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동시'라는 표현에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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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기 싫은 날'이 문제라면, 왜 문제가 되는지요? 표현이 문제인가요? 저자를 분리하고 작품 자체로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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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기 싫은 날' 시 본문은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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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자가 20대였다면 그의 덜떨어진 정신 상태에 대한 비난과 이것도 시라고 적었는가, 에 대한 비판이 있었을지언정 '잔혹'이라는 서술어가 붙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었다면, 논의의 가치도 없었겠지요. 문제는 이 시의 저자가 열 살이라는 데에 있으며, 동시집이라는 분류로 출간되었다는 데에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열 살의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는 방식, 그리고 동시의 지위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열 살, 초등학교 삼학년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아직 아이에 속한다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립니다. 소위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가 찾아오기 전이기도 하고 - 조금 빠른 아이들은 찾아오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으로 봤을 때를 말합니다 - 조금은 고전적인 프로이트의 성장 분류로 보았을 때는 잠복기로 성적 발달이 억제되는 듯 보이는 시기이며, 피아제의 분류로 볼 때는 구체적 조작기로 이제 보존 개념을 익히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하니 어른스럽다고 보기에는 아직 나이를 덜 먹었지요. 물론 이것이 성급한 일반화이고 제시한 이론들을 한 개체에게 적용하는 것이 심각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백번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개별자가 아닌 '어른들의 통념'이므로 이렇게 보는 것이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성 싶네요.

그렇다면 먼저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이가 쓴 시를 어른이 쓴 시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한지요? 또는, 아이가 쓴 시를 어른들의 시와 같은 기준에 두고, 시집으로 발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떤 기준이 있는지 세세히는 모르겠으나 온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이 아이를 위해 동시를 쓰는 것은 가능한 일이나, 아이가 어른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른의 시기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 아이의 독서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의미가 없다는 반론은 타당하나 일단 제쳐두겠습니다 - 생각했다 해도 아이가 어른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구 어느 땅에서는 왠만한 어른보다 더 많은, 풍진 세상을 겪고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아이답지 않은 아이의 경험이지, 어른의 경험은 아닙니다. 따라서 아이가 어른의 생각을 대변한다거나, 아이가 어른들의 정서에 맞는 표현을 해낸다는 것은 일단 쓰는 자의 기준에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인 독자가 아이의 표현을 읽고 동감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요.

따라서 아이의 시는 기본적으로 '동시'의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기되는 두 번째 문제. 동시를 분류하는 데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요? 더 정확히는, 동시로 분류되기 위해서 어떤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 건가요? 일단 이를 긍정한다면, 여기에서 다시 앞의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이가 쓴 시를 동시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이 두 번째 문제를 앞의 문제항으로 소급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가 따라야 하는 어떤 도덕적 기준이 있고, 그에 따라서 아이는 시작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긴 이야기를 했지만 현재 의견이 부딪히는 것은 이 지점으로 보여집니다. 아이에게 어떤 도덕적 기준을 요구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 말입니다.

일단 행동의 영역에서는 도덕적 기준이 필요한 것이 맞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힐만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며, 도둑질을 하는 것도 금지되어야 하고 심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왕따와 학교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위해서 아이들은 거짓말, 도둑질, 폭력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까? 그들에게는 도둑질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어서는 안되고, 생각할 수조차 없을 때 도둑질은 소멸하는지요? 오히려, 해당 상황이 문제인지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상황들을 이미 관찰한 적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왕따를 다루고 있는 여러 작품들을 떠올리면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폭력을 가한 자들은 그것이 폭력인 줄 모르고 가했다, 라는 서사가 일반적이지요.)

