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하면서 쓰는 글

아마도 저는 알콜 중독의 초입쯤에 서있는 것 같아요. 월 마감이 있는 날이라 끝나고 회사에서 뭔가 술자리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약속을 안잡았더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게 판명될때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술 동무를 찾았으나 아무도 응해주지 않았습니다. 살짝 실망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 얼마전에 왕창 세일할때 산 바나나 리퍼블릭 옷들을 뜯으며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수트에 티셔츠에 페도라에 겨울에 입을 브이넥 티셔츠까지 질렀음. 그래도 180불이라는 놀라운 가격.. 와우..) 샤워를 한후에 뭘 먹을까? 아니지.. 뭘 마실까.. 하다가 맥주대신 안동소주 칵테일을 마십니다. 


사놓은지 일년이 넘은 안동소주에 얼음 넣고 탄산수 가득 붓고 안주로는 어제인가.. 제가 구워둔 베이컨과 소세지를 야금야금 데우지도 않고 뜯어 먹고 있어요. 그러네요. 이런게 행복임. 그러므로 저는 알콜중독이 맞는것 같기도. 다만.. 주량은 그리 세지 않아서 집에서 먹으면 소주 두잔 정도가 한계인게 다행입니다. 같이 마셔줄 사람이 없으면 길게도 마시지 못하고 많이도 마시지 못합니다. 어찌보면 사람들과 마시면 지기 싫어서 그렇게 꿀떡 꿀떡 마시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무의식이랄까요. 덩치가 크니.. 당신은 주량도 세겠군요에 대한 대답 같은것이랄까. 


차게 식은 베이컨을 먹습니다. 짭짤하고 같이 구운 파의 향기가 배어있네요. 지방은 참 맛있는 것 같아요. 먹을때마다 죄책감이 들긴 하지만.. 거기에 안동소주의 맵싸한 향과 탄산의 상큼함, 혹은 시큼함이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음.. 


먹는 이야기를 쓸때면 신이 납니다. 좋아하는 이야기거든요. 하지만 뭔가 복잡하고 논리적인 글들에는 거의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보면 지금 듀게가 당면한 진지하고 학구적이고 읽을만한 글은 적어지고 일상의 잡담, 아이 키우는 이야기,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방담등이 늘어난데는 저도 일조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랄까. 듀게스러움. 듀게로움.. 을 회복하자면 저도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지도. 


그런 생각의 한편에 듀게스러운 것, 듀게 답다는 것의 정체는 뭘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듀게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과거가 아닌 현재라면 듀게는 지금 올라오는 글들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이런식이면 조만간 유부남녀의 신세 한탄이나 육아를 논하는 커뮤니티가 될지도 모르니.. 총명하신 분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ㅎㅎ


아이는 일찍 잠이 들었고.. 한달의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다가오는 9월에는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도 많습니다. 술은 기분좋게 취기가 오르고.. 요즘 읽는 혹은 읽어야 하는 책들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들이라 출퇴근 시간이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가족중에 아픈 사람도 없고 감정적으로 혹은 상식적으로 고민되는 일도 많지 않으니 지금이 화양연화로구나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저에게도 나름의 고민이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혹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왜 없겠습니까만 그래도 이정도면 행복합니다. 아마.. 한잔 술이 주는 가짜 행복일지도 모르겠지만요. ㅎㅎ 


내일은 치킨 사준다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 저녁에 치킨을 먹을겁니다. 작은 것이지만.. 사소하게 기쁜 하루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저는 요즘 듀게에 역사평설을 연재할까 생각중입니다. 밴드와 카스에 올려봤더니, 반응이 생각보다 좋더라구요. 그래도 이 게시판에 올리려면 자료 보강도 더 하고 문장도 더 다듬어야 하니까…준비할게 많군요.
      • 이 글을 눈팅1님이 좋아합니다. ^^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저도 먹는 얘기 하면 신이 나요^^ 얼마 전 가진 듀게 오프 모임 때 괜찮은 브런치 레스토랑을 몇 군데 찾아서 갔는데, 음식들이 훌륭하더군요.

      맛있고 보기에도 좋고 거기다 사장이신 쉐프 두 분도 상당히 젊고 미남이시어서^^;; …거기 분위기가 마치 런던의 레스토랑 같았는데 정작 런던에서는 그런 맛있는 요리를 못 먹어봤다는―,.―

      여튼 음식 얘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 듀게의 정체성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알콜중독은 술먹고 생각이 안나는게 자주면 시초가 되겠습니다ㅣ.

      • 평범하면서 기본을 지키는 사람들? 요즘들어 기본을 지키는 게 왜이렇게 희박한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 듀게 대표 평범남이 저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유부남이 평범의 범주에 들어가버리면 그건 듀게가 아니겠지요. 

    • 적지 않은 시간을 듀게와 함께 했는데 많은 분들이 아프고 힘들어 하는게 보여서 슬픕니다.



