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동시'라는 표현에 반대하며.
왜 이 시에서의 언어들을 상징이나 은유로 보지 않을까요? 시는 기본적으로 비유적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장르인데 다들 지시적언어로 해석하고 있어요. 학원가기 싫어서 엄마를 먹어버린다는 것은 시인의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비유적 언어일 따름입니다.
시인은 분노하고 있어요. 10살의 삶에서 하기싫고 가고 싶지 않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지요. 이건 어찌 보면 20대 남성이 입대를 해서 군생활을 그만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2년간 탈출도 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지옥같은 현실과 맥을 같이해요.
하지만 학원을 가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의무도 아니고 엄마로 상징되는 어른들이 안 가게 해 줄 수 도 있는데 즉 이 지옥을 끝장내줄 수 도 있는데 이걸 방기한 채로 자기들더러 계속 학원을 다니면서 9살, 10살 앞으로 11살 12살도 여전히 학원을 다니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가장 참혹하고 무서운 방식으로 비명을 지르고 저항하고 있는 거란 말이죠. 제발 우리들더러 계속 학원다니라고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런데 그 비명이 끔찍하다고 아이를 정신병자 사이코 패스 취급을 하고 있어요. 어른이 해야 할 사회적 책임보다 자신들은 그 비명지르는 자를 비난하는 걸로 유희질 하고 있어요. 왜냐? 자기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요. 혹시 자기 아이가 이 시를 보게 될까봐요.
그런 취급을 하는 사람들 말대로 라면 이렇게 비명만 지르는 시는 시가 아니니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라고 하고 있고 좀 더 아이답게 주장하라하고 그러지 않기 때문에 미숙한 시다라고 하는데 학원가기 싫다라는 시를 성숙하게 쓰기위해서 시를 가르치는 학원이라도 다녀야 한다는 건지 물을 수 밖에 없네요. 이 코미디같은 비난이 얼마나 지옥같을까요?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숙한 시라고 해도 발표의 자유가 가로막혀서는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부르디외 말마따나 대중의 취향이 문제라면, 알아서 사그러갈 테니까요. 더불어, 하나의 표현이 도덕의 이름으로 '사이코패스'로 치부되어 출판 금지되어 버리는 폭력에는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안타까워요.
저는 그 시가 기본적으로 동시에 속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동시의 사전적 정의는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라고 합니다. 그 시는 아무리 곱씹어 봐도, 같은 또래를 대상으로 쓴 시라기 보다는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 혹은 그 이상의 학생들을 데리고 온갖 학원을 전전하는 부모들 에게 보라고 쓴 시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가 이렇게 커지게 된 이유는 이렇게 어른을 주대상을 한 시가 아이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손에서요.
그 아이가 어떠한 의도로 그 시를 작성하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언론과 매체를 통해서 이미 그 시는 동시의 범주로 각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주는 불일치성은 자극적이고 충격적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이 가지는 함축적인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어떻게 초등학생이 이런 시를 동시라고 쓸 수 있냐는 것에 주목을 하는 것이죠. 사실 그 편이 더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 아이가 그러한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따져보자면, 취업 지옥, 대학교 입시 지옥, 대입과 맞먹을 만큼 어려워진 고등학교 입시, 그 발판이 되어 만만치 않게 중요하게 되버린 중학교 입시, 그에 따라 덩달아서 무한 경쟁이 되버린 초등학교 교육. 게다가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변해버린 무한 경쟁사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들 하나하나 분석해서 이러한 시가 나온 경위를 설명하기 보다는, 단순하게 어떻게 이런 시를 동시라고 할 수 가 있느냐고 비판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반응도 즉각적이지요.
요즘 세상이 세상인만큼 아이들도 벌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이고, 2위가 전문직, 3위가 교사고 4위가 공무원이랍니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은 더 빨리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이 역시 저만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 시를 지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 본적도 없으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는지 알수가 없지요. 그냥 순수하게 자기를 매일 학원에 뺑뺑이 보내는 부모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지은 시를 책으로 만들 정도면 그 초등학생도 대단하다 하겠지만, 아무래도 뒤에서 푸시하는 부모의 치마바람도 장난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리고 애시당초 아이가 시집에 시를 내는데 부모가 한번 안 읽어 봤겠나요. 나름 센세이션을 불러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아무쪼록 이일을 계기삼아 쓸데가 없고 효과도없는 보호책(?)같은 것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이 시가 동시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작성하신 내용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단지, 적으신 정의에도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라고 적혀 있는 바, 그 아이가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넘겨짚을 수는 없으니까요 - 어린이의 정서를 읊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으리라 생각해 저는 이 시를 동시로 정의했습니다. 허나 이 시가 동시에 속한다고 보지 않으신다면 이 시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신 이유가 어떤 건지 모르겠습니다. 불일치라..
부모의 의도가 어떠하였는지는 충분히 문제삼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띄우기' 위했다고 한들 그것이 한 책을 출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유가 되어야 하는지라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불어, 저도 이 건이 이상한 보호책의 단초나 잘못된 선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남겼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그 학생이 학원시를 몇 살 때 썼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현재 초5이고 12살입니다. 10살인가 11살은 만 나이. 이번 일은 엄마의 어떤 의지가 좀 느껴져서 더욱 신경쓰고 싶지 않은(....)
결과적으로 우리는 작가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시집의 한면을 촬영한 사진 한장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다 못해 작가와 그 부모의 인성과 정신세계까지 평가하고 있네요.
우선 기본적으로 양심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고 논의를 해야 할것 같네요.
문학작품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시를 평가하고 자연인으로서의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작가와 부모가 마땅히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하는 태도에선 환멸이 느껴집니다.
시로서의 예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인인 어머니의 첨삭지도가 느껴지고, 더 나아가 이슈몰이를 통해 인기를 끌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마법과 같은 특정단어를 떠오르게 하지요.
'순수성'.
누군가를 공격하는데 이보다 공허하면서도 용이한 말이 있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