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지적이 있습니다. 님께서는 글을 위한 글을 쓰는 것 같다, 라는 지적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꽤 오래 활동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 대략 감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누군가 나를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안다고 하는게 더 소름돋지 않나요? 애정도 미움도 아니고 그냥 서로 매일 같이 길거리에서 지나치다 보니 그렇게 알게 되는거요. 흔한 예시로는 편의점 알바가 아는척해서 더 이상 편의점에 가질 않았다라거나. 그래서 그 말을 들은 후에 오래 고심해봤습니다. 그러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그게 문제일까, 아니라면 문제일까.


저는 절 미워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껄끄러워요. 왜냐하면...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확실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건 쑥쓰러움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주선할 수 있는 알바 자리를 친한 친구에게 권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거에요. 그 친구가 내 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알바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친구에게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만큼의 편의를 다른 사람들과 차별하여 제공할 수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하겠고, 그 친구는 저에 대해 실망을 하고 싶진 않지만 해버리게 되겠죠. 서운함 말이에요. 아, 첫 문단을 조금 바꿔봐도 되겠군요. 저는 공적인 자리에서 저를 미워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껄끄러워요, 로. 친목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친목을 할 줄 모릅니다. 올바른 친목의 전례를 본 적이 없어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구요.


모래성 같은 글을 네 번째 정도로 쓰는 것 같은데 뇌 속의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마치 미역국을 끓일 때 미역을 불려놓으면 딱딱했던 것이 미끌미끌하고 부드러운데다 엄청 늘어나는 것마냥, 수많은 매듭들이 알아서 불어터져 줄줄이 밀려나가는 느낌이요. 대부분의 경우, 또렷하게 뭔가를 볼 수 있게 글을 써 왔어요.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스러운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상당히 노력해왔는데 이제서는 드디어 망가질 자유를 얻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아쉽기도 하지만, 최근의 경구는 "무위를 두려워하지 말자"니까요. 정말 저스러운 말이라 안 하고 싶지만, 역시 버릇처럼 하자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듀게에 (그러니까 메인 게시판에) DJUNA님의 신작 리뷰가 없는 것이 역설적이라서, 써볼까 했는데 읽고도 써지질 않더군요. 저는 DJUNA님을 SF 소설가로 알고, 지금도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데 그런 글을 하나도 안 쓴 건 면목이 없지요. (지난번 듀게에서 책을 받고 다 읽었는데 그 리뷰도 써야만 하는데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쓰기 힘들도록 만들더군요. 인비져블이라는 책인데, 그 책에 대해서만 쓰기는 힘들군요. 아, 재독하고 언젠가는 꼭 써서 올려야겠어요. 공으로 받아 읽은게 너무 미안하니까요.)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가능한 꿈의 공간을 다 읽은지도 꽤 되었고, 최근에는 태평양횡단특급을 중고로 구해서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 읽었는데도 그런 글을 쓰기는 어렵더군요. 그건 마치.. 자리 잡고 앉아 써야만 하는 그런 글이니까요. 아... 그러니까, 요즘에는 '자리 잡고'라는 의례를 피해서 글 쓰는 법을 연습 중에 있는 건가 봐요. 이제는 그렇게 운용할 잉여력이 없으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듀나님의 소설은 [첼로]인데, 트린이라는 생명체가 너무나 맘에 들기 때문이죠. 오랜만에 태평양횡단특급을 읽고 있으니, 대사처리를 잘 못하고 설정을 좋아하면 이런 식으로 회피하며 글을 쓰는 방법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기억했던 것보다 듀나님 글에는 따옴표 속에 들어가는 대사가 정말 적어요. 제 상상 속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게 거기에 없죠. 최근으로 올 수록 태평양횡단특급에 실린 단편 평균(무엇에 대한?)에서 멀어지는데 저는 그 때가 좋았으니까 많이 아쉽지요. 그게 무어인가 하면 정확하게 설명은 못 하겠어요. 사실 이 책에서도 그렇게 많은건 아니지만 건조하지만 납득 가능한 설정들로 직조된 잘 만들어진 몇 가지 세계가 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아퀼라의 그림자... 도 근사했(가까웠)지만 대중문화가 끼얹어진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는 많이 달라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해가 안 된다고 투덜거릴 것도 아니지만. 과거엔 독특한 듀나님의 취향이 반영된 세계관이 있었다면 (뭐 그 때도 몇 가지 단편들은 현재와 같은 소재를 삼고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독특하지만 대중적(?)인 듀나님의 취향이 반영된 세계관이 되다보니... 뭐 신작이 안나오는 것보나 낫죠. 어어, 트린이라는 생명체, 라고 하니까 작은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아야할 윤리적 문제가 떠올라 구차하게 설명하는 것인데, 거기서 표현하는 로봇에 대한 관점이 매우 맘에 드는거죠. 사실.../하지만... 인간도 '네 속마음을 결코 알 수는 없어'에서는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신뢰한다는 것이니까요.


