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성장

저는 어릴 때 겁이 아주 많았습니다. 아기 때 비행기 소리만 나도 (집 근처에 지금은 사라진 작은 비행장이 있었지요. 거기 지금은 마천루가 들어섰어요.) 와앙 울어서 할머니 엄마 삼촌 모두 달려와서 달래야 했답니다. 조금 커서도 워낙 실패를 무서워하고 조심성이 많아서, 능숙해지기 전까지 뭐든 시도하지 않았어요. 돌 때도 서거나 걷긴 커녕 기지도 못 하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요즘 제가 혼자 집을 사고 또 혼자 알아보고 대출 받고, 서류 작업을 하고, 공사 계약, 일정 조율 등을 하는 걸 보고, 엄마가 놀라는군요. 스무살 때 혼자 살게 되면서 변했습니다. 스무살 신입생이 수능을 보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혼자 부동산 가서 전세 계약하고, 가스, 전화 설치 해지, 도배 공사, 온갖 일을 혼자서 알아봐서 해내야 했어요. 몇 년 뒤에 직장에 갔더니, 여긴 더 어려운 일이 많았어요. 억지로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주 죽을 맛이었어요. 십수년간 먼저 손들고 발표도 안 하는 학생이었는데. 


원래 저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역할을 하자면 그런 성격이 용납 안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런 세월을 거쳐 지금 저는 아주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제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또 이런 변화가 아주 싫지도 않아요. 어찌되었든 저는 일단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고 또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냥 제 원래 성격에 더 잘 맞는 일이 세상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하곤 합니다. 나를 바꾸어 가면서 적응을 해나가는 것이 과연 적응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감내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누가 나대신 이런 책임을 떠맡아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론,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한 가지 역할만을 요구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습니다. 스케이터도 삼십대가 되면 스케이트를 벗어야 하고, 지휘자도 발레리나에게도 행정가의 자질은 필요한 법이니까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는 원래의 저와 비슷한 성격이고, 그 성격에 어울리는 일을 찾아서 전공을 택했지요. 엔지니어라고 하면, 별로 커뮤니케이션을 안 해도 초반 생산성이 꽤 높은 개발자 정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왔습니다. 변호사라면, 방에서 서류만 보던 주니어에서 갑자기 파트너가 된 겁니다. 동기들 중에서 독보적으로 실적을 내던 이 친구는 환경과 역할이 급히 변하자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사표를 내고 맙니다. 이 친구가 사표를 낸 자리는 겉으로만 보자면 만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자리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거기서 너무나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이제 참 시원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걱정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저도 지금 제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을 어깨에 지고 앞으로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저희와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남녀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명예와 책임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지. 결국 그것도 제 생각에 달린 것이겠지요. 
    • 닿는 글이에요. 그래서 조금 더 적성에 맞는 일을 해보고자 계속 시도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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