오히려 도덕 기준-금지의 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금지하는 대상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라캉의 '아버지의 이름 - 아버지의 법'이란 대상에 대한 규정과 그것에 대한 금지를 설정하는 주체에 다름아닙니다(이 주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소위 '상징계'를 도입하는 부권이라는 것은 거칠게 표현하면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말하며, 그것의 허용 여부를 결정해주는 규칙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도덕을 위해서는 도덕이 금지하고 있는 대상을 정립하기 위해, 그 대상에 상징을 부여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어떤 개념이나 사건을 사고했다고 하는 것으로 아이를 벌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반사회적이라면 그것이 옳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이 어른으로써의 책무라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 같아요. '학원가기 싫은 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듯 싶습니다. 아이가 학원가는 것에 대한 반발심을 가졌고, 그것을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을 문화적, 사회적으로 적절한 방향으로 해소하는 것이 어른에게 부여된 임무일 것이고, 듣기로는 아이의 부모가 시를 읽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문제가 되었던 학원에 대해서는 그만 다니도록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표현했다고 하며 아이는 그것을 받아들여 다음부터는 마음 안아픈 시를 쓸게, 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의 흐름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반사회적이므로 너의 정신 상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어른의 책무일까요? 현재 벌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동시'가 발표되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지요? 모방 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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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시적 가치가 떨어지고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시가 그렇게까지 훌륭하다고 여기지도 않으며, 시의 가치만으로도 모두가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른 시에 비추어서 시인의 재능을 평가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며, 내가 시인의 재능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시의 함량과 자격의 문제가 아니기에 동시가 수준이 낮고 그 표현은 어색하여 미적 판단 하에서 시를 거부한다고 하는 의사의 표명은 문제를 잘못 집어낸 것은 아닌지요. 저 동시, 시인, 부모에게 주어진 반응이, 오히려 더 폭력적이고 끔찍한 저 반응들이 문제여야 하지 않는가 말입니다.

적절한 예는 아닐 수 있으나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폭력으로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한 학생에게 가해지는 집단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불쌍한' 학생으로 틀거리 잡아 '건강하게' 만들려는 주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무섭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급우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던 학생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를 둘러싸고 주변이 그를 '결손 가정의 불우 학생'으로 기표화하는 폭력입니다. 시에도 '잔혹 동시'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합니다. 정말로 그 동시는 '잔혹'한가요?

카프카는 <변신>에서 어느날 갑자기 갑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리 잠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대 사회의 압력 속에서, 잠자는 정말로 벌레가 되어버립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성적이라는 압력과 범람하는 좀비물 앞에서 - 꽤 많은 작품에서 좀비가 다뤄지고, 어떤 경우 꽤 '인간적'이기까지 하니 말이죠 - 상처난 마음을 닫고 좀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그리하여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엄마로 대상화하였다면, '엄마'를 '먹어버린다'는 표현은 불가해하지도 않고, 그렇게 '폭력'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아이'의 방식이 아니라 '좀비'의 방식이었을 뿐이겠지요. (굳이 들뢰즈의 표현을 빌린다면, 좀비-되기의 반응 양식이라 평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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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반응은 아이들의 어떤 역치를 깨울 것이 두려워진 소심한 어른들의 성급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무엇이 두려울까요? 미래라는 이름 아래 억압되고 있는 아이들이, 더 이상의 억압을 참지 않고 들고 일어나 자신들을 '먹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닌지, 한번 곰곰이 따져보게 됩니다.

튀는 부분이 있다면, 추후 다른 곳의 게재를 위해 정리한 것을 올리기 위해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미흡함일 것입니다. 긴 글 죄송합니다.
    • 왜 이 시에서의 언어들을 상징이나 은유로 보지 않을까요? 시는 기본적으로 비유적언어로 이루어진 문학장르인데 다들 지시적언어로 해석하고 있어요. 학원가기 싫어서 엄마를 먹어버린다는 것은 시인의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비유적 언어일 따름입니다.




      시인은 분노하고 있어요. 10살의 삶에서 하기싫고 가고 싶지 않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지요. 이건 어찌 보면 20대 남성이 입대를 해서 군생활을 그만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2년간 탈출도 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지옥같은 현실과 맥을 같이해요. 




      하지만 학원을 가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의무도 아니고 엄마로 상징되는 어른들이 안 가게 해 줄 수 도 있는데 즉 이 지옥을 끝장내줄 수 도 있는데 이걸 방기한 채로 자기들더러 계속 학원을 다니면서 9살, 10살 앞으로 11살 12살도 여전히 학원을 다니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가장 참혹하고 무서운 방식으로 비명을 지르고 저항하고 있는 거란 말이죠. 제발 우리들더러 계속 학원다니라고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런데 그 비명이 끔찍하다고 아이를 정신병자 사이코 패스 취급을 하고 있어요. 어른이 해야 할 사회적 책임보다 자신들은 그 비명지르는 자를 비난하는 걸로 유희질 하고 있어요. 왜냐? 자기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요. 혹시 자기 아이가 이 시를 보게 될까봐요. 




      그런 취급을 하는 사람들 말대로 라면 이렇게 비명만 지르는 시는 시가 아니니 세상에 나오면 안된다라고 하고 있고 좀 더 아이답게 주장하라하고 그러지 않기 때문에 미숙한 시다라고 하는데 학원가기 싫다라는 시를 성숙하게 쓰기위해서 시를 가르치는 학원이라도 다녀야 한다는 건지 물을 수 밖에 없네요. 이 코미디같은 비난이 얼마나 지옥같을까요? 

