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0.

요즘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민간기업까지 도입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노사 합의 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고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노조들은 반대하고 있고요.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거기서 아껴지는 급여로 청년, 신입사원 고용을 할 수 있을거라고 주장합니다만....


저희 회사는 몇년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습니다.

56세가 정년인데 정년연장을 원하는 경우 2년 더 다닐 수 있습니다. 단, 연장 첫해는 기존 급여의 85%, 2년차가 되면 기존 급여의 70%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밀어붙이는 임금피크제랑은 다른 점은 '정년연장'이후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는 것이죠.


그럼 임금피크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저희 회사의 경우를 생각해 봤습니다.

저희 회사는 생산직만 노조가 있고, 사무관리직은 사원, 대리도 노조 가입이 되지 않습니다.


1.

생산직은 사원-기사-주임-반장-계장(-기성보-기성)으로 승진하는데 기성보부터는 일종의 명예직이라 실제로 하는 일은 계장과 같기 때문에 계장이 기성보로 승진한다고 아래 반장이 계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계장부터는 '관리자'로 치부하기 때문에 노조를 탈퇴해야 합니다.

하지만, 계장까지 승진한 경우 30년 이상의 현장경험과 현장 관리자로서의 리더쉽, 지식 등이 쌓여 있기 때문에 왠만하면 회사측에서는 정년연장을 권유합니다. 작년까지 100% 주고 쓰던 인력을 2년동안 더 싸게 쓸 수 있는데 안하면 이상하죠. 그리고 정년연장기간 2년이 지나면 또 계약직으로 '고문' 이라는 타이틀로 또 2~3년 더 근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구조조정하면서 고문들은 모두 계약해지..)


반장으로서 정년이 되면 미묘합니다. 반장까지는 왠만하면 근속연차순으로 진급을 하는데, 계장 진급을 못하고 정년을 맞이한 반장이면 계장 TO가 안나는 억세게 운이 안 좋은 사람이거나, 사측에서 계장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거든요. 전자의 경우 정년연장을 하겠다고 하면 사측에서 순순히 받아주지만, 후자의 경우 노조측과 또 협의를 합니다. 받아주기 싫다는거죠. (그과정에서 치사해서 그만둔다는 반장도 있고, 그냥 버티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장이 되지 못한 정년자들은 거의 그만둡니다.



2.

사무관리직의 경우에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사람이 1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합니다.

능력이든 연줄이든 있는 사람이라면 정년이 되기전에 임원으로 승진을 하고요.

임원은 못달아주겠는데 그렇다고 자르기에는 회사에 그동안 기여를 한게 있다. 하지만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배려를 해야 한다.. 싶은 경우에는 정년이 되기전에 사내 협력사의 임원으로 보냅니다. 거기서 몇년 더 근무를 하는데 그쪽에서는 임원이기 때문에 정년이라는게 없어서 어찌어찌 잘하고 연줄도 좋으면 계속 임기연장하면서 10년 이상 더 근무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3년 임기도 못채우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또 저희 회사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채웁니다.)

보통 근속 20년 이상 되는 사무관리직+신입공채 출신들이 협력사로 많이 갑니다. 

그리고 임원도 못 달고 미리 협력사로 못 빠지는 경우에는 정년이 되기 전에 '전화'를 받고 알아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말/연초에 '전화' 또는 '면담'을 안하게 되면 올 한해도 다니겠구나..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정년까지 다니는 사무관리직이 별로 없고, 그중에서도 또 거르니 정년연장을 하는 사람은 몇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얼굴 한번 못본, 다른 사업장의 누가 임금피크제 들어갔대~ 대단한데.. 하는 소문이 돌 정도죠.



3.

그래서... 정년 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고 안치고 어찌어찌 정년까지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사기업 풍토에서 정부가 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면..?

- 실무 경험이 풍부한 중간관리자들을 싸게 부려먹을 수 있다 -> 사측의 이익

- 능력은 좀 딸리지만, 임금이 싸니까 가성비 생각해서 부려 먹는다. -> 인사적체, 신입고용 저하


그리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해서 아낀 비용으로 신입을 고용해라? 이 논리면 임금피크제 도입전의 정년이전 직원들을 짜르면 더 많은 비용이 절약되고 그걸로 신입을 더 고용하겠습니다의 논리로 넘어가죠. 실제로 신입고용 약속은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요.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민간기업에게 '정년전에 임금피크제'를 도입시키면 결국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갈 연령대의 자식과 부모를 부양하는 50대 가장을 둔 가정의 삶의 질이 저하될텐데 대체 이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 노예들 따위 챙길 필요 없는거죠. 고용에 시장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기업은 노동자 것이 아니라 주주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노동자들도 많기 때문에 더더욱 후안무치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구요.
    • 저는 몇가지 조건만 합리적으로 해결되면 임금피크제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들어보니 말씀하신 사례 같은 일도 많이 있겠네요.

      • 정부에서 주장하는 임금피크제의 효용이 근거를 가지려면 정년 퇴직자의 비율이 지금보다 높아야죠. 현실은 그냥 인건비가 제일 만만한 비용 절감 항목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이 안되는 것뿐입니다.

      • 현재 한국 사기업의 풍토상 정년까지 간다는건 회사에서 그만큼의 가치/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인데 정부에서 그런 인력을 싸게 고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게 핵심인것 같습니다.

    • 저희 회사의 경우 몇년전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는데.... 최근 정년, 노후관련 많은 사회제도 변경이 58년개띠 파워 또는 58년 개띠가 일거에 직장에서 은퇴하는 시점 과 관계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주장하려던 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이 발생되는 거군요


      잘 읽었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애초에 기업이 어디서 돈을 아끼면 어디서 고용인력을 창출할 수 있다더라 그런말 자체를 신뢰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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