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쟁이는 왜 버드맨을 보고 울었는가 (스포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써봤던 글을 재활용해서 반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네.
그게 무엇이었나요?
내가 지구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보고 울었다. 자신이 실제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필사적으로 믿고 싶어하지만 삼 일 만에 평생분을 몰아서 깨지고 부딪히고 추락해야 하는 남자. 생각할수록 눈물난다... 또 보러 가야겠다.
아니, 이것보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자기가 만든 게 똥덩어리고 자기 똥에 아무도 관심없는 사람들 천지인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식 과잉 철부지들에 대해서, 그래 나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새벽에 포탈 창에 자기 작품 검색해보고 찌질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그런 인간이 이 영화를 보고 질질 짜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왕년의 헐리우드 스타지만, 경력은 밑바닥이고 가족은 엿 같고 자금사정은 더 엿 같은 리건. 연극으로 스타가 아닌 연기를 내세우면서 자기 커리어를 끌어올리고 싶지만 기자들은 '동안으로 보이기 위해 돼지 정액을 맞았다는 게 사실인가요?'나 '버드맨 4라구요!(환호)' 같은 개소리나 지껄인다. 그는 생각한다. 자기는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이 연극을 하는 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연극에 도전했다 칩시다, 근데 왜 하필 레이먼드 카버죠? 그 질문에도 리건은 대답할 근사한 답이 있다. '고등학교 때 연극 때 레이먼드 카버가 내 연기를 우연히 보고는 이 쪽지를 주고 갔어' [진실된 연기 고맙습니다.] '이걸 보고 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지'
분명 맨 처음 레이먼드 카버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생각했을 때 리건은 배우가 되게 했던 초심을 떠올렸을 것이다. 밑바닥으로 내려간 나를 다시 끌어올려 줄 것이 초심인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이라면!
하지만 그게 다였을까? 그는 적절한 타이밍에 이 이야기가 가진 극적인 힘이 홍보수단이 되리라 조금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가 날 배우로 만들었던 것처럼 내가 배우로서 가장 힘들 때 불사조처럼 되살려줬다고 인터뷰하는, 그런 자신을 한 번쯤은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래. 그리고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그는 외면하고 싶을지 몰라도 그의 주변사람들이나 그가 뛰어든 연극계 인물들은 다 안다. 그러니 말할 수 밖에. 여긴 우리 바닥이야. 예술의 동네라고. 헐리우드 연예인 나부랭이는 꺼져! 그리고 그렇게 모욕을 당할 때마다 그의 안에 남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의 자아-버드맨이 속삭인다. 철학이니 예술이니 그런 것들은 백인 부자들한테 맡겨두라고. 넌 스타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널 알고 있다고!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안타깝게도 리건은 자기 예술성이란 게 얄팍하다는 것을, 밑천이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소위 연극을 사랑합네 하는 관객들은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자신이 더이상 헐리우드 스타도 아니고 엄청난 티켓파워를 가진 인물도 아니고 젊은애들은 자신을 모르며 늙었다는 것도 알아가야 한다. 와우. 이쯤 되면 리건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불알을 작은 망치로 탁탁 얻어맞는 것 같았다는 말이 뭔지 알 지경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버드맨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척 모두 다 자기 작품을 좋아할 순 없다고 지껄이고 있지만 내심 '이 잡것들아 내 걸 좀 보라고! 쩔어준다고! 아니라고? 다 죽어버려!' 라고 외치는 게 본심인 똥쟁이기 때문이다.
처음 판타지를 써서 출판한 후, 나는 '좀 더 가치있는 것을 쓰고 싶어'라는 열망에 시달렸다. 판타지에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난 중이에 좁은문이나 파우스트 따위를 읽었고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중이를 표출하는 것이 좀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렇지만 고전이 아닌 순문학은 지루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난 바랐다. 대중문학 중에 작품성 있는 것, 아트하우스 영화 중에 대중성 있는 것, 딱 그 지점 어딘가를 헤매는 내 취향의 걸작들을 나 또한 만들어 내기를. 마침 판타지소설 시장도 사장길이었다. 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니, 하고 싶어. 나는 중간문학이라는 것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책이 안 나오는 동안 나는 온갖 찌질한 자기만의 수렁 속에 뒹굴었다. 사람이 일이 안 풀리면 이렇게 찌질해질 수 있다는 걸 자기 일로 체험한다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책이 나오게 되자, 난 책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거야!
