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분노, 분노의 행방에 대하여
게시판 글 몇 개에 댓글을 달면서 분노의 정체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뉴욕 생활 중에 9월 11일에 언론사 트위터 계정을 해킹해서 테러 공격이 있었다는 가짜 트위트를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화가 났었어요. 9/11 테러 당시에 뉴욕에 있지도 않았지만 하여튼 그랬습니다. 그때도 일이 꽤 바빴는데 일하다가 이런 못돼 ㅊ먹은 것들이 다 있나, 하고 씩씩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 희생자의 친인척, 친구가 아니더라도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할지 저는 짐작도 안 갑니다. 또, 분노나 복수라는 감정은 인간의 가정 기본적인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봐요. 그래서 이런 걸 찾아봤습니다: http://bigthink.com/videos/kenji-yoshino-problems-with-the-war-on-terror# (제가 예전에 종종 약 좀 팔았던 미인 교수님입니다;)
좀 예전 동영상입니다만, 저는 이 대목에 공감을 합니다. 이 교수님은 자칭 중도좌파이고, 특히 동성 결혼을 비롯한 LGBT 이슈에 관해서는 진보적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이 교수님의 주장에 끄덕이게 되는 건 그 주장의 결론때문이 아니고, 고민과 성찰이 느껴져서입니다. 헌법 수업땐 슬라이드를 많이 사용했는데 테러와의 전쟁, 인권 대목에선 두 사진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동영상에도 그 언급이 나옵니다). 트윈 타워의 그 유명한 테러 장면, 이어서 관타나모의 사진.
한 단락만 인용을 해보면요,
부시 정권은 그게 그냥 좋아서 관타나모 만 (기지)을 건설한 게 아니었죠? 그리고 테러 용의자를 그저, 그러고 싶어서 수용한 것도 아닙니다. 부시 정권은 테러 공격이 국가 안보에 대한 진정한 위협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두 사진 [위에서 언급한 두 사진입니다]을 연결시켜 보아야 합니다. 저는 바로 그것, 그러니까 편집증적으로 과잉 반응하지 않고 국가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The Bush government is not creating Guantanamo Bay for its own
pleasure, right? And it’s not housing detainees there just because, you
know, it feels like it and it wants to. It’s doing it because there is a
genuine national security threat as embodied by these terrorist
attacks. So you have to associate those two pictures in your mind. I
think the challenge going forward is how to do that; is how to actually
have national security without being paranoid and overreacting.
허둥지둥 일하다가 말고, 분노할 수 있는 시간, 균형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어요.
우리나라 극우들도 정작 스스로는 극우나 수구가 아니라 건전한 중도라고 생각하겠죠. 그 미국 교수도 딱 그 수준인겁니다. 그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9.11테러 사진과 미국에 의해 희생당한 이슬람인들의 사진을 함께 보여주면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그게 그냥 좋아서 9.11테러를 벌인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어느 교수가 공개강의에서 이렇게 말하면 본문에 언급한 미인 교수와는 달리 FBI에서 수사들어가겠죠. 테러는 테러일 뿐입니다. 9.11같은 테러도 당연히 끔찍하고 나쁜일이지만 관타나모 기지나 수사기관의 고문같은 국가 테러도 테러일 뿐이죠. 미국이 관타나모 기지같이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것이야말로 9.11 테러범들의 목적에 넘어가고 있는 것일 뿐이구요.
가져온 부분이 짧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제가 짧게 쓰고 싶었던 글은 테러 이후의 인간 본성, 분노에 대해서였거든요), 달랑 한 학기지만 수업을 들은 제 입장에선 우리나라 극우와의 비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업에서는 강하게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셰익스피어와 미국 법에 대해 쓴 책에선 테러와의 전쟁을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잔인한 복수 비극 Titus Andronicus에 비유한 꽤 긴 글이 있습니다. 사실은 이 글 일부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인터넷에서 못 찾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