      • 맥락과 양상에 따라 다르지만.. 좋은 날이 곧 오겠지요. 그러리라 믿습니다. 

    • 전 일단 뇌즙을 짜내야 하는 일을 이번 주 내내 해야 해서 맘편히 허리끈 풀러놓고 먹지는 못하겠지만서도 일단 오늘의 분량은 마쳤고, 이 글을 눌러 읽었고, 바로 눈앞에 안동소주와 소다가 있으므로, 그냥 이거나 한 잔 먹고 숙면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주는 부르고뉴산 델리스 치즈 한 조각... 썩 어울리진 않지만 뭐 안동소주에 지지는 않습니다. 총명함 따위는 내일의 일을 위해 아껴두고 지금은 멍청히 잠을 청할 시간이군요. 왠지 먹는 이야기에만 반응하는 소화기관형 인간이 된 것 같아 살짝 부크러운 마음은 소주로 휘릭 날려버리겠습니다.

      • 뇌즙을 짠다는 말에서 그로테스크하지만 귀한 음식을 떠올려 버렸... (한니발이냐?? ) 아무튼.. 소화기관형 인간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남 얘기가 아니거든요. 
      • 뇌즙을 짜는…-_-;;…저도 요즘 몇 달간 역사평설 쓰는 일에 매달렸는데, 진짜 실감나는 얘기네요.
    • 칵테일 좋아요. ^^


      다들 자신이 몇년간 일했거나 관심있는 분야가 있을텐데 게다가 그 분야에서 인정받기도 하실 거고요.


      상대방이 물어본 것을 찝는 것도 아니고 내가 꼬투리를 만들어 글로 쓴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시민이  '글 잘쓰기'책을 냈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겠지요.


      저는 제 분야를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알아가는 중이라 흥미를 유발하도록 물 흐르듯이 쓸 능력이 안됩니다.


      그냥 아시다시피 사는 넋두리나 늘어놓고 동지 혹은 다른 시각을 찾으려는 거지요. ㅎㅎ


      하지만 글을 제대로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커지고 있고 제가 일하는 분야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근사한 글 하나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ㅎ


      저도 저 때문에 육아나 넋두리 게시판이 되는게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ㅠ ㅠ




      제 초 2 딸아이가 '엄마 엄마는 내가 여자다웠으면 좋겠어?"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얼마전 린스를 쓰면 머리결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지요. 저는 안씁니다 ㅎ) 그러길래


      "아니 인간다웠으면 좋겠어.아니 그냥 너다웠으면 좋겠어. 너한테 무엇무엇다워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너를 구속하려는 거야" 그랬지요.


      흠.. 쓰고 보니 제가 이상적인 듀게의 이성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되네요. ^^

      • 채찬님 정도면 충분히 이성적이고 생각해볼만한 글을 남기신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저지요. 뭐..이런 저라도 듀게의 게시물 조회수를 올리는데는 그나마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기는 합니다. 에헴.. 

    • 먹는 이야기 저도 참 좋아합니다. 먹는 건 중요한 일이죠.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요. 가벼운 잡담에서 시작하지만 충분히 진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사실 먹는것에는 중요한 비밀과 역할이 있죠. 굶으면 죽는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비밀이랄까. 탐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 Bigcat // 1ㅅ 추가요

    • 그나저나


      한달에 열번 정도 술 마시는 저도


      "알콜 의존증" 정도 되려나요


      ㅎㅎㅎ

      • 저와 비슷한 증상이시네요. 주위에 큰 피해를 끼치거나 스스로 해만 입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 급 마무리를. 

    • 노화를 연구한 어떤 서적에 따르면 술을 아예 안마시는 사람보다 적당히 마시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더 길답니다. 그런데.. 그 적당히라는게 상당히 적은 양이고 또 가급적이면 적포도주여야 한다는게 함정. 한국에서 술 좀 먹는 사람들의 음주량은 서양에서는 대부분 알코홀릭이라고 할 정도의 양이지요. 알콜 분해효소도 훨씬 적은 몸이면서 대단들 합니다. 

    • 이곳에서 술내음이 난다길래 찾아들어와 봤습니다...



      만..



      역시나 향기롭군요...



      명절에 쓰려고 모셔둔 화요로 칵테일을 하고 싶은 맘이 드는 글...



      술은 모름지기... 상하기전에 해치우고 또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니...

      • 술이 상한다는 말이 낯설지만 조만간 야관문 딸때 뵙도록 하자구요. 음..
    • 제 역사평설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주 발제 하나 할 게 있어서( 책 읽기 모임인데 회원들 대부분이 교사나 공무원들이라 이런 방식이랍니다… ;;) 이번 주말쯤 올릴 예정입니다.
      • 학구적인 글에 늘 감사드립니다. 꾸뻑..
    • 전 듀게에서 먹는 이야기 글이 가장 좋아요. 안동소주 칵테일에 베이컨 안주라니. 좋아요, 좋아요.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2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