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파시즘, 전체주의의 악몽

강남권 독서모임의 송년회겸 정기 모임이 오늘입니다. 오늘의 주제 도서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 구요. 홀로코스트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명작이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그동안 일부러 안 읽었던 책이지요. 일단 주제도서로 선정되면 피할 도리가 없으니 읽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피했던 이유는 각박한 현실에 피곤함, 당혹스러움, 공포감을 더할 거라는 예단 때문이었어요. 책을 읽는다는게 저에게는 일종의 오락이고 휴식이고 재충전인데.. 영화로 따지면 SF나 무협이나 말도 안되는 코미디가 취향이지.. 눈물 펑펑 쏟고 봐야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같은 영화는 너무 감정 소모가 큰 탓이지요.

 

결과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다루기는 했지만 균형있는 시각으로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해나가는 책이었고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다루면서도 엄청난 구두쇠에 기회주의자, 어디서든 살아남는 솜씨좋은(혹은 질긴..) 유대인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더라구요. 부자간의 트러블이며 심각한 가정 불화도 생략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나면 끔찍한 학살도 학살이지만 그안에서 말살되고 파괴되어가는 개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을 적지는 못하겠지만 나치들이 우는 아이들을 팔다리를 잡아 벽에다 부딪혀 죽이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공포를 못견디고 일가족이 음독하는 부분들은 정말 그 어떤 것보다 심각하고 적나라한 공포로 다가옵니다.

 

2차 세계대전이 그리 오래전이 아닙니다. 한때 세계를 광기로 몰아넣었던 파시즘의 망령은 아직도 건재하지요. 요즘들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파시즘의 광기, 전체주의의 망령이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북 청년단이며 일베도 무섭지만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 본다는 니체의 경구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스스로도 경계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상과 종교, 인종과 성별이 다르다고 누군가를 차별하고 무리를 짓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 전체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대명천지에 그런 일이 설마 있을까 싶지만.. 요즘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보고 있으면 전체주의의 악몽이 슬슬 현실이 되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걸 묵인하고 허용하고 자기에겐 뭔가 이익이 떨어질거라 생각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허락한 것이겠구요. 나치스가 지배하던 그때랑 지금이 뭐가 그리 다를까 싶기도 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작은 목소리나 움직임이라도.. 크게 잘못되기전에 뭔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책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PS : 날도 추운데 오늘 오실 분들 조심히 오시길.

    • 늘 마음 속에만 두고 있던 책이었는데 이제라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작품이라는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칼리토님이 본문에서 쓰신 것과 같은 이유로 피해 왔어요ㅠㅠ.
      • 무서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나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싫습니다. 나이들수록 왜 그런가 몰라요.

        • 그건 저도 그렇게 되더라구요;;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피로도가 쌓이는게 아닐까 싶어요-.,-
    • 스물스물이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만연한 것 같아 많이 걱정스럽습니다. 신은미 토크쇼에 폭발물을 던진 소년의 기사에서 (다음 메인에 뜬 뉴스였는데) 미디어가 노골적으로 그 소년을 애국자로 치켜올리는 걸 실었더군요. 몇 시간후에 기사가 수정되긴 했지만 현재 한국의 주류 언론이 갖고 있는 시각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테러리즘을 묵인하는 걸 넘어 미화하고 부추기는 기사가 넘치고 정작 신은미는 종북콘서트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대통령까지 비난에 동참했어요.


      땅콩회항 사건에 묻히긴 했는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예요. 이들이 현정권을 지지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노골적으로 봐주고 있도 피해자들을 오히려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잖아요. 어느 정상적인 정권이 자기 편이라고 테러리즘을 노골적으로 편드나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아무도 우려하지도 않아요.
      • 동감입니다ㅠ 어쩌다 나라 꼴이 이렇게 됐는지ㅠ
        • 동감이긴 합니다만.. 이 꼴을 만든건 사실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죠. 편을 갈라 미워하는 순간.. 그 또한 전체주의의 악몽에 휩쓸리는 꼴이 될 것이고.. 탈출구가 없네요.

          • 그러게 말입니다ㅠ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악의 평범성>은 정말 탁견이라는...;;
    • 아트 슈피겔만의 <쥐> 정말 괜찮은 작품이죠. 부제가 '아버지에게 서려있는 피의 역사'인 만큼 나치 정권하의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상황들을 정말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그 넘치는 블랙 유머들은 어쩔....;; 거기다 악랄한 인종범죄의 희생자이면서도 인종차별주의자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유대인 자신들이 지닐 수 있는 모순도 분명히 짚고 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나라에 따라 그 국민들을 동물로 표현한것도 재밌었어요^^


      아마도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면서 멸시했던 나치 정권하의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차용하면서 저항의지를 표현한것 같은데 (흑인들이 스스로 나 껌둥이, 니거라고 하는것 처럼요;;)


      덕분에 독일인은 고양이, 폴란드 인은 돼지, 러시아인은 곰, 미국인은 개 (물론 흰 개와 검은 개가 있죠ㅋ 누렁이도 있을듯;; ) 노르웨이 인은 순록, 영국인은....이게 젤 웃겼는데^^ 아무래도 생선인것 같은데 종류를 모르겠더라는;;

      프랑스 인은 개구리라서 금방 알아봤는데....이것도 참;;

      군복입은 생선 하나가 군용 짚차를 몰고 가는데 차에 걸린 국기가 유니언 잭이라 영국인을 생선으로 표현했구나 싶었어요. 아무래도 해양 국가다 보니....그래도 그렇지;; 아무래도 피쉬앤칩스의 그 청어인듯ㅋㅋㅋㅋ

    • 이런 깨알같은 재미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거기다 신랄하기 짝이없는 아버지 케릭터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면서도...뭐랄까, 정치적 공정성에서 자칫 위험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이 작품에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빅캣님의 고견은.. 오늘 모임에서 요긴하게 잘 써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윽...독일인은 고양이인데, 제가 잘못 썼네요;; 방금 수정했습니다.

      즐거운 토론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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