최근에 제 헛소리를 들어줄 친구를, 그리고 저도 그 친구의 헛소리를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글로 맺힐 정도로 헛생각을 키우질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명확한 청자가 있는 것이 누가 듣는지도 모르는데 주절거리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요? 하지만 또 그게 그것만 있어서는 만족 못 하겟더라구요. 후아, 정말 다행이에요. 듀게가 있어서.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요. 다른 식으로 다른 곳에서 긴 글을 쓰는 것 말이에요. 그냥 그런 느낌이 있어요, 적당히 아는 사람이 있고, 적당히 모르는 사람도 있어서 그 비율이 딱 맞아 떨어져서 안심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정중하게 다른 곳에서도 쓸 수 있지만 예의 차리려면 너무 힘들잖아요.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정장을 입고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 쓰레빠 끌고 나가서 돌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라고 할까요.


바이트 낭비를 두려워하지 말자, 가 되겠습니다.


그래요. 그냥 다른 공간을 여는 거에요. 아, 최근에 다음 팟에서 애니맥스와 애니플러스를 라이브로 중계 해주더군요. 그래서 제 주말 잉여력은 2배가 되었습니다. 밖에 나다니지 않고 인터넷 방송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다니, 이건 정말... 어디가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PC하지만) 부끄러운 취미가 되어버리는 건가 싶고. 지난 주말에 아이돌 마스터를 6화까지 생방으로 보면서 나는 어디, 여긴 누구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 부끄러움을 살려 손을 책에 잡아야 될텐데 말이에요. (의도적 배치입니다.)


그러고보니 ORPG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안해봤던 것 같군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OR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되니까 귀찮아요. 그럼 나중에.


좀 더 여유 없는데, 여유있는 것처럼 시간을 보내렵니다. 말이 성립 안 되지만.

    • '무제' 라는 브랜드도 있어요. 이렇게 간편하고 좋은걸 거의 아무도 안 쓰고 있다는

    • soboo_ 무제는 제목이 없다는, 혹은 제목을 붙이기 어려워 안 붙였다는 뜻인데 제가 원하는 것과는 약간 달라요. 그리고... 무제는 무제 자체로 많이 쓰여서 그 뜻이 살질 않습니다ㅠㅠ. 무제_218, 이런 느낌이랄까요.

    • 흠.... '여러가지', '누구일까요?','이런저런'....뭐 그런류들이 브랜드화? 성공한거 같아서 잔인한 오후님 필력이라면 브랜드 만드실만하지 싶어서 짧은 생각으로 제안해본건데 실패.....-_-;


      (다 핑게고 그냥 지난번 넑두리보다는 잘 읽혀서 댓글 남겨봅니다)

    • 요즘 잔인한오후 님의 글이 재밌어졌어요. ^O^ 


      (댓글 달고 싶은 마음이 2~3배쯤 더 강하게 드는 글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할까요. 


      그런데 어쩐지 장난스런 댓글을 달고 싶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어요. ^^)  


      좋아해 주는 사람과 친해지면 공정하지 못하게 될까봐 친목 못 하는 


      대쪽 같은 잔인한오후 님, 화이팅이에요!!! ^^

    • soboo_ 뭔가 그럴싸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니, 뭔가 그럴싸함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걸 찾고 있는데 그런게 흔하지 않다는게 문제죠. 언젠가 괜찮은 걸 줍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underground_ ... 짓궂으시군요. 더 쭈뼛쭈뼛해질 수 밖에 없어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24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69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70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91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6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7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8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54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91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4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31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44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74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9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93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