넌 책이 나와도 생각외로 별반 기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안 팔린다고 크게 좌절하지도 않을 거야! 그냥 다음 걸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 그리고 새벽마다 포털에 책 제목을 검색하겠지. 알고 있었잖아? 넌 네 능력보다 너무 큰 걸 바랐어. 그동안 판타지 소설을 성실히 썼다면 그쪽 경력이나 통장 잔고라도 남아있을 것을! 네게 남은 게 뭐지? 작가로서의 이름값은 무에 불과하고 통장잔고는 그보다도 형편 없지! 이 어리석은 놈아, 너 만한 똥쟁이는 세상에 널렸어. 네 똥에 사람들이 관심가질 거라고 착각한 척 해봤자 아니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오 그럼. 나도 남의 똥에 관심없는 것을. 남들이 내 똥에만 질질 짤 거라고 생각할 순 없는 것을. 그래, 이렇게 이성적인 척 말하지만, 사실 뛰쳐나가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내 책을 읽으라고 쩔어준다고 소리치고 싶지. 아니라면 죽어버리라고 외치고 싶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쓰는 거고, 내 버드맨들은 '넌 또 네 능력에 비해 너무 큰 걸 잡고 있어! 출판시장은 망할 거지만 넌 훨씬 더 빠르게 망할 거야! 넌 리건처럼 잘 나갔던 적조차 없잖아?!'라거나 '네 재능의 폭이나 셀링 포인트를 인정하고 돈 되는 웹소설을 쓰란 말이야! 가볍게! 심심풀이 땅꽁처럼! 내 말 몰라?!'라면서 내 머리 주위를 퍼득댄다. 그래, 나 같은 똥쟁이도 자기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이렇게 널을 뛰는데, 전세계에 히어로였던 리건이 어떻게 간단히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나.
이러니 어떻게 버드맨을 보고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비걸린 사람도 천지인데요 뭘..
버드맨 관련글 중 처음으로 와닿은 글입니다. 해석 이후 사감에서 길이 갈리긴 하지만요. 쥐어 짜내는 류에 대한 열의에서 진작 손 뗀 인간으로선 영화가 버드맨에 대한 입장을 좀 명확히해줬음 하는 불만만 깔깔하게 남더군요. 연민인지, 조롱인지, 냉소인지, 자위인지, 친애인지, 과시인지, 뭐든간에 진짜 관음으로 그칠 생각도 없으면서 어줍잖게 찝쩍대다 조타수 놓친 찜찜한 기분이었어요. 게다가 전반적으로 감도는 쿨한 척의 기운, 여기서 웃어도 되나? 싶은게.. 하긴 그것도 '자기가 만든 게 똥덩어리고 자기 똥에 아무도 관심없는 사람들 천지인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식 과잉 철부지들에 대해서,' 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하네요. 딱 그런 사람이 만든 영화 같아서! (설마 의도?)
하여간 길을 뜨기 전엔 저도 그, 속으로만 지르는 악을 써본적 있으니까요. 이 글을 보고 살짝은 맴이 쿡쿡 쑤시고 그럽니다. 해서 말입니다. 버드맨의 속닥거림이 이젠 피곤하기만한 사람이라서 말입니다. 위선이라도 좋으니 울었다는 구들늘보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싶어요. 그렇게 속 뜨거워질 정도라면 앞으로도 계속 '멱살을 잡고 내 책 읽으라고 쩔어준다고 소리쳐'주세요. 그게 똥이면 또 어떱니까. 차피 똥도 아무나 못 싸는걸. 똥 받아먹을 줄만 아는 종자들이 지천입니다. (일단 저염ㅋ) 매번 일단 싸봐야 그게 금똥인지 개똥인지도 알테고.. (이히힛! 세상은 똥이다~!)
'예술가의 삶'이라는 것을 한번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합니다. 자기의 재능과 관심에 맞는 분야를 찾는다는 것,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잘 찾아본다는 것은 늘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