      •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무엇보다도, 미숙한 시라고 해도 발표의 자유가 가로막혀서는 안되리라 생각합니다. 부르디외 말마따나 대중의 취향이 문제라면, 알아서 사그러갈 테니까요. 더불어, 하나의 표현이 도덕의 이름으로 '사이코패스'로 치부되어 출판 금지되어 버리는 폭력에는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안타까워요.

    • 저는 그 시가 기본적으로 동시에 속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동시의 사전적 정의는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라고 합니다. 그 시는 아무리 곱씹어 봐도, 같은 또래를 대상으로 쓴 시라기 보다는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 혹은 그 이상의 학생들을 데리고 온갖 학원을 전전하는 부모들 에게 보라고 쓴 시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가 이렇게 커지게 된 이유는 이렇게 어른을 주대상을 한 시가 아이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손에서요.


       그 아이가 어떠한 의도로 그 시를 작성하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언론과 매체를 통해서 이미 그 시는 동시의 범주로 각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주는 불일치성은 자극적이고 충격적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용이 가지는 함축적인 의미를 따지기 보다는 어떻게 초등학생이 이런 시를 동시라고 쓸 수 있냐는 것에 주목을 하는 것이죠. 사실 그 편이 더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 아이가 그러한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따져보자면, 취업 지옥, 대학교 입시 지옥, 대입과 맞먹을 만큼 어려워진 고등학교 입시, 그 발판이 되어 만만치 않게 중요하게 되버린 중학교 입시, 그에 따라 덩달아서 무한 경쟁이 되버린 초등학교 교육. 게다가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변해버린 무한 경쟁사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들 하나하나 분석해서 이러한 시가 나온 경위를 설명하기 보다는, 단순하게 어떻게 이런 시를 동시라고 할 수 가 있느냐고 비판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반응도 즉각적이지요.  


      요즘 세상이 세상인만큼 아이들도 벌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이고, 2위가 전문직, 3위가 교사고 4위가 공무원이랍니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은 더 빨리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이 역시 저만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 시를 지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 본적도 없으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는지 알수가 없지요. 그냥 순수하게 자기를 매일 학원에 뺑뺑이 보내는 부모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지은 시를 책으로 만들 정도면 그 초등학생도 대단하다 하겠지만, 아무래도 뒤에서 푸시하는 부모의 치마바람도 장난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리고 애시당초 아이가 시집에 시를 내는데 부모가 한번 안 읽어 봤겠나요. 나름 센세이션을 불러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아무쪼록 이일을 계기삼아 쓸데가 없고 효과도없는 보호책(?)같은 것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 이 시가 동시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작성하신 내용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단지, 적으신 정의에도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라고 적혀 있는 바, 그 아이가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넘겨짚을 수는 없으니까요 - 어린이의 정서를 읊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으리라 생각해 저는 이 시를 동시로 정의했습니다. 허나 이 시가 동시에 속한다고 보지 않으신다면 이 시가 충격적으로 다가오신 이유가 어떤 건지 모르겠습니다. 불일치라..


        부모의 의도가 어떠하였는지는 충분히 문제삼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띄우기' 위했다고 한들 그것이 한 책을 출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유가 되어야 하는지라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불어, 저도 이 건이 이상한 보호책의 단초나 잘못된 선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남겼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그 학생이 학원시를 몇 살 때 썼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현재 초5이고 12살입니다. 10살인가 11살은 만 나이. 이번 일은 엄마의 어떤 의지가 좀 느껴져서 더욱 신경쓰고 싶지 않은(....)

    • 결과적으로 우리는 작가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시집의 한면을 촬영한 사진 한장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다 못해 작가와 그 부모의 인성과 정신세계까지 평가하고 있네요. 


      우선 기본적으로 양심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고 논의를 해야 할것 같네요.


      문학작품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시를 평가하고 자연인으로서의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작가와 부모가 마땅히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하는 태도에선 환멸이 느껴집니다. 


      시로서의 예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인인 어머니의 첨삭지도가 느껴지고, 더 나아가 이슈몰이를 통해 인기를 끌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마법과 같은 특정단어를 떠오르게 하지요.


      '순수성'.


      누군가를 공격하는데 이보다 공허하면서도 용이한 말이 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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