 자꾸 옆으로 팽창해서 좀 안타까웠음이요.

      어떤 영화에선 정말 관능적이었는데..로스트하이웨이?
      •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관능적이었는데 그 영화는 일부러 몸 만들어 찍은 영화가 아니라지요. 누드 신 찍기 전에 엄청 빡세게 관리하는 헐리우드의 못된 관습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고 본인이 그랬지요.

        • 엄훠,멋지심. 근데 가슴과 엉덩이 크고 허리는 뚱뚱하지 않아서 뼈대가 큰 미인이구나했어요.
    • 스토리 요약본인가요, 감상인가요ㅋㅋ절묘하네요.
    • 저도 나이가 애매해서 그런가(삼십초반) 엄마와 메이슨 을 번갈아가며 감정이입했습니다. 특히 엄마 학위따면서 고군분투하고 마지막 정리후에 멘붕하시는 장면에서 저도 일종의 무너짐을 느꼈죠. 하지만 메이슨 입학과함께 마지막장면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며, 인생은 그저 흐를뿐. 목표보다 지금을 사는게 중요하다는 주제로 이동. 메이슨의 이십대가 아마도 멋질것으로 기대가 되며 벅차게 마무리. 정말 멋진 올해최고의 영화였어요!
    • 저도 어쩔 수 없이 패트리샤 아퀘트에 감정이입...... 메이슨이 떠나는 날 엎드려 울 때 토닥토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지요. 이제 당신 인생 시작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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