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를 기다리며 깨달은 것
그러니까 지난 수요일쯤 오는 일요일에 '그는 참 착한거 같아' 란 사람과 데이트를, 그것도 집에서 다과를 할꺼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내 머리속에 떠오른 첫 생각은 내가 끔찍하게 낡고 보기싫은 소파를 가지고 있고, 이 소파를 그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소파를 단 한번도 마음에 들어한 적이 없다. 우리 집에 있던 모든 가구들이 그러하듯 이것을 고른 사람은 거북이였다. 벌써 6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 소파를 바꿀려고 했는데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때라, 갓난 아기와 새 소파를 영 아니다란 생각에 포기 했었다. 그리고 몇주 번부터 인터넷으로 소파를 찾아보고 가게도 가보고 그러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소파만 바꿀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릇도 다 바꾸어 버렸다. 우리집 그릇들은 이케아에서 산 제일 싼 그릇들. 우리는 비싼 와인을 사느라 (누가 그 와인을 마셨는지는,,,)한번도 예쁜 그릇을 살 '경제적 여유'란 게 없었다.
그럼에도 그 순간 내가 느낀 강렬하고 진정한 그 싫음에는 물건이 싫다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스스로도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겨우 소파, 그렇다고 내가 더 좋은 소파를 가지고 있으면 더 나은 기회 (무슨 기회??)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잠시 생각해 보니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이 소파가 나한테 속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싫었다. 이것도 참 이상하다. 여태까지 친구들을 집에 부를 때 단 한번도 이런 싸구려 낡고 거기다가 예쁘지도 않은 소파여서 챙피해 뭐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러면 내가 내 친구들보다 전혀 모르는 다른 누군가를 더 신경쓴다는 건가? 생각해보니 거북이와 사는 동안에는 나는 이 모든 물건들이 그냥 거북이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래 이 소파는 내 소유이지 그런데 이건 내건 아니야 거북이거야.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들이야.
언젠가 친구 한명이 나보고, 넌 참 괴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니 물건이 아는 것들 사이에서, 네 집이 아닌 장소에서 굉장히 익숙해 보는 그런 재능.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건 내가 늘 내 물건이 아는 것들을 가지고 내 집이 아닌 장소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한테 잠잘곳은 있었지만 집은 없었다. 나는 한 사람과 함께 함으로 집(home)을 만들지도,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가면서 집을 만들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기서 살았건만. 이 모든것이 기능이었지, 의미는 없었던 거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 적어도 지금은 내와 이 물건들 사이의 거리감, 내 집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와 할 기력이 있으니. 작년에 거북이가 이사를 나가면서 집에 있던 국자를 가져갔다. 국자 대신 작은 플라스틱으로 된 데시리터기를 사용해 국을 떠 먹었다. 친구를 불러서도 그랬다. 국자하나 사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런데 그런거에 신경을 쓸 기운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선물이와 나의 집을 만들어야지.
매우 와 닿습니다...
어떤 물건이 나에게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분, 알아요.
저는
나에게 진정으로 속하는 어떤 물건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이 사람은 나를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본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나'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나'는 다른게 당연해요.
유명 작가의 책 한 페이지를 읽은 느낌이네요. 무척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집주인이 매우 정성껏 관리한 것이 느껴졌고, 그것이 만들어낸 안락함을 느꼈다는 내용이 인상깊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집 (또는 방) 관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게 뭘까 막연히 생각하고 잊어버렸는데,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제가 꾸미고, 가구를 바꾸고 하면서 완성된 제 방은 이전보다 훨씬 애정이 느껴지더라구요(심지어 자주 치웁니다!). 저는 세상에서 청소가 제일 싫은 사람이지만, 쾌적한 공간이 주는 심리적 효과만은 무시할 수 없더라구요. 공간 자체가 위로를 주는 집을 꼭 만드실 거라 믿습니다.
선물이와 공룡님의 '아늑한 집'을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이 글과 감성이 왜 이리 좋은지.. 너무 깊은 밤이라 그런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